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이 24일 오후 국회 앞에서 열린 언론중재법 강행처리 중단 촉구 언론현업단체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언론의 고의나 중과실에 의한 허위·조작보도에 대해, 민주당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을 추진 중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난 20~21일 <티비에스>(TBS) 의뢰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수행한 여론조사의 질문이다. 전국 성인 1007명(무선 100%, 응답률 6.9%)을 상대로 한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54.1%가 ‘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41.2%는 ‘매우 찬성한다’고 답했다. ‘매우 반대한다’(26%)와 ‘대체로 반대한다’(11.5%)를 더한 ‘반대’ 의견은 37.5%에 그쳤다.
언론 대상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 결과는, 올해 초부터 꾸준히 ‘찬성’ 응답이 전체의 절반을 넘겼다. 지난 2월 <오마이뉴스> 의뢰 리얼미터 조사, 4월 리서치뷰 조사, 7월 <와이티엔>(YTN)의 <더뉴스>가 의뢰한 리얼미터 조사 모두 ‘찬성’이 과반을 기록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질문 자체가 ‘반대’ 응답이 어려운 윤리적 내용으로 구성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언론중재법 개정안과 관련해,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켜 길들이려는 시도”라는 반대 의견을 질문에 포함한 <와이티엔>과 리얼미터의 7월 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다만 같은 조사에서 지지 정당별 찬반 응답이 큰 격차를 보여, ‘정치 양극화’가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가운데 83.1%는 징벌적 손배제 도입을 찬성한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의 60.9%는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지 정당을 정하지 않은 무당층에서는 찬성 응답이 42.9%, 반대가 32.2%를 기록했다. 특히 무당층에서는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24.9%로 나타나, 전체 평균인 8.0%보다 높은 비율을 보였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가 정치 양극화가 심하기 때문에, 나와 생각이 다른 언론 매체를 불신하고 적대하는 ‘적대적 매체 지각’ 현상이 드러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여론의 정파적 특성을 일부 고려하더라도 “‘징벌적 손배제’ 찬성 여론에서 드러난 시민들의 ‘언론개혁’ 열망과 ‘저품질 저널리즘’ 비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언론학계에서는 ‘가짜뉴스’ 개념의 모호함과 정파적 공격을 위한 남용 문제로 해당 용어 사용을 자제하는 분위기지만, 시민들은 ‘가짜뉴스’와 언론의 질 낮은 비윤리적 보도를 구분하지 않는다. 2019년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를 보면, ‘언론보도 중 사실확인 부족으로 생기는 오보 ’ ‘선정적 제목을 붙인 낚시성 기사 ’ ‘클릭 수 높이기 위해 짜깁기하거나 동일 내용을 반복 게재하는 기사 ’ ‘소셜네트워크서비스 (SNS) 등에 올라온 내용을 확인 없이 그대로 전재한 기사 ’ ‘한쪽 입장만 혹은 전체 사건 중 일부분만 전달하는 편파적 기사 ’에 대해, ‘가짜뉴스라고 생각한다 ’고 응답한 비율이 모두 80%를 웃돌았다. 저널리즘의 본령인 사실 확인 ·검증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상업적 동기만 앞세운 보도들이 언론 불신을 키우고 , 징벌적 손배제 도입 찬성 여론을 키웠다고 볼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이러한 국민 여론에 대한 제대로 된 ‘해법’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현재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언론계, 학계, 언론시민단체 전반에서 ‘강행 처리 반대’ 입장을 내놓은 상태다. 기존에 언론 대상 징벌적 손배제 도입을 찬성한 쪽은 이번 개정안의 실효성을 의심하고, 반대하는 쪽은 허위·조작보도 개념 및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의 모호함으로 인해 언론 전체를 ‘가짜뉴스’ 진원지로 모는 낙인 효과로 언론 불신만 커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양쪽 다 사회적 숙의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내용이 허술한 법안을 통과시키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만 소모된다는 이유에서 지금의 강행 처리를 반대하는 것이다.
현업 언론인 단체들은 이미 헌법소원 청구를 예고한 상태다. 학계에선 이미 올해에만 ‘언론사의 위법한 보도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의 합헌성 검토’(김상유, <언론과 법>, 20권 1호), ‘언론에 적용될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법률안’의 위헌성 검토’(이승선, <지역과 커뮤니케이션>, 25권 2호) 등 징벌적 손배제 도입의 위헌성을 짚은 연구 결과들이 잇따라 발표됐다. 박재영 서울고등법원 판사는 지난해 12월 언론중재위원회가 연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에 따른 법적·실무적 쟁점’ 토론회에서 “(징벌적 손배)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예측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라며 “행정 또는 형사 절차 등 공적 제재가 엄격한 우리나라 상황에서 공적 제재 외에 준형사적 성격을 갖고 있는 제도가 함께 적용되는 경우 이중처벌에 해당될 수 있다”는 비판적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언론에 대한 불신을 잠재우기 위해선 법 개정보다 언론계의 자정 노력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징벌적 손배제 찬성 여론이 높은 이유는 그동안 국민에게 언론 보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많이 쌓였기 때문”이라며 “이에 대한 대응이 반드시 법률로 언론을 벌주려는 방식일 필요는 없다. 언론계에서 자정에 나서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도 “정부 기구인 언론중재위의 규모를 자꾸 키울 것이 아니라, 자율규제 기구를 강화해야 한다”며 “언론 사업자 단체와 현업 언론인 단체가 중심이 돼 협약체를 만들고 준엄한 자율규제 기구를 만드는 방안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김효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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