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6일 밤 국립중앙의료원 음압격리병동에서 의료진들이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중앙감염병전문병원을 짓기 위한 설계비와 부지대금이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반영되지 않으면서 국가 감염병 대응 체계를 고도화하려는 이 사업이 또다시 지연될 위기에 처했다. 삼성에서 5천억원을 기부하면서 더 큰 규모의 병원을 지을 수 있게 됐지만, 기획재정부가 변경되는 사업 계획의 타당성을 검토한 뒤에야 정부 예산을 편성할 수 있다고 버티면서 벌어진 일이다.
31일 보건복지부와 국립중앙의료원의 설명을 종합하면, 복지부가 요구했던 국립중앙의료원 현대화사업을 위한 설계비·시설부대비 10억원과 중앙감염병병원 구축사업을 위한 설계비·시설부대비 2억5천만원이 정부가 확정한 내년도 예산안에 아예 반영되지 않았다. 병원이 들어설 부지인 서울 방산동 미 공병단 터에 대해 대금 지급을 하려고 요청했던 3710억원은 1610억원이 삭감돼 2100억원만 반영됐다. 부지 대금은 2023년까지 완납하면 되기는 하지만, 설계비가 편성되지 않으면 당장 내년 상반기 설계 용역 발주 일정부터 차질을 빚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지난 4월28일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이 중앙감염병전문병원 건립을 위해 5천억원을 국립중앙의료원에 기부하자, 기재부가 바뀐 상황을 반영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사업계획 적정성 재검토’ 절차를 다시 진행해야 한다고 하고 있는 탓이다. 이는 예비타당성 조사가 면제됐어도 필요한 경우 그 조사 방식에 준해 적정 사업 규모를 검토한 뒤 결과를 예산 편성에 반영하는 절차다. 통상 1년 안팎이 소요된다. 중앙감염병전문병원 사업은 지난 2016년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에 대응할 목적의 사업’이란 점이 인정돼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받았다. 같은 해 10월에는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를 받기 시작해서 2018년 7월 이 절차가 마무리됐다. 이렇게 확정된 사업 규모가 본원(국립중앙의료원) 600병상, 중앙감염병원병원 100병상에 총 사업비 5961억원인데, 기부금을 활용해 이 사업을 더 키우려 하자 기재부가 사업계획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나선 것이다.
국립중앙의료원 쪽은 통상 9개월에서 1년이 걸리는 사업계획 적정성 재검토를 하게 되면 이미 늦어진 사업이 추가로 1년 반 가까이 지연될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올해 중 사업비 조정을 끝내고 내년 초에 설계용역에 들어가면 2024년엔 공사를 시작하고 2026년 하반기에 준공을 하게 된다. 그러나 적정성 재검토를 하게 되면 내년 하반기에야 사업비가 확정이 되고, 그리 된다 해도 내년에 곧바로 설계 용역을 발주할 예산이 없는 상태가 된다. 이듬해 예산을 받아 설계를 시작하면 공사는 빨라도 2028년 상반기에나 마무리될 공산이 크다. 국립중앙의료원 관계자는 “중앙감염병병원 건립사업은 이미 긴급한 경제 사회적 상황에 대응을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가 면제된 사업인데다, 기부금으로 사업비가 커진 것이지 추가 국비 증액 요청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적정성 재검토를 해야겠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국회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설계비와 부지대금 등이 다시 반영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노정훈 복지부 공공의료과장은 “기재부에 사업계획 적정성 재검토를 하지 않는 것을 요구하고 계속 협의하고 있다”며 “원래 계획대로 차질 없이 2026년까지 병원이 준공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민수 복지부 기획조정실장은 “부지매입비는 재정당국이 재정 상황을 종합 고려해 내년도 예산안엔 일부만 반영한 상황”이라며 “2023년까지 대금을 순차적으로 완납하는 것에는 (기재부와)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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