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7일부터 11월15일까지 직접 일한 기획부동산은 모두 2곳(ㅎ·ㅈ사)이다. 경기도 수원에 있는 ㅈ사에선 충남 예산군 삽교읍 두리에 있는 밭을 평당 244만원에 팔았다. ㅎ사와 비슷하게 실거래가의 4~5배였다.
회사별로 토지의 최소 판매 평수와 가격이 달랐지만, 약속이나 한 듯 최소 구매금액은 ‘1500만원대’로 형성돼 있었다. ㅎ사는 11평(1460만~1650만원), ㅈ사는 6.36평(1554만원)을 최소 판매 단위로 삼아 ‘지분 쪼개기’(한 필지를 서로 모르는 다수가 살 수 있게 지분을 회사가 분할) 방식으로 판매했다. 두 회사 임원들은 조회·석회 시간을 틈타 지분 쪼개기는 “돈 없는 사람들을 위한 최적의 투자 방법”임을 강조했다.
기존의 기획부동산들은 군사보호지역, 비오톱(생물서식공간) 1등급,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등 개발이 제한된 토지를 ‘뻥 브리핑’(허위 개발 정보를 제공)해 팔아 문제가 됐다. 개인별 피해 규모가 적어도 수천만원에서 1억~2억원대로 중상위 계층이 주로 포섭되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더 ‘합법적’ 테두리에서 덜 가진 이들, 더 작은 욕망까지 타깃 삼는 변화가 뚜렷하다. 최근 몇년의 부동산값 폭등이 남 일이었던, 남 일일 수밖에 없던, 그렇게 ‘가만히’ 더 가난해지고 만 이들을 위해서란 듯 말이다.
실제 회사에선 아예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부동산 판매사기 사건들을 ‘과거 사례’로 나열해 직원들에게 보여준다. “정상적인 업체”임을 강조하고, 세뇌하는 수단이다. 가장 최근 사건 가운데 하나인 가수 태연 가족의 사기 사건 기사(거래는 2019년)를 보여주며 “이 땅은 비오톱 1등급 임야다. 우리가 파는 땅은 절대 그런 땅이 아니다. 비오톱 땅을 팔아서도 2500억원을 남겼다는데, 우리는 좋은 땅을 파니 그보다 더 많이 팔아야 된다”고 당당하게 소리치기도 했다. 당당함 대신 호기심이 커졌다. ‘2019년조차 노골적 사기가 먹혔구나.’
ㅎ사의 영업 방식은 단순하다. 하지만 간단하진 않다. 휴대전화 번호가 담긴 서류를 보고 무작위로 전화를 거는 이른바 ‘114 영업’. 그런데 그 기반인 ‘전화번호부’가 대체로 무용지물이다. 회사가 나눠준 수백명의 휴대전화 번호 중 상당수는 결번 또는 정지된 번호인데, 이럴 경우 “끝자리나 중간 자리를 바꿔서 다시 전화하라”고 지시한다. 운 좋게 생판 모르는 사람과 연결이 되더라도 쉽게 넘어올 리 없다. “그렇게 좋으면 당신이나 사라” 따져오기 십상이다. 최선의, 그러나 대개 최후가 되고 마는 멘트를 던져야 할 순간이다. “저도 샀는데요?”
기획부동산들은 “인사→본인·회사 소개→공감대(나이·고향·취미) 형성→재테크 대화→투자 권유로 이어지는 ‘단계별 통화’”를 강조하지만 그건 애초 불가능하다. 기획부동산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차장들을 늘려가는 이유다. 회사의 진짜 실체가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사실 차장들이 이들 회사의 유일한 ‘고객’이란 사실. 회사는 차장들에게 지인과 가족 상대의 영업도 처음부터 권하진 않는다. 하지만 114 영업이 무모한 도전이라는 것을 체감할 때쯤, 제안이 들어온다.
출근한 지 사흘째 되던 날, 톰브라운 니트를 입은 한 상무가 말했다. “하루 삼사백통 전화를 해서 받는 사람은 10% 내외고 그중에서도 계약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1%도 안 돼요. 114보다 빠른 게 연고이고 마감을 앞두고는 이제 연고도 병행해야겠죠?” 직원이 고객으로 전환되는 ‘연고 압박’이다.
(왼쪽) 장 차장이 앉았던 자리. 유선 전화와 티슈만이 제공됐고, 칸막이에 ‘2030 당진개발계획도’, ‘아파트 단지’ ‘ㅎ사 계좌번호’ ‘영업 4부 구호’ ‘회사 주소’가 적인 종이가 붙여져 있다. 책상 위에 놓은 서류는 ㅎ사에서 제공한 ‘114’ 영업용 전화번호부. (오른쪽) ㅎ사에서 제공한 114 영업 기록 카드. 통화한 고객과 관련한 정보를 기록해 담당 부장에게 보고한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기획부동산은 3단계를 거쳐 직원을 고객화한다. 이벤트성 상금(금 1돈 등), 성과급(토지 판매 대금의 2%)을 미끼로 차장들을 자극한다. 시상금으로 사무실 분위기가 들뜨면, 부장들은 “우리가 먼저 상금을 챙겨야 하니 본인 명의로라도 일단 계약금을 걸어놓고 이달 안으로 고객에게 팔자”, “우리끼리 돈 모아서 일단 (계약서를) 쓰고 상금은 나눠 가진 뒤 고객에게 떠넘기자”고 제안한다. 영업은 원래 “벼랑 끝에서 해야 되는 것”이라고 내몬다.
