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고 열풍의 그늘
학교 발표 이전 문자 보내 “간담회 오라”
사설기관에 출제맡겨 ‘부적절 관계’ 의심
사설기관에 출제맡겨 ‘부적절 관계’ 의심
[외국어고 열풍의 그늘 ①] 외고와 학원의 부적절한 ‘공생’
파행 운영을 둘러싼 여러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특수목적고 열풍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전환기에 접어든 사교육 시장을 이끄는 게 바로 특목고 전문학원들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일부 외국어고와 전문학원의 유착, 외고 입시경쟁 과열 등 왜곡된 행태도 여전하다. 교육부가 올해 초 외고 실태조사와 입시개선안 발표 등을 통해 특목고의 문제점을 해소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장의 반응은 차갑다. 외고 열풍의 그늘을 세차례에 나눠 살펴본다. 편집자주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는 특목고 전문학원으로 유명한 ㅍ 학원의 2008학년도 외국어고등학교 입시 설명회가 열리고 있었다. 요즘 가장 잘나가는 특목고 전문학원답게 청중석 500여석이 중학생 학부모들로 가득 찼다. 이날 설명회에 연사로 등장한 사람은 지난해 최고의 입시경쟁률을 자랑했던 경기지역 ㅁ 외고의 현직 수학교사이자 교무부장인 전아무개씨였다. 전씨는 “외고 입시는 결국 영어와 창의·사고력에서 결판난다.” “평준화 교육 실패로 특목고가 뜨고 있는 거 아니냐.” “올해 교육부에서 수리력 문제를 금지했으니까 추론적 문제가 나올 것이다”는 등의 내용으로 40여분 동안 열성적인 강의를 펼쳤다. 학부모들은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부지런히 받아적었다.
현직 교사의 학원 주최 입시설명회 참석은 교육부에서 금지하는 사항이다. 교육부는 지난달 7일 외국어고 운영실태 점검(지난해 11~12월 실시) 결과를 발표하면서 ‘부적정 사례’의 하나로 이를 꼽고 앞으로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교육부의 지침이 휴짓조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교사가 학원 설명회 열강 교육부 지침 비웃는 ‘공생’
외고는 ‘수준높은 문제’ 내 사교육 키우고
학원은 ‘준비된 수험생’ 육성 통해 뒷받침
이 설명회를 주최한 ㅍ 학원 홍보담당 관계자는 “이 선생님은 학교의 교사 입장으로 나온 게 아니라 창의·사고력 분야 전문가로서 나온 것”이라며 “강의 내용 중에도 특정 학교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직 수학교사이자 교무부장이란 강사의 참석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학원의 ‘권위’를 높여줬을 것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현행 특목고 입시제도 아래서 외고와 사교육 업계는 공생 관계다. 외고는 중학교 수준을 뛰어넘는 문제를 출제해 사교육 시장을 키워주고, 이른바 ‘특목고 전문학원’들은 대학 입시에 맞춰 육성된 ‘준비된 수험생’을 외고에 제공해 준다. 이 과정에서 일부 외고와 학원 사이에는 공생을 넘은 ‘유착’ 징후까지 보인다. 현직 교사가 학원이 주최하는 입시설명회에 참석하는가 하면, 합격자 명단처럼 학교 내부자 말고는 알 수 없는 정보가 사전에 유출되기도 한다. 아예 입시문제 출제를 사설 기관에 맡기는 학교도 있다. 김은수(가명·중3·서울 대치동)양은 지난해 11월 외고 중에서도 선호도가 높은 ㄷ 외고에 합격했다. 김양은 서울 중계동과 대치동에서 특목고 전문학원으로 이름이 높은 ㅌ 학원을 다녔다. 김양이 합격 사실을 알게 된 건 이 학교가 공식적으로 합격자 명단을 발표한 11월3일보다 하루 앞선 2일 저녁이었다. 김양은 “2일 저녁 학원에서 전화를 해서 합격 사실을 알려줬다”고 말했다. 이 학원은 또 3일 아침 7시께 합격자 학부모 전원에게 “합격했으니 11월7일 학원에서 실시하는 합격자 간담회에 참석하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대한 학교와 학원 쪽의 해명은 엇갈렸다. ㄷ 외고 입학관리본부 관계자는 “3일 오전 8시에 제일 먼저 해당 중학교에 알려주고 오전 10시에 인터넷에 발표한 뒤 학원에는 낮 12시 넘어서 협조요청이 오면 알려줬다”며 “합격자 명단이 먼저 유출되는 일은 결코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ㅌ 학원 대표인 김아무개 이사장은 “통상적으로 오전 9시 발표라면 1~2시간 정도 더 빨리 알 수는 있다”며 “학원들이 수험생이 많기 때문에 (우리가) 학생 명단을 학교로 보내면 학교에서 확인을 해주는데, 대부분 학원들이 그러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외고가 얼마나 사교육 업계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는 입시문제 자체를 사설 입시기관에 맡겨 출제하는 경우다. 교육부는 지난달 7일 외고 실태조사 결과 발표를 통해 “3개의 외고가 영어 듣기평가 문항 출제를 사설 기관에 의뢰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한겨레>가 자체 확인한 결과, 경기지역의 ㄱ 외고와 또다른 ㄱ 외고가 사설 입시기관에 문제 출제를 의뢰했다. ㄱ 외고 입학관리담당 교사는 “학교에서 하려면 외국인 섭외도 힘들고 편집할 때 소음도 나는 등 어렵다”며 “학교에서 출제하는 것보다 전문기관에서 하는 게 평가가 더 정확하다”고 말했다. 보안문제를 두고 “그 기관이 공신력 문제가 있고 한번 실수를 하면 그 다음에 출제 의뢰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쪽에서 완전 보안이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고의 입시 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실정이어서 해마다 이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학원업계와 학부모, 학생들 사이에는 이런 정황들을 바탕으로 ‘특정 학원-학교 유착설’이 심심찮게 나온다. 