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 당사자들은 어디에나 있다. 가족과 친구, 이웃을 만나고 웃고 떠드는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보낸다. 가끔 며칠쯤 집에서 나가지 않는다. 어쩌다 잠들지 못하는 밤을 겪고 가끔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난다. 일주일에 한번, 한달에 한번, 혹은 반년에 한번씩 자신의 상태를 누군가에게 설명하며 안정을 찾아야 한다. 그 옆에는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들을 돕는 정신건강복지센터 노동자들이 있다. 서울에는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광역)와 자치구마다 25개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다. <한겨레>는 6월 중 일주일에 걸쳐 서울의 한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 사회복지사 박지우(가명)씨의 방문상담을 동행한 뒤 정신건강 노동자들의 하루를 재구성했다.
오전 10시30분, 반소매 티셔츠에 면바지, 운동화 차림을 한 박씨가 가방을 메고 서둘러 센터를 나왔다. ㄱ씨가 박씨에게 방문상담을 와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박씨가 맡는 사례관리 대상자는 총 40명이다. 우울증, 양극성 장애, 알코올 장애, 조현병 등을 진단받은 사람들이다. ㄱ씨는 집중사례관리 대상자 5명 중 하나다. 집중사례관리 대상자는 일주일에 한번씩 방문상담을 진행한다. 박씨는 이번주 ㄱ씨 방문상담을 진행했지만, 그의 연락에 예정에 없던 방문을 하기로 했다.
박씨는 몇달 전 응급실에서 ㄱ씨를 처음 만났다. ㄱ씨는 우울증으로 자살 시도를 해 병원에 실려 왔다. 박씨는 회복된 ㄱ씨를 집으로 데려다줬다. “그가 다시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제게 연락을 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거칠게 박씨를 밀어내던 ㄱ씨는 점점 연락하는 횟수가 늘었지만 자살 시도를 멈추진 않았다. “그럴 때마다 경찰을 불렀죠. 왜 경찰을 보냈느냐고 원망하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박씨는 ㄱ씨가 정신과 외래를 다니도록 도왔다. 자주 찾아갔고 더 자주 전화했다. 현재 ㄱ씨는 상태가 많이 안정된 편이라고 했다. 극심한 우울감이 찾아올 때면 박씨에게 방문을 요청한다.
약 1시간 동안 상담을 마친 박씨는 식당 안에서 노트북을 열고 정신건강사례관리시스템(MHIS)에 접속했다. 상담이 끝나면 당사자가 한 말이나 태도, 상태 등을 기록하고 향후 관리 계획 등을 덧붙인다. 전화든 방문이든 상담을 하면 반드시 내용을 기록해야 한다. “열심히 하면 할수록 일이 늘어나는 구조예요. 인센티브 같은 건 없고 결국 사명감으로 일하는 거예요.”
박씨에게 더 힘든 일은 ㄱ씨와 비슷한 처지의 또 다른 누군가를 어쩔 수 없이 외면해야 할 때다. 박씨가 담당하는 인원만큼 매달 새로운 대상자들이 센터 문을 두드린다. 주민센터나 경찰이 의뢰하거나 본인이 직접 센터로 찾아오기도 한다. “새로운 사람을 받으려면 누군가를 빼야
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거죠.” 새롭게 유입된 사람은 다른 상담·치료기관 등에 연결해줄 수밖에 없다.
오후 2시, 박씨는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가파른 골목을 올랐다. 골목으로 난 조그만 문을 열자 더 가파른 계단이 나타났다.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은 ㄴ씨의 집이다. 허리가 아픈 ㄴ씨는 박씨를 마중하러 계단 아래까지 내려왔다. ㄴ씨는 박씨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이것저것 먹을 것을 권했다. 근로 능력이 없고 부양해줄 가족도 없는 ㄴ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다. 그래도 박씨가 방문상담을 올 때마다 음료수 하나라도 쥐여주려고 했다. 박씨가 담당하는 40명 중 35명이 기초생활 수급자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생계를 신경 쓰느라 자신의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안다고 해도 병원에 가서 약물을 처방받아 복용할 여유가 없다. 정신건강복지센터 노동자들은 이들의 정신건강뿐 아니라 삶 전반을 살핀다. “요즘 술은 얼마나 드세요?” “거의 안 먹어요”라는 ㄴ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씨는 한쪽에 놓인 소주병을 가리켰다. “저건 뭐예요. ㄴ님, 술은 절대 안 돼요. 감정이 올라올 수 있다고요. 저번에도 술 드시고 후회하셨잖아요.” “예전에 마신 거예요. 이젠 절대 안 마셔요, 선생님.” 2시간이 넘는 상담이 끝났다. ㄴ씨는 배웅을 하면서도 자식뻘인 박씨에게 꼬박꼬박 선생님 호칭을 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당사자의 상태가 나빠 입원을 설득해야 할 땐 오전 10시에 들어가서 밤 10시에 나온 적도 있어요.” 박씨는 “당사자의 안정을 위해서라면 시간이 얼마가 걸리건 설득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진짜 어려운 건 병원 입원 과정이다. 코로나19 이후 정신병원에서는 당사자의 건강상태가 조금만 의심돼도 신체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소견을 받아 오라고 했다. 입원 절차를 밟는 데만 몇시간이 걸린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던 박씨는 갑자기 생각난 게 있다며 발걸음을 돌렸다. “이 근처에 조현병 진단을 받은 당사자 한분이 사시거든요. 연락이 잘 안 닿아서 온 김에 가보려고요.” 박씨는 반지하 창문을 두드렸다. 인기척이 없었다. 박씨는 창문 틈 사이로 집 안을 살폈다. “물건을 던지는지 집 안이 어지러울 때가 많았는데 오늘은 깨끗하네요. 다행이에요.”
서울의 한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 사회복지사 박지우(가명)씨가 방문 상담 뒤 정신건강사례관리시스템에 상담 내용을 입력하기 위해 노트북을 열었다. 박씨 제공
오후 5시, 박씨는 거듭 시간을 확인했다. “불안장애가 있는 ㄷ씨를 만나러 갈 거예요. 평소에 불안이 심하셔서 시간을 꼭 맞춰 가야 하거든요.” 박씨는 약속한 시간에 맞춰 문을 두드렸다. “마음건강 상담하러 왔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간 그는 ㄷ씨와 거리를 두고 앉았다. ㄷ씨의 불안을 최대한 덜어주기 위한 행동이라고 했다. “단어 하나, 행동 하나도 최대한 신경 써요. 예민하신 분께는 ‘정신건강’ ‘입원’ 등의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아요. 대신 “마음건강이 어떠시냐” “전문의를 만나보자”는 식으로 말하죠. 저도 감정노동이 힘들 때가 많아요. 하지만 혹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더라도 당사자가 가장 안정된 상태에서 모시고 가려고 해요. 그게 전문성이라고 생각해요.”
상담이 끝날 때가 돼서야 ㄷ씨는 하고 싶던 말을 꺼냈다. “상담할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져요. 더 자주 상담을 할 수 있나요?” “당연히 가능하죠.” 그러나 박씨의 스케줄은 이미 꽉 차 있다. 상담 일정을 더 잡으려면 퇴근 뒤에 업무를 해야 할 수도 있다. “저는 사례관리를 그 사람의 삶에 제가 녹아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의 삶을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는 것이죠.”
상담을 마치고 집을 나서는 박씨 등 뒤로 ㄷ씨가 말했다. 상담 내내 작게 웅얼거리던 ㄷ씨의 말이 이번에는 또렷했다. “제가 선생님 덕분에 웃네요.”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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