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욱 국방부 장관이 2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국군 수도병원 장례식장 접견실에서 성추행 피해 신고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의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죄송합니다. 마음이 많이 아프실 텐데…제가 미리 들여다봤어야 하는데….”
2일 오후 2시 경기도 성남 국군 수도병원 장례식장 접견실. 성추행 피해를 신고한 뒤 이어진 군 당국의 무마 시도와 괴롭힘 등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아무개 공군 중사의 부모님 앞에서 서욱 국방부 장관의 말은 자주 끊겼다. “늦게나마 국방부에서 지금 (수사 및 조처를) 하려고 하고 있고요, 철저하게 수사해서, 또 2차 가해, 그리고 지휘관으로서 조치 등을 낱낱이 밝혀서…. 이 중사의 죽음 헛되이 않게….”
서 장관은 이번 사건이 보도된 직후인 1일 오전 “사안이 엄중한 만큼 특별수사단이라도 꾸려서 신속하고 엄정하게 사실을 규명하라”고 지시한 데 이어 이튿날 이 중사의 빈소를 찾았다. 유족들은 지난 3월 선임 부사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이 중사가 지난달 22일 관사에서 숨진 채 발견되자 12일째 장례식을 미루며 엄정 수사를 촉구해 왔다.
서욱 국방부 장관(오른쪽 위)이 2021년 6월2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성추행 피해 신고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의 유가족이 오열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자식을 잃은 부모 역시 슬픔을 견디지 못해 문장이 자꾸만 끊겼다. “어쨌든 또 이렇게 너무 가슴이 아파서…. 청원을 해야만 장관이 오시는 상황이 정말 유감스럽습니다.” 이 중사 아버지의 말은 정중하지만 가시가 박혀 있었다. 아버지 이씨는 “국방부 감찰단에서 유족이 원하는 대로 이렇게 책임지고 해주신다니 그렇게 결정해주셔서 일단 먼저 감사드린다. 이후에 어떻게 상황이 진전되는지 계속 지켜봐 달라”며 서 장관이 직접 끝까지 챙겨 달라고 당부했다.
이번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미투 운동’이 시작된 지 몇 년이 지나도록 성 범죄를 대하는 군 문화가 여전히 후진적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명백히 드러내 상당한 후폭풍을 불러 올 전망이다. 수사 대상만 해도 1차 가해자는 물론, 사건 무마를 시도한 2차 가해자, 전출된 부대에서 이뤄진 간접적 괴롭힘에 가담한 3차 가해자 등으로 확대가 불가피하다. 서 장관이 철저한 수사를 공언한 만큼 얼마나 철저한 진실 규명과 피해자 처벌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자식을 잃은 부모가 감당해야 할 비통함의 깊이를 헤아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중사의 어머니는 서 장관을 앞에 두고 “우리 아이가 저기에 이렇게 누워서, 이렇게 아름다운 아이가, 마음이 너무 아프고, 제가 너무 죄스럽다”고 말했다. 넋두리는 이내 울음으로 변했다. “○○아 조금만 기다려, 오래 걸릴 것 같지 않아. 여기 오신 분이, 너의 ××(잘 안 들림)을 풀어주실 거야. 좀만 참아. 그러면 너 편히 쉴 수 있을 거야. 정말 미안해, 엄마가 약속할께. 우리 ○○이 억울한 것 없게. 끝까지.” 이 중사의 이모로 보이는 이가 “언니가 정신 차려야 한다”고 말했지만, 결국 의식을 잃고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향했다. 유족들은 이 중사의 어머니가 정신을 잃은 것이 벌써 다섯 번째라고 했다. ‘구급차가 왜 이렇게 늦느냐’고 화를 내던 가족들은 “아이고, 아이고”하며 구슬프게 울었다.
이날 이 중사의 부모님이 강조한 것은 억울하게 숨진 딸의 명예회복과 가해자들에 대한 구속 수사 등 엄정한 대응과 처벌이었다. 이 중사의 아버지는 “억울한 우리 이 중사를 지켜봐 주시는 많은 분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해달라” “수사하면서 아직 가해자가 구속되지 않은 상황이다. 1차는 구속 수사고 2차와 3차는 처벌”이라고 말했다. 서 장관은 “저희도 군 검찰 중심으로 여러 민간 전문가들도 여기에 참여하게 해 도움을 받아가면서 투명하게 수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저도 사실은 이 중사와 같은 딸 둘 키우는 아버지이다. 그런 마음으로 낱낱이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국방부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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