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서울학생인권조례지키기 출범식이 열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정부가 각 시·도 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제·개정할 때 참조하라며 ‘학교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 예시안’(예시안)을 내놨다. 교사의 교육활동 침해 논란 이후 교육 3주체(교원, 학생, 학부모)의 권리와 책임을 균형 있게 담았다는 게 정부 설명인데, ‘차별받지 않을 권리’ ‘휴식권’ ‘사생활의 권리’ 등 학생 인권과 관련한 내용은 모두 들어내 학생 인권이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교육부는 29일 ‘학교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 예시안’을 마련해 각 시·도 교육청에 안내했다. 교육부는 “현행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의 권리는 지나치게 강조한 반면 권리에 따른 책임은 경시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있다”고 예시안을 낸 배경을 설명했다. 현재 서울, 경기, 인천, 충남, 광주, 전북, 제주 등 7개 시·도에 있는 학생인권조례를 대체하는 예시안의 성격을 분명히 한 것이다.
예시안은 크게 학생·교원·학부모의 권리와 책임을 담고 있다. 학생의 경우 ‘교육활동에 참여할 권리’와 함께 ‘교원의 교권과 학생의 학습권 등 모든 학교 구성원의 권리를 존중하고 이를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책임이 함께 적혔다. 교원은 ‘외부로부터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고, 동시에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해야 할 책임’도 있다.
문제는 ‘사생활의 자유’ ‘차별받지 않을 권리’ ‘휴식권’ 등 현재 학생인권조례에 담긴 학생 인권과 관련한 내용이 대부분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령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는 성별, 경제적 지위, 성적 지향 등에 따라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했는데, 예시안은 이를 담지 않았다. 정규교육과정 이외의 교육활동을 학생에게 강요할 수 없도록 한 ‘휴식권’ 관련 조항도 예시안엔 없다. 외려 예시안은 정규 수업뿐 아니라 ‘기타 활동’에 성실하게 참여하는 것을 학생의 책임으로 적어 학생인권조례의 휴식권과 충돌할 여지가 있다. 예시안에는 다른 조례와 충돌할 경우 ‘이 조례를 우선 적용한다’는 조항도 담겼다.
김영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교육위원회 소속 변호사는 “예시안은 학생 인권을 학습권이라는 영역으로만 좁혔다”며 “학생인권조례는 (학습권을 넘어) 학생의 인권을 천명한 조례로 예시안으로 포괄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이 빠진 예시안에 학생 인권이 후퇴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예시안은 안내 사항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학생인권조례 제·개정은 시·도 교육청과 지역 의회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가 내놓은 예시안이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각 지역의 갈등에 불을 댕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장 서울시의회는 국민의힘 시의원들 주도로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을 조만간 통과시킬 것으로 보이는데, 교육부의 예시안으로 폐지 주장에 한층 힘이 실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학생인권조례 중 권리에 관한 조항이 후퇴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서울학생인권지키기공동대책위원회 등 학생 인권 단체는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막기 위해 서울시의회의 폐지안 발의에 대한 효력 및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30일 내기로 했다.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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