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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뇌·몸·환경은 하나라는 강한 외침

등록 2010-02-08 17:35수정 2010-02-08 17:40

‘마음 = 뇌’라는 관점에서만 인간을 이해하려는 우리 생각이 수정되지 않는다면 인류는 마음, 인간, 그리고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의 본질을 왜곡하여 이해한 채로 남을 것이다. 그것은 녹색 생태환경을 지향하는 인류로서는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그래픽 김영훈 기자
‘마음 = 뇌’라는 관점에서만 인간을 이해하려는 우리 생각이 수정되지 않는다면 인류는 마음, 인간, 그리고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의 본질을 왜곡하여 이해한 채로 남을 것이다. 그것은 녹색 생태환경을 지향하는 인류로서는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그래픽 김영훈 기자
2020을 보는 열 가지 시선 ③ 뇌와 마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




‘뇌는 곧 마음’이라는 단순 이해 넘어서기
로봇공학 분야에서 먼저 제기돼
인문사회학, 인공지능, 광고 등에도 영향 끼칠 것

주부 김아무개씨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재미있는 현상을 하나 발견했다. 거실에 앉아 글을 구상할 때는 생각이 잘 안 됐는데, 일단 컴퓨터를 켜고 자판기에 손을 얹으니 신기하게도 생각도 잘 되고 글이 술술 잘 써졌다. 김씨는 스스로 반문했다. 내 생각은, 내 마음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내 머리에 다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컴퓨터와 상호작용하면서야 생각이 정돈되는 이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러다 예전에 유명한 문인이 자기 만년필을 손에 쥐어야 글이 써지고, 다른 필기구로는 글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마음은 뇌 안에만 있을까

나의 마음이, 나의 생각이 내 머리 안에 다 들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인가? 사람의 마음이란 곧 뇌의 신경활동과 동의어가 아닌가? 김연아가 예술적인 스케이팅을 할 때 그 몇 천분의 1초에 작동하는 몸의 세세한 움직임 모두를 뇌에서 파악하고 통제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대통령 또는 청와대가 시골 말단 동사무소에서 누가 언제 무슨 증명서를 떼갔는지 다 파악하고, 그에 대응하는 지시를 내려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이런 물음을 던지는 주부 김씨는 자신이 21세기 최첨단의 물음을 던지는 철학자들의 반열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2010년대 이전에 사람들은(일부 과학자들까지도) ‘뇌를 이해하면 곧 마음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음 = 뇌’라고 생각해온 뇌 지상주의의 생각틀이 과연 타당한지 반문하는 물음들이 최근 학자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인간의 마음은, 의식은, 뇌의 신경활동일 뿐이라고 여기면서 뇌 연구 결과들에 매료되고 있는 우리 모습이 과연 21세기 내내, 그리고 이후에도 지속될까?

몸과 마음 이원론의 전통을 넘어

17세기 이래 서구 과학계를 지배해온 데카르트적 사고의 틀로 보면, 인간 몸은 동물 몸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자동기계로 간주되고 마음과 몸은 이원론으로 구분된다. 데카르트는 몸을 동물적 기계로 보고, 마음과 영혼은 그것을 넘어서는 무엇으로 보았다. 현재의 신경과학에서는 마음이나 의식은 뇌의 신경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보는 물리주의적 입장이 지배적이다. 그렇지만 그 밑바탕에는 몸과 마음을 이분법으로, 또 생각의 주체와 객체를 이분법으로 나누는 데카르트식 관점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지금 ‘마음, 의식은 곧 뇌’라는 생각을 넘어, 마음과 의식을 밖으로 확장해 새로운 틀에서 이해하려는 관점이 무시하지 못할 사조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마음 = 뇌’라는 단순한 생각을 과감하게 넘어서려는 움직임이 철학을 비롯한 학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철학자들만의 이야기라면, 철학자들이 또 이러저러한 난해한 이야기를 하는가 보다고 생각하며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까닭이 있다. 그것은 이런 논의를 촉발한 사람들이 철학자가 아닌 인공지능학자나 로보틱스 연구자라는 데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의 로드니 브룩스 교수는 데카르트식의 틀로는 제대로 된 인공지능 시스템이나 로봇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새로운 틀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인간-환경의 상호작용 ‘체화된 마음’

이정모 성균관대 심리학과·인지과학협동과정 교수
이정모 성균관대 심리학과·인지과학협동과정 교수

공학자들의 주장에 힘을 얻은 철학자들은 과거의 현상학과 철학 전통이 몸-환경-활동의 중요성을 거론했던 것을 되살려 마음·의식·존재의 개념을 다시 구성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마음이라는 개념은 ‘뇌를 넘어’ 몸-환경과 통합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마음은 뇌 안의 신경활동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뇌-몸-환경이 서로 괴리될 수 없는 통합적 단위체로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철학이나 인지과학에서 ‘체화된 마음’(embodied mind)으로 불리는 이런 마음 개념의 재구성은 단지 철학, 인지과학, 신경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과 사회과학 전반, 그리고 인공지능, 로보틱스, 공학적 디자인, 더 나아가서는 광고와 매스컴, 심지어는 녹색환경 산업 등에 지속적 영향을 끼치리라 생각된다. 미래 과학기술을 위해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이 수렴되고 융합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음 = 뇌’라는 관점에서만 인간을 이해하려는 우리의 생각이 수정되지 않는다면 인류는 마음, 인간, 그리고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의 본질을 왜곡하여 이해한 채로 남을 것이다. 그것은 녹색 생태환경을 지향하는 인류로서는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이정모 성균관대 심리학과·인지과학협동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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