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방한 중이던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과 통화하기 전에 주미 한국대사관이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주요 내용을 보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주미대사관은 지난달 4일 새벽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주요 쟁점을 정리한 3급 기밀 보고서를 대통령실과 기획재정부·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 등에 전달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자동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핵심 조항의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전기차에 대해서는 보조금 지급이 제외된다는 내용을 그때 보고했다는 얘기다. 산업부 관계자는 국회 대면 보고에서 ‘지난 8월4일 오전 해당 보고서를 받았고, 당시 보고서 내용으로 해당 조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소지가 있다고 파악했다’고 밝혔다고 조 의원실은 전했다.
문제는 당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한국을 방문 중이었다는 점이다. 펠로시 의장은 8월3일 밤 한국에 도착한 뒤, 이튿날인 4일 오전 김진표 국회의장과 만났다. 당시 여름 휴가 중이었던 윤 대통령은 4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10분께까지 40분간 펠로시 의장 등과 전화 통화를 했다. 전화 통화 당시 주미대사의 보고서는 대통령실에 이미 전달된 상태였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실이 공개한 두 사람의 통화 내용에는 인플레이션 감축법 관련은 없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일주일 뒤인 12일 미 하원을 통과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펠로시 의장과의 통화 상세 내용은 외교 관례상 확인해 드리기 어려우나, 방한 당시에는 미 상원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이 막 논의되기 시작한 단계여서 미국 쪽과 구체적인 논의를 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다”면서도 윤 대통령이 해당 보고서를 보고받았는지 여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정부는 미 행정부와 인플레이션 감축법 문제만을 논의하는 별도의 ‘협의체’를 활발히 가동하고 있다”면서 “우리 정부가 기민하게 대응하지 않았다거나, 우리 쪽 우려를 전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식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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