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은 지난 10월부터 전기요금을 킬로와트시(㎾h)당 3원 인상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아파트에 설치된 전기계량기. 연합뉴스
한국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이다. 2019년 시장환율 기준으로 한국보다 싼 나라는 산유국인 멕시코 뿐이다. 메가와트시(㎿h)당 102.4달러인 한국의 요금은 OECD 평균(172.8달러)의 59%이고, 미국(130.4달러)의 79%, 프랑스(199.1달러)의 51%, 일본(253.5달러)의 40%, 독일(333.9달러)의 31%이다. 한국에서 비슷한 처지의 에너지 수입국인 일본, 값싼 셰일가스를 캐내 쓰는 미국, 세계에서 원자력 발전 비중이 가장 높은 프랑스보다 턱없이 싸게 전기를 쓰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한국의 전기요금이 싼 이유의 하나로 한전은 발전 단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원자력과 석탄 발전 비중이 높다는 점을 든다. 지난해 한국의 원자력과 석탄 발전 비중은 64.3%였다. 미국(38.6%), 일본(33.5%), 독일(35%) 등 다른 주요국의 두 배에 가깝다. 하지만 이 설명으로는 한국의 전기요금이 원전 대국인 프랑스보다도 싼 수수께끼가 해결되지 않는다. 프랑스는 석탄 발전보다 연료비가 적게 드는 원자력 발전 비중만 67.2%로 한국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런데도 가정용 전기요금이 한국의 두 배다.
한전은 또 다른 이유로 높은 송배전 설비 운용 효율을 든다. 국토가 좁다 보니 고객 밀집도가 높아 송배전 설비 단위당 송배전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든다는 얘기다. 한전이 조사한 2016년 기준 주요국 송배전 설비 운용 현황을 보면, 한국의 선로 1㎞당 손배전량은 1028㎿h로 일본(229㎿h), 미국(346㎿h), 프랑스(334㎿h), 독일(293㎿h) 등 주요국의 3~4.5배 수준을 기록했다.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가 수용가까지 도달하는 과정에서 사라지는 송배전 손실률도 한국이 3.6%로 일본(4.7%), 미국(5.5%), 프랑스(7.5%), 독일(6.1%)보다 크게 낮다.
한전이 높은 원전 비중과 송배전 설비 운영 효율 다음으로 꺼내놓는 싼 전기요금의 이유는 싼 세금과 부담금이다. 전기에 붙는 세금이 적고,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에너지 전환과 관련된 부담금도 적다는 것이다. 한전이 설명하는 순서는 뒷쪽이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낮은 세금과 부담금이야말로 한국의 싼 전기요금의 중요한 비결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전기요금이 어떻게 원전 대국 프랑스의 절반에 불과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상당 부분 여기서 풀린다.
2017년 기준 프랑스의 가정용 전기요금에 붙은 세금과 부담금은 1㎾h에 79원 꼴로 전기요금의 36%를 차지했다. 일본은 57.1원으로 28.8%, 독일은 210.2원으로 54%, 미국은 27.4원으로 12.7%였다. 반면 같은 해 한국 전기요금에 붙은 세금과 부담금은 요금의 12.1%인 15.1원에 불과했다. 프랑스의 5분의1, 일본의 약 4분의1이다.
여기에 더해 서민경제 안정, 농어민 보호 등의 정책적 목적으로 주택·농사용 등에 원가보다도 낮게 부과하는 용도별 요금제, 다양한 복지·특례 할인제도도 한국의 전기요금을 낮게 유지시키는 요소로 꼽힌다. 한전 관계자는 “전기사용 용도에 따른 요금 차등은 해외에서는 극히 제한적이고, 취약계층 전기요금은 대부분 정부 재정으로 지원하며 특정 산업 등에 대한 할인제도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런 설명은 결국 한국의 전기요금이 싼 것은 원가나 수요·공급과 무관한 정책 결정의 결과라는 당연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전기요금과 같은 공공요금을 적정 원가에 서비스 제공자의 적정 투자보수를 더한 총괄원가를 보상하는 수준에서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규정은 지켜지지 않는다. 한전 장부에 연결기준 부채가 올해 상반기까지만 137조원이나 쌓여 있는 것이 그 결과다. 한전이 원가보다 싸게 전기를 공급하면서 국민 지갑에서 덜 꺼내간 전기 공급 비용이 사라지지 않고 여기 쌓여 있다. 국민들이 직접 내는 전기요금이 전기요금의 전부가 아니라는 얘기다. 싼 전기요금을 유지하느라 생긴 공기업의 부실은 결국 국민 세금으로 막아줄 수밖에 없다. 전기요금 인상 억제가 폭탄 돌리기로 비유되는 이유다.
외신을 보면 올해 발전 연료비가 올라가면서 해외 주요국에서는 전기요금도 잇따라 오르고 있다. 지난 10월 스페인에는 37.9%가 올랐고, 이탈리아와 일본에서도 29.8%와 15%가 올랐다. 영국에서는 지난 4월 9.2% 인상하고 6개월 만인 10월에 다시 12%를 올렸다. 프랑스는 내년 2월 4% 인상을 예고한 상태다.
반면 한국의 전기요금은 지난 10월 2013년 이후 8년 만에 처음 ㎾h당 3원 인상됐을 뿐이다. 3원은 월 평균 350㎾h를 사용하는 4인 가구에 적용되는 ㎾h당 전력량요금(182.9원)의 1.6%에 불과하다. 이 3원 인상은 올해부터 연료비 연동제를 시작하며 기준연료비(2019년12월~2020년11월 1년 간 연료비 평균) 대비 ㎾h당 3원 내린 것을 원상 회복한 것이어서 실제 기준연료비와 비교하면 오른 것도 아니다. 연료비 변동을 제대로 반영하려면 10월에 ㎾h당 13.8원 올려야 했지만 연동제에 따른 분기당 최대 조정폭이 3원으로 제한돼 더 올리지 못한 것이다.
정부는 요금이 급격히 인상되는데 따른 소비자의 혼란을 막겠다며 연동제를 설계하며 기준연료비 대비 조정 제한폭도 설정해 놨다. 기준연료비가 동일한 상태에서는 ㎾h당 최대 5원 이상 조정할 수 없게 한 것이다. 그보다 더 올리려면 기준연료비를 먼저 조정해야 하는데 문제는 기준연료비의 주기적 조정은 연동제에 규정돼 있지 않아 손대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연료비 연동제 시행 1년이 다가오지만 연료비에 좌우되는 한국전력의 ‘천수답 경영’을 안정시켜 에너지 전환에 집중하게 하려는 제도의 취지는 싹도 틔우지 못하고 있다. 연동제로 4분기에 8년 만에 처음 요금이 올랐지만 한전은 올해 4조원대 후반의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연료비 연동제에 따른 요금 조정으로는 오르는 발전 연료비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주 있을 내년 1분기 연료비 조정요금 결정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한국의 전기요금은 내년에도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 최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재정당국이 물가인상 압력을 이유로 공공요금 동결을 검토 중인 상황에서 전기요금 기준연료비 인상은 논의 대상이 될 여지도 없어 보이는 까닭이다. 정부는 연동제에 따라 지난 2분기와 3분기에도 전기요금을 올려야 했지만 물가 안정 등을 이유로 유보권을 행사해 동결한 전적이 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전기요금을 시장 가격과 상관 없이 정부가 인위적으로 결정하는 시스템을 유지해서는 탄소중립 달성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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