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잠시 주춤하는 듯하던 물가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9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3.7%까지 올랐고,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으로 국제유가가 1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민생·물가 안정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물가 대책을 논의했다. 이번주부터 2주간 배추 2200톤을 집중 공급하고 천일염 1000톤 할인판매 지원, 망고 등 수입 과일과 탈지·전지분유 등에 대한 신규 할당관세 추진 등의 내용이다. 전날 발표한 유류세 인하 연장 방침에 이어 내놓은 대책이지만, 이 정도로 서민의 물가고를 얼마나 덜어줄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지난해 이미 연평균 5.1%가 오른데다 올해도 6월과 7월을 제외하면 3~5%대의 월별 물가상승률을 이어가고 있다. 농산물뿐 아니라 각종 소비재와 공산품, 공공요금도 잇따라 오르고 있는데다, 지난 몇년간 크게 오른 집값으로 인해 전월세 가격도 큰 폭으로 올라 있는 상태다. 그래서 서민 가계는 지금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한국은행은 다섯차례 연속 금리를 동결하며 정부의 완화적 금융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다. 미국과의 금리 차이는 역대 최대인 2%포인트까지 벌어져 있다. 이로 인해 원-달러 환율이 크게 오른 것도 물가 상승을 또 부채질하고 있다. 오는 19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한국은행의 지상 과제는 물가 안정임을 환기하기 바란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인플레 원인은 장기적이고 구조적이다. 2008년 금융위기와 코로나 팬데믹 극복을 위해 전세계적으로 뿌려진 현금이 자산 가격을 올렸고, 수요 쪽은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공급망 붕괴, 중국·러시아와의 디커플링(디리스킹)과 오펙플러스(OPEC+)의 원유 감산 등 공급 쪽에서도 물가 압력을 높이고 있다. 여기에 최근 불거진 중동 변수와 달러 강세에 따른 환율 상승으로 수입 물가도 석달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는 등 인플레 악화 요소가 즐비한 상황이다.
원유 등 수입물가 상승에서 비롯된 고물가는 대응이 어렵다. 정부는 업계에 인상 억제를 호소하지만, 실효를 거두기 어려운 조처다. 민생을 챙기고 있다는 전시효과 외에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정부는 물가 인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저소득층에 초점을 맞춰 이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집값·전셋값·임대료 등 주거비 상승을 최대한 억제하는 쪽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