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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사회적 합의’ 쏙 빠진 쿠팡…노동자는 매일 318건 배송, 10시간 근무

등록 2023-09-11 20:46수정 2023-09-11 22:14

쿠팡 본사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쿠팡 본사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기사들은 외조모상을 갔다는 이유로, 예비군을 갔다는 이유로, 아이가 아파서 쉬었다는 이유로 클렌징(배달구역 회수)을 당하는 등 현장 상황은 매우 참혹합니다. 수행률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명절에도 일하고, 작년 폭우로 도로가 침수됐을 때도 아침 7시 정시배송을 하지 못할까 봐 불안에 떠는 게 현실입니다.”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의 한 대리점장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나와 자신이 현장에서 바라본 택배 노동자의 현실을 설명했다. 쿠팡 씨엘에스 소속 택배 노동자의 과로와 고용 불안을 두고 대리점주까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쿠팡 씨엘에스는 대리점주와 영업계약을 맺고, 택배 노동자들은 각 대리점에 속해 배송 업무를 한다. 증언에 나선 대리점장은 “지표를 채우기 위해 직접 부족분에 대한 배송도 나서고 있다”고 했다.

전국서비스산업노조연맹과 강성희 진보당 의원은 이날 ‘택배 과로사 사회적 합의의 규범으로 본 쿠팡(CLS)의 계약관계와 노동실태' 토론회를 열어 “쿠팡 씨엘에스가 택배 기사의 과로사를 막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대리점과의 계약 관계에서도 실정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쿠팡 씨엘에스를 콕 집어 문제 삼은 데는 그동안 택배업계, 택배 노동자, 정부, 국회가 만들어 온 사회적 합의에서 업계 후발주자인 쿠팡 씨엘에스만 벗어난 채 몸집을 불리는 상황 때문이다. 2021년 나온 ‘택배 과로사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합의’(사회적 합의)에 당시 신생업체이던 쿠팡 씨엘에스는 참여하지 않았다. 업계 2위까지 오른 현재도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에 따라 개정된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생활물류법) 등을 위반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생활물류법은 종사자(택배기사) 보호를 위해 택배 회사와 대리점의 계약 관계에서 업무의 양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하고 계약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도록 했는데, 쿠팡 씨엘에스의 계약서는 위탁 업무 범위를 정하지 않는다. 또 수행률에 따라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부속 합의서’를 통해 신선식품 배송률, 월 수행률, 휴무일 배송률 등 지표를 달성하도록 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담당 배송 구역을 회수하는 식이다.

그 결과 쿠팡 씨엘에스의 노동 강도는 생활물류법에 규정된 1주일 60시간을 넘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227명의 쿠팡 씨엘에스 노동자를 대상으로 지난 4월 실태를 조사해보니, 노동자들의 하루 평균 배송 건수는 318건으로 하루 평균 근무 시간은 9.8시간이며 주당 평균 근로일수는 5.9일이었다. 또 10명 중 4명은 구역 회수(클렌징)를 당하거나 목격했다고 응답했다. 한선범 전국택배노조 정책국장은 “쿠팡이 택배산업으로 진입하면서 대리점과 구역을 보장하지 않는 계약서를 체결해 노동자들 역시 보장된 구역을 할당받지 못한다”며 “쿠팡은 사회적 합의 이후 사라져 가던 ‘상시적 고용불안’을 클렌징을 통해 되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석운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쿠팡 씨엘에스의 경우, 생활물류법상 택배서비스사업자로 사업을 하고 있으면서도 사회적 합의를 지키지 않을 뿐 아니라, 법을 위반하고 있고 표준계약서도 적용하지 않고 있다”며 “이는 택배 산업의 현실 생태계를 교란하고 사회적 덤핑을 자행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11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5간담회실에서 ‘택배과로사 사회적합의의 규범으로 본 쿠팡(CLS)의 계약관계와 노동실태’ 토론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장현은 기자
11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5간담회실에서 ‘택배과로사 사회적합의의 규범으로 본 쿠팡(CLS)의 계약관계와 노동실태’ 토론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장현은 기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서비스연맹은 이날 오전 쿠팡 씨엘에스가 대리점과 계약을 맺을 때 부속 합의서를 통해 판매목표 강제 행위 등을 하고 있다며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위반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 신고에 나섰다. 이주한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는 “대리점에 대한 최소 물량을 보장하지 않고,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쿠팡은 이날 한겨레에 “생활물류서비스법 등 관련 법령을 준수하고 있으며, 대리점의 택배기사 부족으로 인한 고객배송 지연 피해와 택배기사의 업무과중을 방지하기 위해 대리점과의 협의를 거쳐 위탁 노선을 변경해 계약을 유지하고 있다”며 “이는 기존 택배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개선한 것으로, 일부 대리점의 택배기사 계약 해지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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