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기획위원
“성경엔 노조없다” 회장에 맞서 “성경엔 비정규직도 없다” 절규
“우릴 ‘폐품’처럼 여기는 홈에버는 내가 그만둘 때까지 다닐 것”
“우릴 ‘폐품’처럼 여기는 홈에버는 내가 그만둘 때까지 다닐 것”
“파업이 나 같은 사람과 인연 있는 일이란 걸 두 달 전에는 상상도 못했지요.”
이랜드그룹 홈에버 월드컵점의 김경미(46) 분회장의 말에 모든 분회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파업 하면 그건 남의 일이고 모든 파업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죠. 지하철 파업할 때 ‘시민의 발을 볼모로’라는 말에 아무 생각 없이 따랐지요. 그런데 지금은 아니에요. 세상을 새로 보게 되었어요.”
“파업, 전엔 상상도 못했는데…생각 바뀌었어요”
“고객·소비자 아닌 같은 노동자의 눈으로 봐주길” [홍세화의 세상속으로] 이랜드 파업현장에서 만난 사람들 [%%TAGSTORY3%%] 매장 점거 농성 13일째, 우리 사회 노동운동에서 파업노동자들이 공장을 세운 적은 있었지만 대형 유통업체의 매장을 점거해 영업을 정지시킨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동안 열악한 노동조건을 견뎌 온 주부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투쟁의 최전선에 서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먼저 대형 유통산업이 가진 특수한 성격을 들 수 있다. 단순 업무라는 이유로 값싼 임금을 받는 계산원들이지만 바로 그 계산대를 정지시키면 모든 영업행위가 정지된다. 정규직이든 고액 연봉 관리직이든 이를 막을 수 없다. 둘째, 정규직 이기주의에 빠지지 않은 이랜드 일반노조의 건강성과 조직력이다. 이 점은 민주노총의 같은 연맹 산하 현대백화점 노조가 회사 쪽의 비정규직 외주화에 합의해 준 점과 비교된다. 셋째, 주부 노동자들에게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을 감수하게 한 고용안정마저 이번에 거부당하면서 그동안 쌓였던 울분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찍순이’라고 부른다. 왕처럼 모셔야 하는 손님 앞에서, 그리고 관리자들 앞에서 그들은 사람이라기보다 찍는 기계다. 끝없이 바코드를 찍는 기계들, 그들이 마침내 “우리도 사람이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여기에 이번 파업의 폭발력과 추진력이 있다. 24시간 점거 농성만으로 파업을 마치려고 했던 노조 간부들에 비해, 조합원들이 계속 파업을 결의했다. 투쟁 현장이 학습 현장이라는, 이젠 전설처럼 남은 얘기가 여기서 현실이 되었다. 지난해에 130억원을 십일조로 냈다는 박성수 이랜드 회장이 “성경에 노조가 없다”라는 말을 할 때 “성경에 비정규직도 없다”며 당당히 맞설 줄 알게 됐다. 홈에버 여성 노동자들의 눈물 [%%TAGSTORY1%%] 계산원, 그들은 서서 일한다. 6시간 동안 화장실에도 못 가도 계산대는 지켜야 할 때도 있다. 왜 앉아서 일하면 안 될까? 프랑스에서 계산원들이 앉아서 일하는 모습에 익숙했던 내게 다가온 질문이다. 첫째는 서서 일해야 빠르게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곧, 효율성이다. 둘째, 손님 앞에서 앉아서 일할 수 없다는 이유, 곧 친절로 포장된 봉건성이다. 이랜드 일반노조 이남신(43) 수석부위원장은 당부했다. “부디 같은 노동자의 눈으로 봐 주세요. 고객이나 소비자가 아닌, 같은 노동자의 눈으로요. 하루 8시간씩 기계처럼 찍어야 하는 고통을 조금은 헤아려 주세요, 그래서 따뜻한 마음, 기다리는 자세로 계산원을 봐주세요.” 그렇게 한 달 고생해서 손에 쥐는 돈은 80만원. 나는 양해를 구하며 물었다. “80만원, 그 돈을 어디에 쓰시나요?” 한 조합원이 말했다. “집에 돌아가면 녹초가 돼서 아이들이랑 밥을 사먹기도 해요.” “아빠 사업이 잘못됐는데 …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안 들어줄 수는 없고 ….” 아이 셋을 두고 있다는 다른 조합원은 어느새 눈시울을 붉혔다. 40대를 전후한, 거의 모두 중고생을 둔 엄마들이다. 사교육 부담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어느 조합원의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면 정말 더 좋겠지만, 내가 원할 때까지, 내가 스스로 그만둘 때까지 열심히 홈에버에 다닐 것이다. 