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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엄마도, 돈 벌 수 있어”…1500만원짜리 ‘욕망의 덫’을 보다

등록 2021-12-22 04:59수정 2021-12-22 17:46

[더탐사-2천만원짜리 욕망의 기획자①] 기획부동산 취업 취재기
10월말부터 기획부동산 2곳 서류면접 후 입사
‘장 차장’ 되어 보고들은 그들만의 비밀·실태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부동산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신화의 나라. 부동산 성공담이 차고 넘치지만 부동산 게임에서 모두가 ‘승자’가 될 순 없다. 부동산이란 이름의 욕망 전차에도 ‘꼬리칸’은 있게 마련이다. 남들만 돈을 번다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중상류층을 올려다보기만 하던 이들마저 영혼을 끌어모아 부동산 투기 열차에 탑승한다. 이들을 꼬리칸으로 안내하는 이들이 바로 ‘부동산 기획자’다. 돈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을 자극해 쪼개진 ‘땅’의 주인으로 만들고, 2천만원에 갭투자 아파트를 사도록 이끈다. 돈이 적다고 욕망마저 가난할 순 없는, 그럼에도 부동산 생태계에서 끝내 포식자가 되지 못할 이들, 그 2천만원짜리 욕망을 기획하고 판을 짜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우리는 고객들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사람들이죠. 필지로 땅 못 사는 사람들! 돈 없는 사람들도 땅으로 돈 벌 수 있게 하려고 쪼개서 파는 것이니 영업할 때 당당해도 됩니다!

기획부동산 ㅎ사에 입사한 지 나흘째 되던 11월1일, 박정자(가명·59살) 부장이 직원들에게 말했다. ‘영끌’도 있는 이들이 한다는 땅의 통념을 깨는 놀라운 말은, 곧 자연스러워졌다. 이후 조회나 석회에서도 반복해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땅은 유산자의 것을 넘어 ‘만인의 욕망’으로 개발되는 중이고, 그 공정에 기획부동산이 있다.

“엄마, 엄마도 돈 벌 수 있어.”

연두색 칸막이 너머로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난 11월5일 오후 2시께 심혜선(가명·36살) 차장은 회사에서 알려준 각종 개발 호재를 조곤조곤 가족들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11월 입사 첫날 “저 빨리 돈 벌어야 해요”가 인사말이기도 했던 심 차장은 그리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부모님과 오빠에게 ‘땅 매입’을 권하게 된 것이다.

청주에서 베이킹 카페를 운영하다 서울로 온 심 차장은 남들도 다 한다기에 손을 댔던 코인 투자로 1억원을 날렸다고 한다. “만회할 카드는 부동산뿐”이라며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획부동산을 제 발로 찾아 들어왔다.

‘돈 때문에 절박하신 분’, ‘부동산 배우면서 돈 버실 분’, ‘재테크해서 노후준비하고 싶으신 분’을 찾는다는 이 회사 광고를 심 차장이 놓쳤을까. 기자 역시 온라인 구인광고로 알게 된 ㅎ사(서울 강남구)에 정식으로 서류 지원해 인사실장, 담당 부장과 일대일 면접한 게 10월26일 오후 2시께다. 이력서를 손에 쥔 채 “서울에서 대학 나오고 이쪽 일 경험이 없어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며 마지막까지 연신 의중을 떠보는 박 부장에게 진짜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돈 많이 벌고 싶습니다.”

“뭣보다 눈빛이 살아 있고 ‘돈 벌고 싶다’고 하니 믿어볼게요. 내일부터 출근하세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10월27일 기자는 ‘장 차장’이 되어, 취업에 실패해온 40대 남성은 같은 날 ‘허 차장’으로, 무너진 자영업자는 나흘 뒤 ‘심 차장’으로 ㅎ사의 영업4부에 배치됐다. 서울 강남 선릉역 번듯한 오피스 건물에 입주한 ㅎ사는 각기 4명 안팎으로 구성된 영업1부부터 10부까지 있는데, 통째 빈 부서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직원이 모두 나갔거나, 그래서 곧 ‘신입’들로 채울 부서들이고 그 생몰의 ‘무한반복’이 이 회사의 본질이란 걸 이내 파악할 수 있었다. 강남 일대에만 이러한 기획부동산이 300여개로 추정되고, 그들이 이젠 저소득층까지 노려 개발될 리 없는 땅조차 상품으로 기획해내고 있다.

ㅎ사는 충남 당진시 석문면 통정리·삼화리 일대 임야 2곳을 각각 평당 130만원, 150만원에 팔았다. 현지 실거래가에 견줘 최대 4~5배 이상 비싼 가격이었다. 임원들은 쿠팡과 편의점에서 파는 생수와 마트와 식당에서 파는 소주의 가격 차이를 언급하며 “4억원짜리 땅을 11억원에 파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니 직원들에겐 각오나 다짐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계약으로 뭉친 4부 ㅎ의 최고 부서! 된다 된다 계! 약! 번다 번다 돈! 돈! 영업4부 파이팅 파이팅 얍!

실제 회사의 하루는 구호로 시작된다. 영업4부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젊은 피’를 수혈해 조직한 부서였다. 기존 팀원인 60대 차장 2명에 3040세대를 투입해 ‘신구’ 조화를 이뤄내겠다는 게 회사의 목표라고 박 부장이 말했다. 우렁찬 박수와 함께 부서별 구호 파도타기가 끝나면 조회가 시작된다. 거듭 “필지로 땅 못 사는 사람들” “돈 없는 사람들도 땅으로 돈 벌 수 있게”….

