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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관장님은 마음 허기 채워준 엄마”

등록 2006-08-08 18:37수정 2006-08-09 13:54

김옥숙/소설가
김옥숙/소설가
희망나무 /

도서관 문을 열자마자 아줌마 한 사람이 쭈뼛거리며 들어섰지요. 총각무로 담은 김치 한 통과 쪽지 한 장을 내밀더니 도망치듯 나가버리는 게 아니겠어요.

구 관장은 그 아줌마가 두고 간 편지를 읽으며 두 아이가 처음 도서관에 오던 날을 떠올렸습니다. 라면 세 개를 끓여 도서관 실무자 두 사람과 저녁을 먹으려 하던 참이었지요. 두 아이가 문을 빼꼼히 열고는 도서관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구 관장은 두 아이가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보았습니다.

“아저씨, 컴퓨터 해도 돼요?”

“컴퓨터 하고 싶어서 온 모양이구나. 너희들, 저녁은 먹었니? 라면 좀 먹을래?”

두 아이는 몇 끼를 굶은 것처럼 후루룩 소리를 내며 정신없이 라면을 건져 먹었지요. 그날 구 관장은 라면 세 개를 다시 끓여야 했습니다.

도서관 관장님께

저는 영주와 영훈이 엄마입니다. 아시다시피 영주와 영훈이는 동네에서 내놓은 말썽꾸러기였지요. 아이들만 남겨두고 밤늦도록 공장에서 일하고 오면 동네 슈퍼 아줌마나 집주인 할머니께서 아이들이 훔친 돈이나 과자 값을 변상해달라며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르고 가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폭력을 휘두르는 술주정뱅이 남편과 이혼하고 두 아이를 돌보며 살아간다는 것은 마치 살얼음판을 내딛는 것처럼 하루하루가 불안한 날들이었습니다. 유일한 희망인 아이들이 점점 비뚤어지는 것을 보면서 모든 희망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이 동네에 생긴 도서관에 들락거리고 나서부터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영훈이도 많이 차분해졌고 영주는 얼마 전에 일기를 잘 쓴다고 선생님께 칭찬을 받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겨우 밥을 먹이고 잠을 재워주는 엄마노릇만 하는데 도서관은 허기진 마음을 채워주는 엄마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는 어쩌면 책이 밥보다 더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도서관 ‘더불어숲’이 우리 동네에 오래오래 있어주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작은 소망입니다.

구 관장이 김치통을 열고 총각무를 집어 드는 순간 도서관 문이 벌컥 열립니다. “노총각 관장님 아저씨! 안녕하세요?”

영훈이가 도서관에 뛰어 들어오며 구 관장을 보고는 인사를 합니다. 10년 넘게 도서관을 꾸려오느라 장가도 못간, 마흔을 훌쩍 넘긴 노총각 구 관장이 영훈이에게 꿀밤을 먹입니다. 도서관 ‘더불어숲’의 불빛이 더없이 환한 저녁입니다.김옥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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