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가 월정사 주지에 줬다는 ‘밀부’는 조선왕조실록의 관리자가 월정사라는 확실한 증거다.밀부란 사고를 지키려고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표시를 담은 패로 조선 예조(육조의 하나. 고려 이래 예의·제사·조회·외교·학교·과거 따위의 일을 맡아보던 중앙행정기관)가 월정사 주지를 실록수호총섭으로 임명했다는 사실을 증거로 보여주고 있다. 사진제공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
고향 가는 북관대첩비 이어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 환수운동 본격화
“조선총독이 불법적으로 도쿄대로 반출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을 원 관리자인 월정사에 내놓아라!” 오는 3·1절을 맞아 10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북관대첩비에 이어 일제시대 일본으로 반출된 조선왕조실록을 되찾으려는 또 하나의 문화유산 되찾기 운동이 시작됐다. 대한불교 조계종의 월정사(주지 정념)와 봉선사(주지 철안) 등은 13일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이하 실록 환수위)를 꾸려 “일본 도쿄대 도서관이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46책의 반환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록 환수위는 조선왕조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기록한 사료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오를 정도로 가치가 높은 <조선왕조실록>을 되찾기 위해 고이즈미 일본 총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민간 차원의 교류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할 계획이다. 추진위에는 불교계뿐 아니라 김삼웅 독립기념관장,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등 정치권과 민족운동진영도 참여하고 있다. 문화재청, 도쿄대 46책 귀중본으로 소장 확인 도쿄대가 오대산본을 소장하고 있는 것은 여러 증거를 통해 확정적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문화재청은 지난 1월 26일 환수위 쪽의 질의에 답변한 공문에서 “도쿄대 종합도서관에 성종실록 9책, 중종대왕실록 29책, 선조대왕실록 8책 등 모두 46책을 소장하고 있으며, 귀중본으로 분류해 일반인들에게 열람이 되지 않고, 도서관 내부인들에게만 열람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또 배현숙 교수(계명문화대)가 도쿄대의 동의를 얻어 지난 84년부터 4년간 이 학교 도서관이 소장한 실록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중종실록 29책, 선조실록 7책, 성종실록 9책 등 45책과 함께 선조실록 1책을 추가로 발견해 모두 46책을 보관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도쿄대의 오대산본 소유가 불법점유인 이유?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이 보관되어 있던 월정사의 전경. 사진제공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
실록의 관리자가 월정사라는 사실은 역사적 근거와 증거가 충분히 확보되어 있다. 추진위 쪽은 가장 확실한 근거로 조선왕조가 월정사 주지에 줬다는 ‘밀부’를 든다. 밀부란 사고를 지키려고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표시를 담은 패로 조선 예조(육조의 하나. 고려 이래 예의·제사·조회·외교·학교·과거 따위의 일을 맡아보던 중앙행정기관)가 월정사 주지를 실록수호총섭으로 임명했다는 사실을 증거로 보여주고 있다. 또 월정사에 전해 내려오는 ‘오대산 사적’의 ‘선원보략 봉안사적’에도 “선조 39년 선원보략과 사고를 중대 남쪽 호령봉 아래에 옮겨 세우고 인신을 하사, 총섭을 설치해 이를 수호토록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유네스코는 지난 1970년 총회에서 ‘문화유산의 불법반출입과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에서 불법적으로 약탈한 문화재에 대해 “외국 군대에 의한 일국의 점령으로부터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강제적인 문화재의 반출과 소유권의 양도는 불법으로 간주한다”고 명시했다. 이 규정을 적용하면 도쿄대가 보관하고 있는 실록은 명백히 불법으로 약탈한 문화유산인 셈이다. 환수위는 고이즈미 총리에 보내는 조정신청서 초안에서 “일본의 조선 침탈이 불법적이었다는 사실에 비춰 볼 때, 조선총독에 의해 도쿄대로 반출된 실록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원인무효의 불법적 점유물”이라며 “일본정부와 도쿄대는 악의적 점유이니 공소시효 취득을 인정받을 수 없고, 당연히 본래의 수호 관리자인 월정사로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교계는 왜 문화유산 반환에 직접 나서나? 이처럼 조선왕조의 역사를 증언해줄 문화유산을 되찾는 데 불교계가 직접 나서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실록의 수호와 관리책임이 사찰에 맡겨져 불교문화유산으로 볼 수 있으니 불교계와 무관하지 않지만, 실록이 우리 역사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국가의 문화유산이라고 넓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실록의 소유권은 불교계가 아니라 국가에 있으며 국가가 소송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 동안 불교계가 친일파 후손의 내원암 땅찾기 위헌 소송 등을 제기하며 친일청산과 역사바로세우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비춰보면 불교계의 ‘실록 되찾기 운동’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불교계의 움직임이 사찰문화재 찾기라는 소극성을 넘어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이라는 점이다. 환수위 간사를 맡고 있는 혜문 스님은 “불교계는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 반환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왔다”며 “조선왕조실록도 해외유출 불교문화유산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밝혀져 자연스럽게 소송에 나서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월정사 주시 정념스님도 “월정사가 오대산 사고를 지키는 수호총섭으로서 실록을 수호하겠다는 것은 조선왕실과 약속이기도 하지만, 우리 민족 모두와 약속”이라며 “실록을 되찾자는 것은 일본이 약탈한 민족의 문화유산을 바로잡는 데 큰 구실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송 전망, 찾아올 수 있나?
100년 만에 돌아온 북관대첩비의 환국을 알리는 ‘고유제’가 21일 오전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경내 ‘나들다리’에서 펼쳐진 뒤 참석자들이 북관대첩비를 살펴보고 있다. 북관대첩비 반환은 처음 반환이 제기된 뒤 30년만의 결실을 맺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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