학원 관계자들은 이런 ‘유착’ 의혹을 강력하게 부인했지만 어느 정도 ‘교류’가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특목고 전문학원을 운영하는 ㄱ씨는 “사교육과 공교육 사이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입시에 학원과 학교의 커넥션이 작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몇 해 전 외고 침체기가 있었는데, 외고들이 학교를 홍보하는 과정에서 외고 입시학원 원장들과 간담회를 하기도 했고, 그러면서 친분이 형성된 적은 있다”며 “(요즘도) 전화로 인사드리는 정도”라고 말했다. 또다른 특목고 전문학원 홍보실 관계자는 “학교 쪽에서도 자꾸 문제가 되니까 학원들과 거리를 두려고 한다”며 “정보를 얻는다든지 하는 일은 할 수가 없고 인사를 하고 지내는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교류’를 통해 직접적인 정보까지는 아니더라도 ‘출제 경향’과 같은 간접정보만 얻더라도 이는 그 학원 수강생들의 합격률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런 합격률 상승은 학원생을 유치하는 데 결정적인 홍보자료로 쓰인다. 외고에 가고자 하는 학생들의 마음을 이용해 몇몇 유명학원 중심의 사교육에 의존하도록도 데 일조하는 것은 물론이다. 박주희 석진환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외고는 ‘수준높은 문제’ 내 사교육 키우고
학원은 ‘준비된 수험생’ 육성 통해 뒷받침
교육부의 외고 운영실태 점검 결과 ‘부적정’ 사례
이 설명회를 주최한 ㅍ 학원 홍보담당 관계자는 “이 선생님은 학교의 교사 입장으로 나온 게 아니라 창의·사고력 분야 전문가로서 나온 것”이라며 “강의 내용 중에도 특정 학교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직 수학교사이자 교무부장이란 강사의 참석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학원의 ‘권위’를 높여줬을 것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현행 특목고 입시제도 아래서 외고와 사교육 업계는 공생 관계다. 외고는 중학교 수준을 뛰어넘는 문제를 출제해 사교육 시장을 키워주고, 이른바 ‘특목고 전문학원’들은 대학 입시에 맞춰 육성된 ‘준비된 수험생’을 외고에 제공해 준다. 이 과정에서 일부 외고와 학원 사이에는 공생을 넘은 ‘유착’ 징후까지 보인다. 현직 교사가 학원이 주최하는 입시설명회에 참석하는가 하면, 합격자 명단처럼 학교 내부자 말고는 알 수 없는 정보가 사전에 유출되기도 한다. 아예 입시문제 출제를 사설 기관에 맡기는 학교도 있다. 김은수(가명·중3·서울 대치동)양은 지난해 11월 외고 중에서도 선호도가 높은 ㄷ 외고에 합격했다. 김양은 서울 중계동과 대치동에서 특목고 전문학원으로 이름이 높은 ㅌ 학원을 다녔다. 김양이 합격 사실을 알게 된 건 이 학교가 공식적으로 합격자 명단을 발표한 11월3일보다 하루 앞선 2일 저녁이었다. 김양은 “2일 저녁 학원에서 전화를 해서 합격 사실을 알려줬다”고 말했다. 이 학원은 또 3일 아침 7시께 합격자 학부모 전원에게 “합격했으니 11월7일 학원에서 실시하는 합격자 간담회에 참석하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대한 학교와 학원 쪽의 해명은 엇갈렸다. ㄷ 외고 입학관리본부 관계자는 “3일 오전 8시에 제일 먼저 해당 중학교에 알려주고 오전 10시에 인터넷에 발표한 뒤 학원에는 낮 12시 넘어서 협조요청이 오면 알려줬다”며 “합격자 명단이 먼저 유출되는 일은 결코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ㅌ 학원 대표인 김아무개 이사장은 “통상적으로 오전 9시 발표라면 1~2시간 정도 더 빨리 알 수는 있다”며 “학원들이 수험생이 많기 때문에 (우리가) 학생 명단을 학교로 보내면 학교에서 확인을 해주는데, 대부분 학원들이 그러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외고가 얼마나 사교육 업계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는 입시문제 자체를 사설 입시기관에 맡겨 출제하는 경우다. 교육부는 지난달 7일 외고 실태조사 결과 발표를 통해 “3개의 외고가 영어 듣기평가 문항 출제를 사설 기관에 의뢰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한겨레>가 자체 확인한 결과, 경기지역의 ㄱ 외고와 또다른 ㄱ 외고가 사설 입시기관에 문제 출제를 의뢰했다. ㄱ 외고 입학관리담당 교사는 “학교에서 하려면 외국인 섭외도 힘들고 편집할 때 소음도 나는 등 어렵다”며 “학교에서 출제하는 것보다 전문기관에서 하는 게 평가가 더 정확하다”고 말했다. 보안문제를 두고 “그 기관이 공신력 문제가 있고 한번 실수를 하면 그 다음에 출제 의뢰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쪽에서 완전 보안이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고의 입시 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실정이어서 해마다 이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16일 밤 서울 목동 한 유명 입시학원 앞에 이 학원 출신 특수목적고 합격생 수를 알리는 게시물이 나붙어 있다.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외고 정상화 방안 관련 일지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