에이스 부서로 정평이 난 영업10부의 정인영(68살) 부장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게 우리나라 속담이야. 욕심을 이용하란 말이야! 주변에 크게 오른 땅 말하면서 기대감을 품게 하고, 우리가 파는 땅 얘기를 하란 거야”라고 신입 차장들에게 영업 노하우를 전수하곤 했다. 그는 올해만 15억원어치 땅을 팔아 성과급으로 1억5천만원 정도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필지로 땅 못 사는 사람들” “돈 없는 사람들도 땅으로 돈 벌 수 있게” 판 땅은 그 가운데 얼마일까.

“부동산은 망하지 않아. 내 딸이 직업 군인이야. 진급 못 하면 아예 기획부동산에서 일하려고 한다는 거 아니야. 직장생활 하면서 이런 돈 평생 못 만져. 정말 잘한 선택이야.” 그는 눈이 마주치는 직원들에게 자주 엄지척을 날렸다. 그의 ‘응원’을 무시하는 신입들은 없다. 베테랑 정 부장과 신입들의 욕망, 아니 꿈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사진 왼쪽) ㅎ사에서 가장 실적이 좋은 ‘영업10부’의 실적 현황. 계약을 따낸 직원의 이름과 수수료가 적힌 종이를 벽면에 붙여두었다. (오른쪽) ㅎ사 사무실 내부. 중앙 통로를 두고 양쪽으로 칸막이 책상이 일렬로 놓여 있다. 중앙 무대에는 물건지 설명을 위해 화이트보드, 티브이, 빔프로젝터가 설치돼 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사진 왼쪽) ㅎ사에서 가장 실적이 좋은 ‘영업10부’의 실적 현황. 계약을 따낸 직원의 이름과 수수료가 적힌 종이를 벽면에 붙여두었다. (오른쪽) ㅎ사 사무실 내부. 중앙 통로를 두고 양쪽으로 칸막이 책상이 일렬로 놓여 있다. 중앙 무대에는 물건지 설명을 위해 화이트보드, 티브이, 빔프로젝터가 설치돼 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회사 사무실 구조는 ‘공장식 콜센터’라 할 만하다.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4자리 또는 6자리씩 칸막이로 구분된 책상이 일렬로 놓여 있다. 흔한 컴퓨터 한대 없이 책상 위엔 유선전화기만 달랑 놓여 있다. 칸막이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2030 당진시 개발계획도’와 회사 계좌번호가 찍힌 쪽지가 붙어 있었다. 사무실 벽면에는 개인별 실적이 적힌 종이가 부서 단위별로 게시돼 있다. 영업 경쟁을 유도한다. 부서별로 실적 격차가 제법 큰 게 눈에 들어왔다. 영업10부 뒤 벽면은 실적을 붙일 자리가 모자라는 반면, 단 한건 올리지 못한 부서도 있었다. ㅎ사에서 일한 열흘간 2개 부서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고 빠르게 새 사람들로 채워졌다.

매일 아침 10시30분부터 1시간 반쯤 진행되는 조회에서 임원들은 우리가 파는 ‘물건지’가 어째서 좋은 땅인지, 개발 호재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침이 튈 정도로 열렬히 주입시켰다. 화면에는 지자체 홍보 동영상, 경제지 기사 스크랩, 국토부 보도자료 등이 연신 띄워졌다. “우리가 파는 땅은 차원이 달라요”, “개발이 확정됐으니 돈 빌려서라도 이 땅은 사야 합니다”, “지금이 아닌 미래 값어치로 보라고 고객을 설득하세요”와 같은 ‘확신의 언어’들이 촤르르 쏟아졌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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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 금기가 있었다. 회사가 파는 토지의 지번은 고객에게 절대 먼저 알려줘서는 안 된다. 물건지를 설명하는 대면 미팅을 만들어 고객이 회사로 직접 방문하는 ‘내사’가 확정되고 난 뒤에야 지번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교육받는다. 고객이 앞서 땅의 ‘실체’를 달리 파악하거나 평가할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다. 명품을 즐겨 입는 한정원(가명·40대 초반) 상무는 논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당진시 석문면 통정리 임야를 놓고 “지대가 높아 홍수가 와도 안정적이고 농작물 수입이 없기에 세금이 적고 흙을 파 팔 수도 있다”고 말했다. 차장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갖가지 교육 정보들을 받아 적다 조회가 끝나면 일제히 부산을 떨며 전화통을 붙들었다.

“지금 은행 이자가 1%도 안 되는데!”, “그때 파주에 땅 산 사람들은 돈을 엄청 벌었다니까 그러네!”, “이 당진 땅은 죽으면 새끼한테 물려줘도 돼. 나 못 믿어?” 고성과 읍소 사이에서 중부권의 지번 모를 땅들을 질주하던 차장들의 목소리가 잦아들 때면, 사장을 포함한 3명의 임원들이 중앙 통로를 오가며 호통을 쳤다. “왜 이리 조용해. 절간이야, 오늘은 영업 안 할 거야?” 좁은 양계장의 닭처럼 붙어 앉은 직원들은 눈치를 보며 또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2회에선 부동산 기획자들이 존속할 수 있는 영업비밀, 장 차장을 유혹하는 땅의 이야기 등을 소개합니다. 2회는 오늘 22일 오후 2시 <한겨레> 홈페이지에 공개합니다.
☞기사보기 : “가수 태연 가족이 산 땅보다 좋은 땅” 유혹과 압박이 오갔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4333.html
장필수 김완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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