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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완벽한 승리였다, 변희수 하사가 그 자리에 없던 것을 빼면…

등록 2021-10-16 17:31수정 2021-10-16 17:35

[한겨레21] 제1384호
계속 시험받은 ‘기갑의 돌파력’
친구들의 공대위 시민 2천명의 탄원
‘변희수의 싸움’ 재구성
변희수 하사가 2020년 1월22일 오후 군인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군인으로 계속 남고 싶다고 밝히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변희수 하사가 2020년 1월22일 오후 군인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군인으로 계속 남고 싶다고 밝히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2021년 10월7일 대전지법 행정2부(재판장 오영표)는 성확정(성전환) 수술을 마친 고 변희수 하사에 대한 군의 강제전역 결정이 위법한 처분이라고 판결했다. 정의는 이번에도 너무 늦게 왔다. “기갑의 돌파력으로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던 원고 변희수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용기가 길 없던 곳에 길을 냈다. 그와 함께 싸웠던 이들을 인터뷰해 ‘변희수의 싸움’을 재구성했다. _편집자

2021년 10월7일
법정 앞엔 긴장이 감돌았다. 대전지법 332호 법정 앞 복도에 모인 20여 명은 문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숨죽인 채 귀 기울이고 있었다. 인원 제한으로 법정에 들어간 사람은 11명 남짓. 선고가 시작된 지 10여 분 흘렀을까. 작은 환호가 들렸다. “이겼답니다.” 이내 말의 메아리가 울려퍼졌다. “이겼대요!” “이겼어요!” 누군가는 환하게 웃었다. 누군가는 오래 참아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눈물을 닦아내는 이도 있었다. 32개 시민단체가 모인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 활동가와 시민들은 기쁨에 들떴다가도 이내 무겁게 가라앉았다. 누구보다 기뻐하고 축하받아야 할 이가 함께하지 못했다. 법원 텔레비전에 ‘속보’가 떴다. ‘법원, “고 변희수 전 하사 전역 처분 취소해야”’.

“‘그래도 뭔가 됐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한편으로 착잡하더라고요. 희수가 같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현장에서 선고를 지켜본 변 하사의 고등학교 친구 김선하씨의 소회다. 세상을 떠난 자식을 대신해 원고 자격으로 소송을 이어받은 변 하사의 부모님은 이어진 기자회견까지, 먼발치에서 자리를 지켰다.

이날 재판부는 변 하사가 생전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낸 전역 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변 하사는 성별 정정을 완료한 여성이기 때문에 군이 남성의 신체를 기준으로 심신장애를 판단하고 전역 처분한 것 자체가 “더 나아가 판단할 것 없이” 위법하다는 것이었다. 원고가 부재한 가운데 부모가 소송을 이어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동일한 사건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에’ 처분의 위법성을 확인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성소수자의 군복무에 관한 국가 차원의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위법한 처분을 확인하는 걸 넘어 국가 제도의 미비까지 짚었다. 육군본부가 변 하사를 강제전역 처분한 지 624일 만에, 소모적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판결이었다.

완벽한 승리였다. 변 하사가 그 자리에 없다는 것을 빼고는….

2020년 6월29일
“체중이 많이 불었는데 군에 돌아가면 살부터 빨리 빼야겠어요.” 군의 강제전역 결정을 두고 인사소청 심사가 열리던 그날 변 하사는 무거움을 떨치려는 듯 농담을 건넸다. 자신을 돕고 있던 김보라미 변호사, 강석민 변호사와 함께 계룡대 육군본부 법무실로 향하던 길이었다. 군인사소청은 인사처분에 불복해 재심사를 요구하는 절차지만, 실제 소청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서너 시간 동안 심사를 기다리며 강 변호사는 이 사실을 넌지시 말했다. 변 하사가 실망할까 염려됐다. 공무원시험이나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건 어떠냐는 말도 조심스레 건넸다. 하지만 변 하사는 군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를 접지 않았다. “(장래는) 군에 복직하고 나서 그다음에 생각해볼게요.”

