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숙/소설가
희망나무 /
“누군 땅 파서 장사하는 줄 알아요? 15만원이 뉘 집 개 이름인 줄 알아요? 돈이 없으면 먹지를 말든가!”, “아줌마! 우리도 여기 단골손님이잖아요? 다음에 돈 준다고 하잖아요. 깜빡하고 지갑을 안 갖고 왔다니까요. 이 아줌마가 속구만 살았나? 아, 진짜 사람 열 받게 만드네!”, “그래요, 속구만 살았어! 그러니까, 지금 당장 음식 값 내놔요!”,“여보, 당신이 좀 참아. 손님들이 불안해서 식사도 못하시잖아.”
남편이 흥분한 미자를 뜯어말립니다. 남편이 청년들에게 연락처를 받고는 눈짓을 합니다. 팔에 문신까지 새긴 건달 청년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밖으로 몰려나갑니다. 미자는 분을 못 이겨 씩씩거립니다.
순박하고 친절하기로 소문난 미자가 이토록 흥분한 이유는 한 달 전에 있었던 일 때문입니다. 저녁마다 돼지갈비 삼인분에 공깃밥을 시켜 먹는 단골손님이 있었습니다. 미남형인데다 키도 훤칠한 그 청년은 단번에 식당 아줌마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요. 미자는 자신이 직접 절인 돼지갈비를 그토록 맛있게 먹어주는 손님이 있다는 사실이 뿌듯해 음료수를 서비스로 주기도 했습니다. 인테리어 집에서 일한다는 그 청년은 “잘 먹고 갑니다.” 라고 늘 깍듯하게 인사를 해서 미자를 흐뭇하게 만들었습니다.
손님이 아주 많은 토요일 저녁이었습니다. 단골손님인 그 청년이 아주 다급한 얼굴로 식당 문을 밀치고 들어왔습니다. 차가 갑자기 견인되었는데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돈 십만 원만 빌려달라고 하기에 미자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돈을 빌려주고는 음료수 한 잔까지 따라 내밀었습니다. 그 후로 그 청년은 발걸음을 뚝 끊어버렸습니다. 보름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그 청년은 식당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돈도 돈이었지만 그 누구도 믿을 사람이 없다는 것에 더 화가 치밀었습니다.
오늘따라 식당의 셔터를 올리는 미자는 힘이 하나도 없는 모습입니다. 가뜩이나 장사도 안 되는 판국인데, 음식 값을 15만원이나 떼였으니 살맛이 나지 않습니다. 들어가려던 미자는 누군가 부르기에 뒤를 돌아봅니다. “아줌마, 이제 문 열어요? 여기 돈 있어요. 한번 세어 보세요.” 미자는 입을 딱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합니다. “내가 다른 돈은 몰라도 음식 값은 안 떼먹는다구요. 우리 엄마도 시장에서 국수 장사해서 날 키웠어요. 아줌마! 이다음에 음료수 서비스, 아셨죠?”
건달 청년이 한껏 폼을 재며 건들거리며 골목길을 걸어갑니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했던 것이 부끄러워져 미자의 뺨이 붉게 물듭니다. 눈부신 초가을의 햇살도 미자를 따라 식당 안으로 들어갑니다.
김옥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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