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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법조리포트] “‘등’자 하나만 주면 다 줄게”

등록 2006-05-02 11:13수정 2006-05-02 14:55

사립학교법 재개정을 주장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1일 밤 국회 예결위 회의장에서 의원총회를 하는 동안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보좌진들이 그 맞은편 본회의장 문앞을 지키고 있다. 연합뉴스
사립학교법 재개정을 주장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1일 밤 국회 예결위 회의장에서 의원총회를 하는 동안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보좌진들이 그 맞은편 본회의장 문앞을 지키고 있다. 연합뉴스
‘등’의 원초적 유혹에 빠진 한나라당과 론스타
등(等) : 의존명사. 《같은 무리에 속하는 명사를 열거한 다음에 쓰이어》 (앞에 늘어놓은 것들과 같은) 여러 가지. 따위.

비슷한 것들을 몇 가지 예시한 다음, 그 범주를 아우르고 싶을 때 손쉽게 사용하는 말. 이 ‘등’이라는 낱말이 요즘 부쩍 관심을 끌고 있다. 한나라당이 민생법안의 일괄타결을 조건으로 사립학교법 조항에 ‘등’자 삽입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립학교 이사회 이사 4분의 1 이상의 추천권을 ‘학교운영위원회 또는 대학평의원회’가 아닌 ‘학교운영위원회 또는 대학평의원회 등’으로 하자는 게 한나라당의 요구사항이다. ‘등’자 하나만 넣으면 처리가 시급한 민생법안까지 처리할 수 있다니, 여당으로서는 귀가 솔깃할 만도 하다.

“‘등’자 하나만 주면 모두 합의해주~지.”

호랑이 같은 거대야당 한나라당은 ‘등’이라는 ‘곶감’을 줄기차게 요구하며, 민생법안 직권상정을 막기 위해 국회의장 공관 점거까지 감행했다.

그러나 3년 전 어느 경제관료는 ‘등’의 효과를 이렇게 지적했다.

“규정 해석에 있어서 원래 ‘등’은 적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등’에 걸고 넘어 가려면 삼라만상이 다 ‘등’에 해당되고, 결국 독소조항이 되고 만다.”

김석동 재경부 차관보 “‘등’ 넣으면 삼라만상 다 해당…나중에 독소조항 된다”
론스타 외환은행 인수때도 ‘등’의 마력으로 ‘가능해져’…결국 ‘먹튀’로 번져

법령에서 ‘등’이라는 표현이 낳을 수 있는 폐해를 이렇듯 통렬하게 지적한 사람은 바로 김석동 재경부 차관보(당시 금감위 감독정책1국장)다. 한나라당의 사립학교법 개정 요구를 비난한 게 아니다. 2003년 7월22일 외환은행 매각 관계자 조찬회의장에서, 금융회사가 아닌 사모펀드에 불과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도록 ‘등’을 이용하자는 ‘묘수’를 비판한 것이다.

은행법상 외국자본이 국내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금융회사여야하지만, 시행령에서는 “부실금융기관 정리 ‘등’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금융회사가 아니어도 국내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될 수 있다고 돼있다. 변양호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은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려면) 결국 ‘등’으로 가는 것이 현실적 아닌가”라는 제안을 내놓았다. 부실금융기관이 아닌 외환은행을 사모펀드인 론스타에 인수시키기 위해서는 ‘등’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었다.

김 차관보의 지극히 상식적인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결국 외환은행은 ‘등’의 ‘마력’에 휩쓸려 론스타에 인수됐고, 그 결정 과정은 수많은 의혹만을 남긴 채 현재 위법성 여부를 밝히려는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법제처, “법령에 ‘등’ 들어 있으면 해당사항 모두 열거하라”

법령 입안 단계에서도 ‘등’이라는 표현이 부적절하다는 인식은 이미 퍼져 있는 상태다. 법제처 관계자는 “실무단계에서 법령을 만들어올 때 ‘등’자가 들어있으면, 이것에 해당하는 것을 모두 열거하라고 유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의미의 모호성, 법문의 확대해석에 따른 폐해를 막기위한 조처다.

론스타의 ‘먹튀’와 사립학교법 개정이 ‘등’을 맞대고 같은 범주로 엮이지 않기를 바란다. 아무리 봐도 ‘등’은 꼼수다.

<한겨레> 법조팀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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