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관계자들이 9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사고 폐지 반대
“강북 자사고 9곳 중 6곳 탈락…강남 쏠림 심화 우려” “교육특구 자사고 비중 되레 커져…” “강남 이사가라 떠미나” “‘강남 8학군’으로 몰릴 듯”
지난 9일 서울시교육청의 재지정 평가 결과로 서울 자율형사립고(자사고) 13곳 가운데 8곳이 올해 재지정 평가에서 기준 점수에 미치지 못해 일반고로 전환될 전망이다. 10일 아침 관련 소식을 전하는 여러 신문의 제목에는 ‘강남’ ‘8학군’ ‘쏠림’ 등 단어가 실렸다.
이 단어들이 출현한 배경은 어쩌면 단순하다. “이번에 ‘지정 취소’될 자사고 8곳 가운데 6곳이 강북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의 발표가 있자마자 한 입시전문업체는 이렇게 전망했다. “22개 (자사고) 학교 중 7개교였던 강남·서초, 양천·강서 학군이, 재지정 평가 뒤 전체 14개 학교 중 6개교로 집중화”. “자사고 자체가 없어져 비교육특구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높아질 수 있음” 등 전망도 나왔다.
서울 자사고 학부모들도 같은 주장을 한 바 있다. 이들은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서울 22곳 자사고 중 강남·서초에 위치한 학교는 5개밖에 없다. 자사고 폐지하면 ‘강남 8학군’이 부활해 교육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고 했다. 자사고가 줄어들면 ‘강남 쏠림’이 일어난다는 전망, 과연 타당성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강남’ ‘8학군’ 등은 학력고사 등 정시만 있던 대입 체제 아래에서 생겨난 욕망을 표상한다. 그런데 지난 20여년 동안 대입 체제는 한번의 수능 시험만이 아닌 내신 등을 종합적으로 보는 수시 중심으로 크게 바뀌었다. 2021학년도 전국 4년제 대학들이 수시로 모집하는 비율이 77%에 달하는 반면 정시 모집은 23%에 불과하다. 교육평론가 이범은 “교육에 대한 욕망 실현의 방식이 바뀌었다”고 짚었다. 예전엔 강남으로 가서 정시에서 점수 잘 따는 방법만 익히면 됐다. 그러나 수시 중심인 지금은 강남으로 오면 내신 성적의 하락을 감수해야 하는데 그런 선택을 할 이유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2022학년도 정시 비율이 30%로 정해져 소폭 오르긴 하지만, “대학들이 수시로 입학한 학생을 더 선호하는 이상 수시 중심의 대입 체제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경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연구소장 역시 “정시를 확대하고 내신을 무력화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이 끊임없이 ‘정시 확대’를 주장하며 ‘강남’ ‘8학군’ ‘교육특구’ 등을 이슈로 삼고 싶어한다”며 “수시가 대세인 상황에서 ‘좋은 대학 가기 위해 강남 간다’ 식의 이야기는 허구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다만 학생·학부모가 느끼는 불안감 등을 해소할 대안은 필요하다. 전경원 소장은 “자사고가 없어진 지역에 있는 학생·학부모라면, 강남으로 갈지를 실제 심각하게 고민할 것이다. 진짜 핵심적인 문제는, 그들이 불안하지 않도록 일반고 교육의 질을 더욱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짚었다. 자사고에만 허용됐던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 등을 일반고에 광범위하게 허용해서, 자사고의 빈자리로 ‘강남’을 생각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고에서도 자사고처럼 특기·적성을 살리는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된 고교 학점제 등을 확대해야 하는 이유다.
김경범 서울대 교수(서어서문학)는 “‘살아남은 자사고가 이전보다 더 인기를 누리는 등 어느 정도의 ‘풍선 효과’는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우려했다. 그는 “‘강남 쏠림’이 허구적인 논리인 것처럼, ‘자사고를 없애면 고교 서열화가 없어진다’는 것도 현실과 거리가 먼 접근”이라며, 일반고 중심의 교육 정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넘어 좋은 일반고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을 파격적으로 내놓고 학생·학부모들에게 각인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자사고 재지정 평가의 후속 조처로 “경쟁 위주 고교 교육과 서열화된 고교 체제를 정상화하기 위한 방안을 내놓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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