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비리 혐의를 받는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신한은행 신입사원 지원자 131명의 점수를 조작한 채용비리 사건으로 기소된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항소심 무죄 선고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조 회장은 1심에서도 단 3명에 대해서만 채용비리가 인정돼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는데, 항소심에서는 그마저도 무죄가 선고됐다. 특히 항소심 재판부 무죄 논리가 도마에 올랐다. “헌법에 따른 사기업 채용의 자유” “청탁 대상자들이 모두 합격한 것은 아니라는 점” “대체로 상위권 대학 출신에 기본적 스펙을 갖춘 점” “채용비리처벌법이 없는 점” 등을 무죄 이유를 들었는데, 이를 기준으로 삼으면 처벌법 제정 전까지는 청탁이 들어온 지원자가 일정 수준을 충족만 하면 사기업 재량으로 채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그간 채용비리 처벌법규 공백을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온 수사기관 및 법원 판단과도 배치된다. 검찰이 조 회장 무죄 판결에 불복해 상고장을 제출하면서 최종 판단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조 회장은 신한은행장 시절 채용비리에 가담한 혐의(업무방해, 남녀고용평등법 위반)로
2018년 10월 불구속 기소됐다. 조 회장은 2015년 상반기~2016년 하반기에 걸쳐 외부청탁을 받은 지원자 및 신한은행 및 계열사의 고위직 자녀 30명의 점수 조작에 관여하고, 신입 채용 인원의 남녀 성비를 3:1로 맞추기 위해 서류전형·면접전형에서 101명의 점수를 조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 회장을 포함해 인사 담당 부행장, 인사부장, 채용팀장 등 채용비리에 연루된 8명이 함께 기소됐다.
1심은 “은행장 말, 채용팀이 고려할 수밖에 없어”
조 회장은 1심에서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조카손자 나아무개씨, 금융감독원 임원 아들 이아무개씨 총 3명에 대한 채용비리 혐의를 유죄로 인정받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에서 인정된 사실에 따르면, 조 회장은 2015년 4월 금감원 부원장보로부터 ‘아들 이아무개가 신한은행 2015년 상반기 채용에 지원했다’는 말을 듣고 당시 인사부장 ㄱ씨에게 ‘이씨의 전형별 합불 여부를 피드백해 달라’고 지시했다. 이씨는 그해 6월 실무면접에서 탈락에 해당하는 평가등급을 받았으나, ㄱ부장의 지시로 그의 1차 면접 점수가 상향됐다. 이씨는 1차 면접 합격 후 최종면접에서 합격했다.
2016년 하반기 채용에서도 조 회장은 라응찬 전 회장으로부터 ‘조카손자 나아무개가 지원했다’는 청탁을 받았고, 당시 인사부장 ㄴ씨에게 마찬가지로 나씨의 전형별 합불에 대한 피드백을 달라고 지시했다. 그해 10월 나씨는 서류심사 결과 탈락권이었으나, ㄴ부장의 지시로 나씨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졌고 나씨는 서류전형에서 합격했다. 이후 ㄴ부장은 나씨의 1차 면접위원으로 직접 들어가 홀로 나씨에게 최상위 점수를 부여했고, 나씨 또한 최종합격할 수 있었다. 같은 시기 조 회장이 언급해 특이자 명단에 오른 정아무개씨도 서류전형에서 학점 필터링 등에 걸려 불합격권이었지만, ㄴ부장이 직접 정씨를 서류전형에서 합격시켰다. 다만 정씨는 최종 불합격했다.
1심 재판부였던 서울동부지법 형사11부(당시 재판장 손주철)는 조 회장이 위 세 사람에 대해 “면접위원의 업무를 방해했다”며 지난해 1월 업무방해 혐의 일부를 유죄로 인정했다. 1심 재판부는 신한은행 신입행원 채용절차에서 1·2차 면접위원들에게 위임된 면접업무는 독립된 업무이고, 면접에 응시할 자격이 없는 이를 면접에 올리는 것은 평가위원들을 속이는(위계)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위계에 의해 1·2차 면접위원 면접업무의 공정성이 방해됐다”고 판단했다. 면접위원으로서는 면접자들이 모두 정당한 과정을 거쳐 면접까지 올라왔을 거란 전제 하에서 독립된 평가를 하게 되는데, 그런 면접위원들을 속였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업무방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비록 최 회장이 직접 해당 인물을 ‘합격시키라’는 명시적 지시를 내린 건 아니라고 해도 “특정 인물에 대한 지원 사실을 인사부장을 통해 채용팀에 알릴 경우, 채용팀에서는 은행장이 지원 사실을 알렸다는 사정을 각 전형단계에서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며 “부정합격에 공모해 가담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최 회장이 언급한 다른 청탁 의혹 지원자들에 대해서는 증거부족 등을 이유로 무죄로 판단했다. 남녀의 점수를 조작해 성비를 맞췄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증거부족으로 무죄가 선고됐다.