오직 그것이 나의 작은 바람이다. 그래서 항상 고마운 직장, 우리 아이 학원비와 생활비를 벌게 해 주는 고마운 직장으로 기억에 남길 바랄 뿐이다. 계약기간이 끝났다고 나를 버리는, 나를 폐품 정도로 생각하는 직장이라는 기억은 하고 싶지 않다.” 계산대 ‘찍순이’들 종일 서서 일하며 월 80만원 [%%TAGSTORY2%%] 우리 사회 인력시장에서 대형 유통업계가 모성을 보호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해 주는, 사회 양극화 해소에 기여하는 일자리가 될 수는 없을까? 대형마트 때문에 기울어가는 지역 영세상인들과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는 없을까? 인력 수급관리는 시장의 문제지만 정치 문제이기도 하다. 비정규직 문제가 기간제나 파견제 등 간접 고용을 늘려서 해결될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치권은 거의 대선만 바라보는 해바라기들이 된 지 오래다. 12일 오전 권영길·심상정 의원과 함께 연대 인사차 찾아 온 민주노동당의 노회찬 의원은 “그동안 말많던 노무현 대통령이 이 문제에 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고 한마디했다. 홈에버 농성장은 11일 오후 4시부터 완전 봉쇄됐다. 12일에는 지하출 입구에서 대치하기도 했고 마포경찰서장의 해산을 요구하는 확성기 소리도 들려왔다. 과연 공권력에 의해 침탈될 것인가? “그렇다면 노무현 정권은 스스로 참여정부에 사망선고를 내리는 것이다.” 김경욱(37) 위원장과 200여 조합원들은 단호했다. “우리들 스스로 걸어나가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다.” 싸움이 장기화하기 전에 이랜드 사용자 쪽은 아름다운 패배를 선택할까? 농성 조합원들은 한국 시민사회에 묻는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저 고용안정과 많지 않은 임금 인상, 그뿐이다. 그게 지나친가?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면 연대하라. 장래 비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큰 젊은이들은 특히. hongsh@hani.co.kr
동영상 이규호 은지희 피디 박종찬 기자 recrom295@news.hani.co.kr ▶ “80만원 박봉, 그 작은 희망마저 잘라버려”
▶ [이랜드 평촌아울렛] “퇴직금 안주려 1년뒤엔 타인 이름 계약”
▶ 이랜드 ‘0개월 계약’등 위법 예사로…사태 키웠다
▶ [이랜드 파업 13일째] 출입문 차단 경찰과 충돌…긴장고조
“고객·소비자 아닌 같은 노동자의 눈으로 봐주길” [홍세화의 세상속으로] 이랜드 파업현장에서 만난 사람들 [%%TAGSTORY3%%] 매장 점거 농성 13일째, 우리 사회 노동운동에서 파업노동자들이 공장을 세운 적은 있었지만 대형 유통업체의 매장을 점거해 영업을 정지시킨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동안 열악한 노동조건을 견뎌 온 주부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투쟁의 최전선에 서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먼저 대형 유통산업이 가진 특수한 성격을 들 수 있다. 단순 업무라는 이유로 값싼 임금을 받는 계산원들이지만 바로 그 계산대를 정지시키면 모든 영업행위가 정지된다. 정규직이든 고액 연봉 관리직이든 이를 막을 수 없다. 둘째, 정규직 이기주의에 빠지지 않은 이랜드 일반노조의 건강성과 조직력이다. 이 점은 민주노총의 같은 연맹 산하 현대백화점 노조가 회사 쪽의 비정규직 외주화에 합의해 준 점과 비교된다. 셋째, 주부 노동자들에게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을 감수하게 한 고용안정마저 이번에 거부당하면서 그동안 쌓였던 울분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찍순이’라고 부른다. 왕처럼 모셔야 하는 손님 앞에서, 그리고 관리자들 앞에서 그들은 사람이라기보다 찍는 기계다. 끝없이 바코드를 찍는 기계들, 그들이 마침내 “우리도 사람이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여기에 이번 파업의 폭발력과 추진력이 있다. 24시간 점거 농성만으로 파업을 마치려고 했던 노조 간부들에 비해, 조합원들이 계속 파업을 결의했다. 