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급대원이 이동식 침대를 구급차에 싣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ㄱ소방위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늦게 퇴근하는 날이 많아졌다. 코로나19 의심 환자나 확진 환자를 이송하다 보면
음압격리실에 자리가 날 때까지 1~2시간가량 기다리다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한 팀이 코로나19 업무로 장시간 출동하면 나머지 팀들의 업무 부담도 늘어난다. “한 팀이 코로나19 의심 환자나 확진 환자를 이송하러 가면 그만큼 다른 팀이 더 자주 출동해야 해요. 그러다 보니 지쳐요. 조금만 더 버티면 될 것 같다가도, 확진자가 늘고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모르니 그런 기대감도 사라져요.”
코로나19 확진 환자나 의심 환자 이송을 2년째 도맡고 있는 소방구급대원들은 현재 육체적·정신적 한계에 몰리고 있다.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과도한 업무량에 대다수 구급대원이 제대로 쉬지 못하고 ‘번아웃’을 호소하는 상황이다.
18일 <한겨레>가 고려대 보건과학과 김승섭 교수 연구팀과 서울특별시소방학교 소방과학연구센터가
지난 6월9일부터 27일까지 서울시 소방공무원 3381명(구급대원 719명, 기타 소방공무원 2662명)을 대상으로 한 ‘서울시 소방관 COVID-19 근무환경 실태조사’ 결과를 보니, 서울 구급대원 69.4%(499명)가 업무로 인한 번아웃을 겪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작업 시간 내내 힘들다고 느끼는가” “업무 때문에 감정적으로 탈진한 적이 있는가” 등의 질문에 대한 응답을 모두 더해 연구진이 분석한 결과다. 구급대원을 비롯해 소방공무원 전체로 확대하면 39.4%(1331명)가 업무로 인한 번아웃을 겪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일을 마칠 때 기진맥진한다”는 문항에 “가끔 그렇다”고 답한 구급대원이 36.9%로 가장 많았고, “대부분 그렇다”는 26.1%, “항상 그렇다”는 응답도 16.1%였다. “별로 그렇지 않다”가 15.4%였고, “전혀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5.4%였다.
번아웃을 느끼는 구급대원이 많은 것은 코로나19 이후 구급대원의 업무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업무량이 증가했다고 답한 구급대원은 92.8%(667명)에 달한다. 구급대원 ㄴ씨는 “코로나19 전의 업무 강도가 80 정도라면 지금은 120 정도로 늘었다”며 “코로나19 전에는 초과근무가 한달에 12시간 정도 됐는데, 지금은 80시간 정도”라고 말했다.
일부 구급대원들은 스스로 건강이 악화됐다고 답했다. 구급대원 중 3.3%가 자신의 건강을 매우 나쁘다고 평가했고, 19.1%가 나쁜 편이라고 평가했다. 코로나19 관련 구급 출동이 상대적으로 적은 비구급대원들 대상 조사에서 “매우 나쁨” 0.4%, “나쁜 편”이 8.1%로 집계된 것과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이 길어지다 보니 일하다가 아프고, 아픈데도 일을 하는 악순환도 반복되고 있다. ㄴ씨는 “인원이 적은데 코로나19 관련 출동도 하고 화재 관련 출동도 하니, 직원들이 다치거나 아파서 입원하는 일도 생긴다”며 “한 사람이 입원하면 다른 사람이 그 사람 몫까지 하려다가 또 다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 1년 동안 몸이 아픈데도 나와서 일한 적이 있다는 구급대원은 50.7%(365명)에 달했다. 아픈데도 일한 기간이 하루라고 답한 구급대원은 107명이었고, 2~7일은 192명, 8~28일은 45명, 29일 이상도 21명이었다.
구급대원 다수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일과 삶의 불균형이 커졌다고 답했다. 2019년과 비교했을 때 2020년에는 퇴근 후 너무 피곤해 집안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구급대원이 63.6%였다. 같은 기간, 일을 하지 않을 때도 업무를 걱정하는 일이 늘었다는 구급대원도 49.7%로 비구급대원(21%)보다 높게 나타났다. 2019년과 비교해 현재 운동량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물은 결과, “많이 감소했다”고 답한 구급대원이 47.7%로 가장 많았고, “약간 감소했다”는 구급대원은 20.7%였다.
문제는 코로나19 장기화와 주기적인 확진자 폭증으로 업무 강도가 낮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사 결과, 병원 인계가 원활하지 않아 확진자와 의심 환자 이송 업무 한 건에 몇 시간을 소비하는 경우가 구급대원에겐 일상이었다. 코로나19 유증상자 또는 의심 환자를 이송하는 과정에서
비어 있는 음압격리실을 찾느라 인계 병원 선정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구급대원은 95.3%(685명)에 달했다. 코로나19 유증상자 또는 의심 환자 인계가 거절돼 다른 지역으로 환자를 이송했다는 구급대원은 94.3%(678명), 병원에 이송한 뒤 환자 인계까지 1시간 이상 대기했다는 구급대원도 95.7%(688명)나 됐다. 대부분 구급대원(91.5%·658명)이 코로나19 출동 업무로 사무실 밖에서 일하는 시간이 늘어 행정 업무를 처리할 시간에 쫓긴다고 답했다. 전남의 구급대원 ㄷ씨는 “인계 병원 선정에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병원 여러 곳에 전화해서 음압격리실에 자리가 있는지 물어보느라 인계 병원 선정에만 1시간씩 걸리기도 해요. 또 전남 내에 가능한 곳이 없으면 광주까지 가야 하는데, 이런 경우 출동 한 건에만 4시간이 걸려요.”
일부 구급대원의 경우 초과근무에 대한 보상이나 휴식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초과근무를 한 적이 있는 구급대원은 74.1%(533명)였고, 이 가운데 77명은 휴가나 수당 등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다른 시·도나 백신접종센터 등으로 지원 근무를 다녀온 경험이 있는 구급대원은 32.8%(236명)였고, 이 가운데 105명은 특별휴가 등 적절한 휴식을 보장받지 못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동료 소방관을 상담하는 ‘소담센터’의 이숙진(45)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소방위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늘어난 업무와 방호복으로 인한 더위, 인계 병원 선정의 어려움 때문에 힘들다고 털어놓는 구급대원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 소방위는 “번아웃이 오면 잘 쉬면서 해소하거나 상담을 하는 게 도움이 되는데, 현재 소방공무원은 둘 다 어려운 상황”이라며 “방역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사적 모임이나 실내 운동 등을 하지 못해 스트레스 해소가 어렵다. 또 소방에서 지원하는 상담 프로그램이 있지만, 상담하느라 업무에서 빠지면 다른 동료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해 참여를 꺼리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김윤주 채윤태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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