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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AS]봄은 너에게서 시작되는구나…계절관측목, 넌 누구니?

등록 2021-04-02 15:15수정 2021-12-29 14:57

해발고도 85m 서울기상관측소 건물 앞
126살 단풍나무·61살 벚나무 등 10종
고의로 훼손하면 고발 당할 수 있어요
서울기상관측소 건물 앞에 식재된 계절관측목. 왼쪽이 61년 된 벚나무, 오른쪽은 126년된 단풍나무이다.
서울기상관측소 건물 앞에 식재된 계절관측목. 왼쪽이 61년 된 벚나무, 오른쪽은 126년된 단풍나무이다.

십여년 전 대학생들은 1학기 중간고사 기간인 4월 중순쯤 벚꽃이 피었다고 기억한다. 하필 중간고사 때 벚꽃이 피다니 내내 아쉬웠던 이야기를 나눈다. 지금 대학생들이 기억하는 벚꽃은 그보다 이른 3월말에 핀다. 기후변화와 저마다의 추억을 함께 느끼는 봄이 지나고 있다. 3~4일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면 아쉽게도, 초봄을 상징하는 벚꽃잎이 파란 하늘이 아닌 회색 아스팔트 위를 수놓을 것이란 예보다.

올해 서울 벚꽃 개화는 기상청의 1922년 관측 이래 가장 빠른 지난달 24일이었다. 지난해도 관측 이래 가장 일찍인 3월27일 벚꽃이 폈는데 사흘이 더 빨라졌다. 평년(1981∼2010년 30년 평균)보다는 17일이나 이르다. 사실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건물 근처 벚나무를 포함해 서울에서 만개한 벚나무를 수일 전부터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왜 기상청은 이날을 개화일로 발표했을까.

개화일을 정하는 시점은 기상관측소 인근에 식재된 ‘계절관측목’의 상태를 보고 결정한다. 이곳의 꽃이 개화를 해야 개화일로 인정받는다. 한겨레신문사 앞 벚꽃이 아무리 꽃망울을 먼저 틔웠어도 계절관측목의 꽃이 피지 않으면 개화일이 오지 않은 것이다. 전국 23곳의 유인기상관측소에 각 10종류의 계절관측목이 있는데, 계절관측목은 세계기상기구(WMO)의 가이드라인을 따라 그 계절을 대표하는 식물이 선정된다.

지난달 31일 찾은 서울 종로구 송월동의 국립기상박물관. 1932년 지어져 기상관측을 하던 건물로 국가등록문화재 585호이다. 현재 서울기상관측소도 이 건물에 함께 있다. 계절관측목인 왕벚나무와 단풍나무, 진달래, 매화 등이 이 건물 앞에 있다.
지난달 31일 찾은 서울 종로구 송월동의 국립기상박물관. 1932년 지어져 기상관측을 하던 건물로 국가등록문화재 585호이다. 현재 서울기상관측소도 이 건물에 함께 있다. 계절관측목인 왕벚나무와 단풍나무, 진달래, 매화 등이 이 건물 앞에 있다.

서울기상관측소 주변에 심어진 개나리.
서울기상관측소 주변에 심어진 개나리.

지난달 31일 오후 찾은 종로구 송월동 1-1번지. 서울시교육청 건물 옆으로 난 가파르게 경사진 도로를 올라가면 서대문역 일대가 보이는 탁 트인 공간이 나왔다. 계절관측목들은 1932년 이후 서울의 날씨를 기록해 온 서울기상관측소 건물 주변에 있었다. 개화일이 지난 왕벚나무는 연분홍 꽃잎을 활짝 피웠고, 붉은 매화와 노란 개나리, 분홍 진달래도 꽃망울을 터뜨렸다.

이들은 길게는 100년 넘는 서울의 기후 역사를 다 알고 있다. 기상청이 2014년 서울기상관측소 역사기후자료집 발간을 앞두고 국립산림과학원에 이곳 단풍나무와 벚나무의 수령을 의뢰한 결과, 단풍나무는 126년 전 심어졌고 벚나무는 61년 전 심어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진달래·개나리·매화는 14년, 복숭아 22년, 배나무 12년, 은행나무 약 25년 전에 식재했다. 코스모스는 겨울을 나지 못 해 매년 새로 심고 있다. 아까시나무는 청사 밖에서 자라고 있는데, 몇년생인지 기록은 남아있지 않았다.

서울기상관측소 역사기후자료집 중
서울기상관측소 역사기후자료집 중

나무들은 원래 있었거나 계절 관측을 위해 새로 심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종로구 낙원동에 있던 경성측후소가 1932년 이후 지가가 싸고 지대가 높은 이곳으로 이전해 와 관측을 했다는 과거 기사가 있다. 이때문에 수도권기상청 관계자는 “계절관측목들에 대해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하지만 벚나무는 관측소가 생긴 뒤라 새로 심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단풍나무는 원래 있던 건지 누군가 식재한 것인지 과거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기상관측소에 있는 매화 계절관측목.
서울기상관측소에 있는 매화 계절관측목.

귀한 나무들이지만 이땅의 다른 평범한 나무를 대신해 계절을 알려야 하기 때문에 특별 대접은 거부한다. 지난해 9월 부임한 홍미란 서울기상관측소장은 “가지치기를 하거나 특별한 관리를 하지 않는다. 병충해를 입지 않는 정도로만 관리한다. 사무공간에서 바라보면 관측목이 잘 보이는데 꽃 사진을 찍으러 오신 시민들이 가지를 당기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면 제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 소장과 또 다른 직원은 출퇴근길마다 계절관측목을 살피며 ‘발아·개화·만발’ 시기를 관측하고 있다.

서울기상관측소 사무실에서 바라보는 계절관측목.
서울기상관측소 사무실에서 바라보는 계절관측목.

지난해 11월 개관한 국립기상박물관이기도 한 서울기상관측소 건물과 계절관측목 식재지 등은 국가등록문화재 585호로 지정돼있다. 특히 계절관측목이 서 있는 지역이 사적 10호인 한양도성 보호구역내에 속해 있기도 하다. 이때문에 가지 치기·가지 부러뜨리기 등 계절관측목을 고의로 훼손할 경우 문화재보호법 35조와 99조에 의해 ‘허가받지 않고 문화재의 현상을 변경할 경우’로 해석돼 고발당할 수 있다. 문화재청 보존정책과 담당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고발하면 수사 결과 벌금을 내야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글·사진/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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