변 하사는 2017년 3월 육군 하사관으로 군생활을 시작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군 특성화 고교를 찾아 진학하고, 졸업도 하기 전에 입대”(김선하씨)할 정도로 꿈에 그리던 직업이었다. ‘젠더 디스포리아’(성별 위화감)를 겪던 변 하사는 상관의 허락을 받고 2019년 타이(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육군은 심신장애(3급)를 이유로 2020년 1월 그의 전역을 결정했다. 배신감 속에 연 기자회견에서도 변 하사는 “군을 믿는다”고 했다. “제가 사랑하는 군은 계속하여 인권을 존중하는 군대로 진보해나가고 있습니다.” 눈물을 쏟으며 거수경례를 올리던 모습은 많은 이의 기억에 새겨졌다.

그 믿음에 군이 응답할 마지막 기회가 인사소청이었다. 2020년 7월3일 그마저 기각됐다. “변 하사는 전역심사부터 인사소청까지 군을 믿었어요. 전역 처분이 났다는 전화를 받던 순간에도 변 하사는 ‘저는 분명히 돌아갈 거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인사소청까지 기각됐잖아요. 군이 변 하사를 버린 거죠.”(강석민 변호사)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2020년 8월11일 변 하사는 전역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그때 그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결연했다. 군에 자신과 같은 성소수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혼자만의 싸움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시민들의 탄원운동도 시작됐다.

성전환 수술을 받은 고 변희수 하사에 대해 심신장애를 이유로 전역 처분한 군의 조처는 부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온 2021년 10월7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성전환 수술을 받은 고 변희수 하사에 대해 심신장애를 이유로 전역 처분한 군의 조처는 부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온 2021년 10월7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2020년 8월18일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알리려 전국 25개 도시를 순회하던 평등버스가 청주로 향했을 때다. 장예정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변 하사가 평등버스에 오르던 순간을 기억했다. 우연히 버스를 발견한 변 하사는 청주에서 열린 기자회견부터 대전에서 열린 야간문화제까지 6시간가량 동행하며 연대했다. “변 하사가 법률 지원해주는 활동가에게 ‘평등버스가 왔는데 참여해도 될까, 혹여나 소송에 불리하지는 않을까’ 물어보더라고요.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는 답을 듣고 나서야 밝은 표정으로 피켓을 들었어요.”(장예정 위원장)

여름과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는 사이, ‘기갑의 돌파력’은 자꾸만 시험받았다. 재판은 기약이 없었다. 대리인단은 재판을 열어달라고 세 차례 서면을 냈다. 변 하사는 일자리를 찾으려 애썼다. 경비업체나 보안업체의 문을 두드렸지만 쉽지 않았다. “‘밀덕’(밀리터리 덕후·군사 마니아)이자 ‘천생 군인’이었어요. 비슷한 일을 찾으려 한 거죠. (잘 안 되니까) 마지막에는 ‘도시락 배달업체를 만들어보겠다’ ‘영상편집을 해보겠다’고 이야기한 기억이 나요.”(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친구들에게 느닷없이 영상통화를 걸어 웃음을 터뜨리곤 할 정도로 씩씩하던 변 하사였지만 그즈음 예고 없이 2~3주씩 연락을 받지 않는 일이 이어졌다.

2021년 3월3일
친구와 동료들에게 변희수의 부음이 날아들었다. 강제전역하지 않고 애초 정해진 대로 복무할 수 있었다면 그로부터 나흘 전(2021년 2월28일) 동료 장병들의 축하 속에 의무복무를 마쳤을 터다. 그의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누구도 그 답을 듣지 못했다.

