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12일 황우여(가운데) 당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공용브리핑실에서 중학교 ‘역사’교과서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발행체제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맨 왼쪽이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당시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이다. 세종시/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4일 박근혜 정부 역사 국정교과서 추진의 주역이었던 이배용 전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원장을 특별고문으로 임명했다. 윤 당선자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친일·독재를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폐기된 국정교과서를 주도한 인물을 특별고문이라는 상징적 자리에 앉히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시도된 ‘역사적 퇴행’이 새 정부에서 재연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윤 당선자는 이날 이화여대 전 총장 출신이기도 한 이배용 전 원장을 특별고문으로 임명한 이유에 대해 “평소 국민을 사랑하고 두려운 줄 아는 애민 정신이, 진정한 국가지도자상임을 강조해온 그의 가치관이 윤석열 정부와 지향점이 일치한다”고 밝혔다. 특별고문은 정치 원로들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당선자가 자문을 듣고, 각계 각층의 소통 창구 역할로 활용해 왔다. 윤 당선자는 지난 16일 특별고문으로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장관, 임태희 전 한경대 총장,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 박보균 전 중앙일보 부사장, 김영환 전 과학기술부 장관, 이동관 디지털서울 문화예술대 총장, 유종필 전 국회도서관장을 임명한 바 있다. 윤 당선자는 특히 이번 인수위 특별고문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 인수위에서 일했던 인사들을 대거 발탁했다.
이 고문은 보수 성향의 역사학자로,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자문기구인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2013년 9월부터 2016년 9월까지 한중연 원장을 맡았다. 한중연은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과 함께 3대 역사 연구 국가기관으로 꼽힌다. 2018년 교육부가 발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백서’를 보면, 이 전 원장은 청와대의 추천으로 역사 국정교과서 편찬심의위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는 청와대가 역사교과서의 구체적 내용과 관련된 지시를 내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전 원장도 청와대 수석이나 그 이상급 인사들과 접촉하고 있었다고 백서는 기록하고 있다. 이 전 원장은 2015년 10월 교육부가 중학교 역사 교과서와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발표하는 기자회견 자리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을 불과 3개월가량 남겨놓은 2016년 11월28일 공개된 역사 국정교과서는 박정희 정권의 ‘공’을 부풀리고 ‘과’를 합리화하며 친일파에 대한 서술도 기존 검정교과서에 견줘 대폭 축소돼 있었다. 박정희 유신독재의 3선 개헌이 국가안보를 위한 선택인 것처럼 읽힐 수 있도록 표현한 부분도 있었다. 특히 일부 뉴라이트 학자를 포함한 극우진영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닌 ‘대한민국 수립’으로 고쳤다. 이는 임시정부와 항일운동의 역사와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직후 역사 국정교과서 폐기를 지시했으며, 교육부는 2018년 6월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권력의 횡포이자, 시대착오적인 역사교육 농단이었다”며 사과했다.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에서는 즉각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에 앞장섰던 한 전직 교수는 “국정교과서를 만든 정부의 주요 인사를 다시 중용하면 그 사람의 역사관이 새 정부 정책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며 “전 국민적인 반대에 부딪혔던만큼 국정화라는 형식을 취하지는 않겠지만 현행 검정교과서를 ‘좌편향’ 등으로 몰고가 내용을 수정하려는 시도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박래훈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도 “이 전 원장은 당시 국정화에 앞장섰던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라며 “역사는 국가가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다양한 해석이 필요함에도 박근혜 정부는 그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역사관’만을 강요함으로써 국민적 반대에 부딪혔던 것”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역사교육에 있어서 퇴행적인 시도가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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