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숙/소설가
희망나무 /
나는 현순씨의 아주 오래된 검은색 지갑이랍니다. 비싼 지갑이냐고요? 흔하디흔한 만 원짜리 비닐지갑이에요. 현순씨는 건망증에 있어서는, 요즘 아이들이 잘 쓰는 말로 아마 거의 지존이자 초울트라급일 거예요. 까먹을 게 따로 있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이 입학식 날짜까지 까먹었다니까요. 게다가,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면서 가방의 내용물을 다 부어놓고 휴대폰을 찾는 아줌마라니까요. 아이를 잃어버리지 않고 용케 셋씩이나 키우고 있는데 신기하기도 하고 늘 조마조마하기도 합니다.
오늘 현순씨는 현금지급기에서 칠십만 원을 찾았지요. 친정아버지의 병원비에 보태드리기 위해서였죠. 지금 나를 들고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있는 사람은 현순씨가 아니라 처음 보는 아줌마예요.
“이 돈이면 민호 아빠 휠체어를 사줄 수 있을 거야. 아니지. 우리 민호 컴퓨터를 사줄 수 있을 텐데. 그 착한 애가 부모를 잘못 만나는 바람에… 돈이 원수지, 원수야.”
그래요. 현순씨가 나를 떨어뜨리고 가버린 거예요. 아이 셋을 잘 키워보겠다고 아동심리학 교수의 부모교육 강연을 들으러 온 것은 이해한다 이거예요. 근데 왜 나를 강당 바닥에 떨어뜨리고 가느냐 이 말입니다.
“아니야, 내가 아무리 청소를 해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지만 이건 안 될 말이야. 난 지금까지 내 힘으로 남의 힘 안 빌리고 떳떳하게 살아왔어. 이 돈 때문에 부끄러운 엄마가 될 수는 없어.”
아! 정말이지 현순씨, 왜 이런 사고를 치고 말았냐고요. 왜, 지갑을 바닥에 떨어뜨려 이 착한 아줌마의 마음을 갈대처럼 흔들어 놓느냐 이거예요. 한참 동안 한숨을 쉬며 고민을 하던 청소 아줌마는 나를 들고는 건물관리실로 내려갔어요. 관리실 안에 앉아 있는 현순씨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어요. 나를 보고는 살아서 돌아온 식구를 만난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요.
“어, 아줌마! 이거 내 지갑인데, 어떻게 된 거예요?” “청소하다가 주웠는데, 강당 바닥에 떨어져 있었어요.” “아줌마,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현순씨는 처음 보는 아줌마를 덥석 끌어안기까지 하면서 난리법석을 부리는 것이었어요. 현순씨는 또 그놈의 건망증 탓인지 아줌마에게 고맙다는 인사만 하고는 그냥 밖으로 나와 버리는 것 있죠. 어찌나 얄밉던지요. “앗차차! 뭐, 까먹은 거 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현순씨는 약국으로 뛰어 들어갔어요. 종합영양제 한 통을 산 현순씨는 쿵쾅거리며 건물 계단을 뛰어올라 갔지요. 계단에서 걸레질을 하고 있는 아줌마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어요. 창문 틈으로 소나기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매미 소리가 유난히 시원하게 느껴지는 날이었지요. 김옥숙/소설가
“어, 아줌마! 이거 내 지갑인데, 어떻게 된 거예요?” “청소하다가 주웠는데, 강당 바닥에 떨어져 있었어요.” “아줌마,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현순씨는 처음 보는 아줌마를 덥석 끌어안기까지 하면서 난리법석을 부리는 것이었어요. 현순씨는 또 그놈의 건망증 탓인지 아줌마에게 고맙다는 인사만 하고는 그냥 밖으로 나와 버리는 것 있죠. 어찌나 얄밉던지요. “앗차차! 뭐, 까먹은 거 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현순씨는 약국으로 뛰어 들어갔어요. 종합영양제 한 통을 산 현순씨는 쿵쾅거리며 건물 계단을 뛰어올라 갔지요. 계단에서 걸레질을 하고 있는 아줌마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어요. 창문 틈으로 소나기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매미 소리가 유난히 시원하게 느껴지는 날이었지요. 김옥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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