투쟁 현장이 학습 현장이라는, 이젠 전설처럼 남은 얘기가 여기서 현실이 되었다. 지난해에 130억원을 십일조로 냈다는 박성수 이랜드 회장이 “성경에 노조가 없다”라는 말을 할 때 “성경에 비정규직도 없다”며 당당히 맞설 줄 알게 됐다. 홈에버 여성 노동자들의 눈물 [%%TAGSTORY1%%] 계산원, 그들은 서서 일한다. 6시간 동안 화장실에도 못 가도 계산대는 지켜야 할 때도 있다. 왜 앉아서 일하면 안 될까? 프랑스에서 계산원들이 앉아서 일하는 모습에 익숙했던 내게 다가온 질문이다. 첫째는 서서 일해야 빠르게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곧, 효율성이다. 둘째, 손님 앞에서 앉아서 일할 수 없다는 이유, 곧 친절로 포장된 봉건성이다. 이랜드 일반노조 이남신(43) 수석부위원장은 당부했다. “부디 같은 노동자의 눈으로 봐 주세요. 고객이나 소비자가 아닌, 같은 노동자의 눈으로요. 하루 8시간씩 기계처럼 찍어야 하는 고통을 조금은 헤아려 주세요, 그래서 따뜻한 마음, 기다리는 자세로 계산원을 봐주세요.” 그렇게 한 달 고생해서 손에 쥐는 돈은 80만원. 나는 양해를 구하며 물었다. “80만원, 그 돈을 어디에 쓰시나요?” 한 조합원이 말했다. “집에 돌아가면 녹초가 돼서 아이들이랑 밥을 사먹기도 해요.” “아빠 사업이 잘못됐는데 …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안 들어줄 수는 없고 ….” 아이 셋을 두고 있다는 다른 조합원은 어느새 눈시울을 붉혔다. 40대를 전후한, 거의 모두 중고생을 둔 엄마들이다. 사교육 부담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어느 조합원의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면 정말 더 좋겠지만, 내가 원할 때까지, 내가 스스로 그만둘 때까지 열심히 홈에버에 다닐 것이다. 오직 그것이 나의 작은 바람이다. 그래서 항상 고마운 직장, 우리 아이 학원비와 생활비를 벌게 해 주는 고마운 직장으로 기억에 남길 바랄 뿐이다. 계약기간이 끝났다고 나를 버리는, 나를 폐품 정도로 생각하는 직장이라는 기억은 하고 싶지 않다.” 계산대 ‘찍순이’들 종일 서서 일하며 월 80만원 [%%TAGSTORY2%%] 우리 사회 인력시장에서 대형 유통업계가 모성을 보호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해 주는, 사회 양극화 해소에 기여하는 일자리가 될 수는 없을까? 대형마트 때문에 기울어가는 지역 영세상인들과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는 없을까? 인력 수급관리는 시장의 문제지만 정치 문제이기도 하다. 비정규직 문제가 기간제나 파견제 등 간접 고용을 늘려서 해결될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치권은 거의 대선만 바라보는 해바라기들이 된 지 오래다. 12일 오전 권영길·심상정 의원과 함께 연대 인사차 찾아 온 민주노동당의 노회찬 의원은 “그동안 말많던 노무현 대통령이 이 문제에 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고 한마디했다. 홈에버 농성장은 11일 오후 4시부터 완전 봉쇄됐다. 12일에는 지하출 입구에서 대치하기도 했고 마포경찰서장의 해산을 요구하는 확성기 소리도 들려왔다. 과연 공권력에 의해 침탈될 것인가? “그렇다면 노무현 정권은 스스로 참여정부에 사망선고를 내리는 것이다.” 김경욱(37) 위원장과 200여 조합원들은 단호했다. “우리들 스스로 걸어나가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다.” 싸움이 장기화하기 전에 이랜드 사용자 쪽은 아름다운 패배를 선택할까? 농성 조합원들은 한국 시민사회에 묻는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저 고용안정과 많지 않은 임금 인상, 그뿐이다. 그게 지나친가?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면 연대하라. 장래 비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큰 젊은이들은 특히. hongsh@hani.co.kr
동영상 이규호 은지희 피디 박종찬 기자 recrom295@news.hani.co.kr ▶ “80만원 박봉, 그 작은 희망마저 잘라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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