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숙/소설가
희망나무
가계부에 적힌 “죽고 싶다”는 아내의 낙서를 본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가고 월세방을 얻어 이사한 뒤부터 아내는 늘 우울해했습니다.
10년 만에 24평 아파트를 마련하고 아내는 집을 쓸고 닦고 하면서 너무나 좋아했지요. 퇴근을 하면 아내는 정갈하고 맛깔스런 밥상을 차려놓고 미소를 지으며 그를 맞아주곤 했습니다. 아내는 갑자기 바뀐 환경에 쉽사리 적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두 아이가 다니던 영어 학원과 피아노 학원도 끊을 수밖에 없었지요. 아내는 여고동창회나 계모임에도 일체 나가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머리핀을 조립하는 부업에만 골몰했습니다. 이사 온 지 일 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내는 이웃과 전혀 왕래도 없이 지냈지요.
그는 아내가 차라리 바가지를 긁거나 화라도 내기를 바랐습니다. 말수가 없어진 무표정한 아내를 보니 숨이 막혀 견딜 수 없었습니다. 집이 가난해진 것보다 아내의 얼굴에 표정이 사라진 것이 더 괴로웠지요. 작은 것에도 기뻐할 줄 알고 늘 환한 미소를 달고 살던 아내였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연일 우울증을 앓던 아내들이 저지른 무서운 사고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아이들과 동반자살을 한다거나 심지어 남편을 칼로 찔러 살해하는 아내도 있었습니다. 아내의 우울증도 나날이 심해져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아내의 생일날 일찍 일어나 미역국을 끓였지요. 생일상을 차리는 남편을 아내는 아주 낯선 사람을 바라보는 표정으로 쳐다보았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수강증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당신 미쳤어요? 우리 처지에 요가 수강증이라니? 정신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애들 학원도 하나 못 보내고 있는데.”
6만원을 주고 끊은 요가수강증을 보고 아내가 펄쩍 뛰었지요. 아내는 형편이 괜찮을 무렵만 해도 아이들 학원 하나라도 더 보내야 한다며, 단 한 번도 헬스장이나 수영장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짠순이 아줌마였지요.
“여보, 아무리 힘들고 돈이 없지만, 이렇게 집 안에만 틀어 박혀 있지 말고 나가서 운동도 하고 그래. 마음도 운동이 필요한 거야. 마음도 햇볕을 쬐고 광합성을 해주어야 해. 우리 여왕님이 웃지 않으니까 마치 우리 집에 햇빛이 사라진 것만 같아. 당신이 행복해야 우리가 행복해. 당신은 우리 집 태양이라구.” “다이아몬드 목걸이보다 당신의 선물이 백배 천배 더 좋아요.” 눈물이 그렁한 아내가 남편의 목을 덥석 끌어안았습니다. 마치 오래도록 집을 비웠던 아내가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김옥숙/소설가
“여보, 아무리 힘들고 돈이 없지만, 이렇게 집 안에만 틀어 박혀 있지 말고 나가서 운동도 하고 그래. 마음도 운동이 필요한 거야. 마음도 햇볕을 쬐고 광합성을 해주어야 해. 우리 여왕님이 웃지 않으니까 마치 우리 집에 햇빛이 사라진 것만 같아. 당신이 행복해야 우리가 행복해. 당신은 우리 집 태양이라구.” “다이아몬드 목걸이보다 당신의 선물이 백배 천배 더 좋아요.” 눈물이 그렁한 아내가 남편의 목을 덥석 끌어안았습니다. 마치 오래도록 집을 비웠던 아내가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김옥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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