“상위권 대학 출신이면…” 항소심의 ‘부정합격자’ 정의
그러나 항소심을 심리한 서울고법 형사6-3부(부장판사 조은래·김용하·정총령)는 이마저도 무죄로 판단했다. 이들이 조 회장을 통해 ‘특이자’ 명단에 올랐고 불합격권이었다가 사후 보정을 통해 합격자 명단에 오른 것도 맞지만, 이들의 스펙상 ‘부정 합격자’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최종합격한 이씨, 나씨가 재심사를 거쳐 합격한 과정이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우선 이씨는 여러 스펙 상 ‘글로벌 인재 확대 채용’을 내세운 신한은행 채용 목표에 부합하는 지원자임을 고려하면 “(이씨는) 채용 청탁을 이유로 부당한 방법이나 절차를 거쳐 합격한 부정 합격자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서류심사 탈락권이었다가 ㄴ인사부장의 재검토 지시로 구제된 나씨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재검토 지시가 ‘기회의 균등’이라는 측면에서 다소 부적절하다고 볼 여지가 있긴 하다”고 했지만, 이렇게 작성된 재검토 보고서에 대해 “오히려 상세분석 보고서 작성은 나씨의 합불 결정에 앞서 충분한 검토를 했다는 정황으로도 볼 수 있다. 부당한 방법에 의해 서류전형에서 합격한 부정 합격자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행장이 말한 지원자가 탈락하자 인사부가 재검토 보고서까지 만들어 그를 합격자 명단에 올렸는데, 이에 대해 재판부는 외려 “충분한 검토를 한 정황”이라는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서류평가에서 불합격이었다가 인사부장 ㄴ씨의 일방적 결정으로 합격한 ㄷ씨에 대해서는 ㄴ부장에 대해서만 유죄로 판단했고, 조 회장이 정씨의 서류전형 지원 사실을 ㄴ부장에게 전달한 사정만으로는 ‘합격 지시’로 간주할 수 없다며 조 회장의 관련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부정통과자로 적시된 지원자 대부분이 청탁 대상이거나 신한은행 임직원과 연고관계가 있는 지원자들”이라면서도 이들을 불합격 처리했다가 합격으로 바꾸는 행위를 처벌하기 어렵다고 했다. “소수 지원자를 별도로 구분해 취급한다는 것 자체가 채용 공정성에 심각한 불신을 초래할 수 있는 부적절한 업무 관행이지만, 특이자 명단 작성 자체를 금하는 별도 입법이 없는 이상 이를 두고 위법행위라거나 범죄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명단에 오른 이들이) 대체로 상위권 대학 출신에 일정 수준의 어학점수와 각종 자격증을 보유하는 등 기본적 스펙을 갖추고 있다. 다른 지원자들과 마찬가지로 일정 정도 합격자 사정 과정을 거친 경우가 있어 부정통과자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기업의 채용 심사 단계별 재량은 폭넓게 보장해줘야 하며, 이에 따라 일정 범위에서 점수를 보정하는 것은 문제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 기준에 따라 아예 사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심사를 통과한 사람만을 ‘부정통과자’로 봐야한다고 했다. 이런 식의 뒷문·낙하산 채용은 대기업 공채에서 사실상 불가능하고, 점수 보정 등을 통한 ‘업그레이드’가 채용비리 주요 수단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되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그동안 채용비리에 적용해온 형법상 업무방해죄가 실제 피해자(다른 지원자)가 아닌 회사 쪽을 보호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일반적 법 감정에 어긋난다”고도 했다.
법조계·시민단체 “판결 납득 안 돼” 비판
법조계와 시민사회단체에서는 판결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금융정의연대는 판결 뒤 성명에서 “법원은 부모의 인맥으로 부정한 청탁을 했더라도 상위 학벌과 일정한 스펙을 갖추고 있으면 ‘부정통과자’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채용 또는 일부 전형의 합격을 청탁한 사정이 직·간접으로 확인됐는데도 상위 학벌과 일정한 스펙을 갖추면 부정통과자가 되지 않는 참으로 괴상한 논리”라며 “법원의 이번 판결은 조용병 회장뿐만 아니라 부정입사자에게도 무죄를 준 셈”이라고 비판했다.
2018년 서울동부지검 부장검사 시절 이 사건을 수사·기소한 주진우 변호사는 “채용비리에 있어 업무방해 혐의 적용이 오래되진 않았지만, 대법원 법리 해석상 적용이 가능하다. 법원의 판단은 존중하지만 법 해석도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고, 유사한 사건에서 업무방해가 적용된만큼 충분히 판단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고 판결에 아쉬움을 표했다. 한 금융사건 전문 변호사도 “행장이 특정인을 ‘합격시키라’고 지시한 게 아니라 지원 사실만을 언급한 것만으로도 채용팀에서는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이로 인해 공정하게 진행돼야 할 면접관의 업무도 방해됐다고 봐야 한다”며 “채용비리를 업무방해 혐의로 처벌한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닌데 입법 부재를 지적하는 재판부 태도는 납득이 어렵다”고 말했다.
앞서 대법원은 불합격권 지원자 37명을 부정하게 합격시켜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지난해 3월 확정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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