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1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의 제13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출소한다. 지난 1월18일 국정농단 사건 파기 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207일 만이다. 이 부회장의 가석방이 결정되면서 찬반 의견이 갈리고 있다. 지난 2016~2017년 겨울, 촛불 광장에서는 ‘박근혜 퇴진’ 구호만큼이나 ‘이재용 구속’을 외치는 목소리도 컸다.
<한겨레>는 10일 ‘국정농단’ 당시 이 부회장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던 이들이 이번 가석방 결정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대체로 시민들은 “공정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가석방 결정 자체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박아무개(53)씨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몇십, 몇백만원을 주다가 걸리면 행정처분을 받고 1년 동안 입찰에 참여하지 못한다. 그러면 회사 망한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뇌물로 준 금액이 대체 얼만가. 이 부회장이 감옥에 있다고 계약에 문제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이 공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 정권이 대선을 의식해서 가석방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젊은 세대들에게 진정한 공정을 보여주는 게 답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법 앞의 평등’이 바로 공정”이라고 지적했다. 직장인 김아무개(33)씨는 “국정농단 당시 이 부회장이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에 기댄 것에 대해 분개했었다. 문재인 정부의 모태가 정의구현이었던 것만큼 합당한 처벌을 기대했으나 역시 세상은 재벌 권력에게 관대하다”고 씁쓸해했다.
반면 절차상 문제가 없고 ‘사면’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대학원생 이아무개(27)씨는 “돈이 없다고 차별받으면 안 되듯이 돈이 많다고도 차별받으면 안 되기 때문에 요건을 갖춰서 가석방을 받은 것은 문제없다고 본다. 또 각종 제한을 받지 않느냐”고 했다. 가석방은 출소 후 5년간 취업제한 등을 받는데, 법무부 장관의 승인이 있을 때만 해제된다. 직장인 김아무개(32)씨는 “이 부회장이 (207일간) 형을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향후 정경유착이 일어나지 않도록 영향을 줄 것”이라고 했다.
한편, 취업제한 때문에 이 부회장이 곧장 경영 일선에 복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이 이번 결정의 모순이라는 지적도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9일 이 부회장 가석방에 대해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국가적 경제상황과 글로벌 경제 환경에 대한 고려 차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취업준비생 이아무개(28)씨는 “이 부회장 가석방 이유가 경제 상황 때문이라면 사실상 취업제한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게 논리적으로 맞는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주부 김아무개(54)씨는 “가석방은 대통령 책임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고 지적했다. 특별사면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지만, 가석방은 법무부 장관이 최종 결정한다.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이 열린 지난 1월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들어서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가석방 이유로 든 ‘경제상황’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취업준비생 김아무개(29)씨는 “기업 총수 없이 백신 확보도 못 하고 기업 운영도 못 하면 비정상적인 국가, 기업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이 부회장 구속 이후 삼성의 이익과 매출은 모두 올랐다. 최고책임자가 없어도 기업이 시스템에 의해 잘 운영되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인데, 이 부회장이 가석방되면서 결국 총수가 있어야만 기업이 운영된다는 부정적인 메시지를 사회에 던졌다”고 지적했다. 박씨는 “돈의 무게로 선진국을 따진다면 굳이 한국은 선진국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는 가석방을 찬성한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현 경제 상황이 이 부회장의 죄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직장인 김씨) “재벌총수만이 기업을 경영해야 한다는 인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삼성은 삼성, 이재용은 이재용이다.”(대학원생 이씨)
가석방 이후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자영업자 박씨는 “돈을 준 사람을 풀어줬으면, 돈을 받은 사람도 풀어주지 않겠는가. 다음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특별사면으로 풀려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고 했다. 직장인 조아무개(39)씨는 “취업제한 규정을 어떻게 우회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의료인 김씨는 “이 부회장에게 남은 재판이라도 공정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부당합병·회계부정 사건과 프로포폴 투약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주빈 장필수 채윤태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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