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사무실에서 나두식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대표지회장(왼쪽)과 최우수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가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 을 직접고용하는 내용의 합의문을 작성한 뒤 서명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제공
17일 삼성전자서비스 노사 합의를 통해 확인된 사실은 두가지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 원칙 포기와, 8천명 규모의 하청노동자 직접고용 등이다. 그동안 한국의 주요 대기업은 간접고용을 통해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사용자의 책임을 흔히 회피해왔다는 점에서, 삼성 노사의 이번 대규모 직접고용 합의는 의미가 적지 않다는 평가다.
삼성전자서비스와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이날 합의한 내용을 보면, 회사는 협력업체 직원을 직접고용하고 노조·이해당사자들과 빠른 시일 내에 직접고용의 구체적 내용에 관한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삼성전자서비스의 간접고용 인력 규모는 8천명에 이르는 가전제품 설치·수리기사와 콜센터 등에서 일하는 지원인력 등을 모두 합치면 1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노사는 먼저 기사를 직접고용한 뒤 지원인력의 직접고용에 관한 협의도 진행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 공시 현황을 보면, 300인 이상 대기업의 간접고용 비율은 19%(90만2천명)에 이른다. 이 통계에는 삼성전자서비스 하청노동자처럼 ‘같은 사업장’에서 근무하지 않는 노동자는 빠졌다. 그런데도 간접고용 비율이 이처럼 높게 나타나는 것이다. ‘위험의 외주화’나 ‘질 낮은 일자리 양산’ 등 무분별한 간접고용 행태에 대한 문제 제기는 꾸준히 이뤄졌으나, 대기업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의 정규직화는 더디게 이뤄져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삼성전자서비스 노사의 직접고용 정규직화 합의 ‘과정’과 ‘결과’는 앞서 다른 대기업이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한 사례와 비교하면, 한 걸음 더 나아간 합의로 평가된다. 예컨대 다른 기업들은 법원이나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을 통해 불법파견 판단을 받은 뒤에야 정규직화에 나섰다. 이마트는 2013년 고용부의 불법파견 판정 이후 1만여명의 캐시어 노동자를 정규직화했고, 파리바게뜨도 고용부의 불법파견 판정 이후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화’를 받아들였다. 사내하청 노동자의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잇따라 패소했던 현대·기아자동차는 기존의 사내하청 노동자를 바로 정규직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채용’ 방식으로 정규직 전환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반면 삼성전자서비스의 경우 2013년 고용부 근로감독에서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판정이 나왔고, 지난해 1월 노동자들이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1심에서 노동자들이 패소한 바 있다. 사쪽에 결코 불리하지 않은 조건에서 정규직화를, 그것도 자회사 정규직화가 아닌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했다는 점에서 앞선 사례들과 대비된다. 이는 검찰의 ‘노조와해 공작 의혹’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가 이뤄지면서 삼성이 스스로 입지가 좁아진 점을 고려해 내린 결정으로 보인다. 실제로 삼성 쪽은 지난 13일부터 시작된 노사협의 초반에만 하더라도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화를 제안했으나, 지회의 반대로 ‘직접고용 정규직화’로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돈문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상임대표(가톨릭대 교수)는 “법적 판단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노사합의를 통해 온전한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이룬 것은 매우 긍정적인 사례”라며 “자회사 정규직화가 남발되고 있는 공공부문 정규직화 과정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밝혔다.
2013년 7월 출범 이후 ‘직접고용 정규직화’라는 노조 최대의 투쟁 과제를 쟁취한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정규직화 과정과 조건에 대한 세부 협의라는 또 다른 과제를 남기게 됐다. 정규직화를 진행한 일부 대기업과 공공부문에서 정규직화 이후에 노동조건이 오히려 후퇴되는 사례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회는 △정년보장과 고용안정 △노조 할 권리 확보 △건당 수수료제 폐지 등을 정규직화 과정에서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태도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고정급에 수리 건당 수수료를 성과급의 형태로 받고 있는데, 이 때문에 수리 수요가 적은 비수기에는 생활임금이 보장되지 못한다는 문제를 제기해왔다. 나두식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은 이번 합의에 대해 “‘삼성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고 외친 삼성전자서비스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승리”라며 “천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삼성전자서비스 간접고용 비정규직 투쟁을 계기로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부당노동행위 등 불법적인 행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뤄진 합의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 밑바탕에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라며 “삼성이 밝힌 대로 질 좋은 일자리를 위한 노력의 방편으로 이뤄진 합의라고 한다면 삼성전자서비스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전 계열사 차원에서 일자리 질을 높이고 노동인권을 향상할 방법을 시민사회의 참여 속에 마련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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