비통함 속에 친구들은 변회수의 싸움을 이어가기로 했다. 발인하던 날 새벽, 임태훈 소장이 소송수계(소송 중단을 막기 위한 절차)에 대한 변 하사 가족의 동의를 구했다. 공대위는 이름을 바꿨다. ‘변희수 하사의 복직을 위한 공대위’에서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대위’로…. “고인이 돼도 변 하사의 복직을 인정받는 것이 변 하사의 명예를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은 이들이 싸워야 할 목표를 다시 확인한 거죠.”(박한희 변호사)

친구들만 슬퍼한 것이 아니었다. 시민 2천여 명의 탄원이 이어졌다. 법원은 원고 변희수의 죽음에도 소송을 중단 없이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2021년 4월15일, 첫 재판이 열렸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2021년 4월15일
“타 부대로 전입 가더라도 융합하기 어렵다.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육군본부 법무실이 재판부에 제출한 54쪽 분량의 서면 곳곳에선 트랜스젠더에 대한 무지와 혐오가 드러났다.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원고(변 하사)와의 공동생활로 인해 다른 인원들이 느끼고 부담해야 하는 여러 사정들을 간과하는 것은 원고를 위해 그 외의 인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원고의 행복추구권만을 고려해 다른 이들의 행복추구권을 간과할 수 없다.”

“육군본부의 변론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무지를 부추기는 유사과학적 표현으로 가득했어요. 법리로 싸워야죠. 막말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밖에 안 되죠.”(김보라미 변호사)

전역 결정 당시 절차적 하자도 재판 과정에서 하나둘 드러났다. 전역심사 전 의무조사위원회는 “(수술로 인한) 외부 상처는 치유될 것으로 보인다” “여성 복무자의 기준에 합당할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성확정 수술을 받은 뒤 젠더 디스포리아가 해소되며 변 하사의 심신 건강은 나아지고 있었다. 3주 간격의 호르몬치료 외에 복용약도 없었다. 그러나 군 인사운영부서는 교묘하게 사실을 비틀었다. “정신과(우울증) 약물 장기 복용시 정상적인 임무수행 제한이 예상된다.” 변 하사의 주치의인 이은실 순천향대 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대리인단의 요청에 따라 전문가 진술서로 이를 반박했다. “호르몬치료는 성별 위화감을 줄여주는 동시에 골다공증을 예방하기 위한 치료입니다. 전차 조종수의 임무가 시스젠더(생물학적 성과 젠더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여성이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임무라면 호르몬치료를 받는 원고가 수행하는 데엔 문제없습니다.”

심지어 육군본부는 변 하사의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었다며 그의 주임원사를 증인으로 불러달라거나, 변 하사의 의료기록을 제출받게 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정신건강은 애초 전역 처분의 이유도 아니었다. 그러나 군은 성확정 수술을 고의에 의한 신체 훼손으로, 젠더 디스포리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려는 노력을 정신건강상 문제로 치환해 무리한 주장을 밀고 나갔다. 법원은 이런 주장에 대해선 판단조차 하지 않았다.

2021년 10월13일
완패한 군은 ‘움찔’이라도 했을까. 서욱 국방부 장관은 3월 트랜스젠더의 군복무에 관한 정책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다. 10월13일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은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고 변희수 하사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께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총장의 직접적인 첫 입장 표명이다. 그러나 그는 “그때 상태에서는 정당한 판단을 한 것으로 생각한다”며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이번 판결은 ‘변희수는 여성인데 왜 남성의 기준으로 쫓아냈냐’는 거예요. 군이 항소해서 이 판결을 뒤집으려면 ‘변희수 하사가 남성’이라는 논지를 펼쳐야 해요. 그럼 소송 자체로 변 하사에 대한 사자 명예훼손이 됩니다. 그 자체로 혐오와 차별인데 국가기관이라는 곳이 법정에 나와 그런 주장을 하고 있어야 할까요?” 변 하사와 함께 싸웠던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의 말이다. 10월14일 공대위는 군에 항소 포기를 요구하는 연서명을 시작했다. 변희수 하사가 꿈꾸던 내일은 남은 이들의 오늘이 됐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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