월말 ‘마감 시한’이 다가오면 임원들이 대놓고 나선다. 세번째 압박 카드다. “손님을 붙잡아 계약금을 ‘땡기든지’, 아니면 차장님들이 (먼저 가계약해) 잡아놓고, 시한을 줄 테니 이번달까지만 (고객 돈으로) 잔금을 넣으면 된다”고 압박한다. 180㎝가 넘는 키에 몸무게가 100㎏이 넘는 권일성(가명) 상무는 “오늘 계약 따낼 사람 손 들어봐라, 끝날 때 다시 확인하겠다” “어떻게든 오늘 안에 ‘정계약’(토지매매계약서상 계약금만 회사 계좌로 입금한 상태)을 만들어 놓으라” 엄포를 놓으며 아침 조회를 마무리하곤 했다.
이렇게 해 보통 1500만원대 금액의 10%가량인 150만원 정도를 계약금으로 걸게 되는 차장들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반드시 누군가에게 땅을 팔아야 하거나, 결국 잔금까지 직접 치러 살 수밖에 없는 블랙홀로 진입하게 된다.
움츠러든 차장들을 달래는 역할은 부장이 맡았다. 단골 레퍼토리는 ‘영업10부 에이스’ 김미선(가명) 차장 이야기였다. 박 부장은 “김 차장님이 회사에서 산 평택 도대리 땅이 (평당) 280만원에서 800만원까지 올랐어. 초등학교 선생인 친동생이 교장, 교감까지 다 데리고 와서 지난달에만 2억원어치 팔았다”며 올해 일흔을 넘긴 김 차장이 본인은 돈도 벌고 주변에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시상금 욕심, 제2, 제3의 김 차장이 되고 싶은 욕망, “회사가 파는 토지가 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의 삼박자가 갖춰질 때쯤 차장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걸어둘 ‘정계약’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때를 놓치지 않고 담당 부장이 허리춤을 깊숙이 찌른다. “어차피 오를 땅인데 자기가 하나 사두면 좋잖아. 이번에 시상금도 걸려 있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야.” 누군가에게 땅뙈기를 비싸게 팔았을 기획부동산의 가해자와 그러한 땅을 살 수밖에 없는 피해자가 뒤섞이는 순간이다. 이른바 피라미드 영업의 ‘물고 물리기’처럼 말이다.
“직접 구매할 여력 되지 않아요?” ㅎ사 입사 7일 만인 11월4일, 박 부장이 점심 식사를 하러 가던 중 단도직입적으로 토지 구매를 권했다. 앞서 박 부장은 “마포에 살고 여유가 되니까, (영업) 천천히 해요”, “여차하면 지를 수 있잖아요?”와 같은 말을 스쳐 지나가듯 던져왔지만, 이날만큼은 집요했다. 점심 식사가 끝나자마자 11월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새 물건지 정보가 가득 찬 서류 뭉치를 가져와 “본인 이름으로 계약 한 건 올려야 하지 않겠나. 계약금 150만원부터 일단 걸고 (150만원이) 없으면 100만원만이라도 걸어라”고 독촉했다. 박 부장과 특히 가까운 진선영(61살·가명) 차장도 거들었다. “나도 친언니 이름으로 11평 계약했다. 계약을 해야 회사가 믿음을 준다”고 설득했다. ‘70만원밖에 없어서 죄송하다’고 하니, “30만원 빌려줄 테니 계약서부터 쓰자”고 박 부장은 말했다. 성과가 없자, 퇴근 직전인 오후 4시 박 부장은 들으란 듯 ‘신입 차장’을 상대로 한 영업 경과를 누군가에게 휴대전화로 보고했다. 명품 스카프를 두른 박 부장이 빠르게 훑던 이력서의 ‘주소란’에 눈길을 세운 채 “마포에 사네, 자가, 전세?” 하다 부모의 직업까지 구체적으로 묻던 10월의 면접일 풍경이 스쳐갔다.
ㅎ사에서 10월27일부터 일주일간 성사되었다고 보고된 정계약(가계약금까지 납입)은 16건이었다. 가까이서 바로 확인된 최소 3건이 차장 본인 또는 가족 명의의 계약이었다. 전체 직원 계약건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땅을 팔아 돈을 벌러 기획부동산에 모여든 이들이 없는 돈을 끌어모아 땅을 사버린 것이다. 이들은 “값이 오를 좋은 땅 정보를 알았고, 천만원이면 살 수 있다는데 적은 돈이라도 투자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어차피 오를 땅 아니냐”, “내 이름으로 넣어 놓고 나면 회사도 나를 믿어줘서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영업10부의 6개월차 장일영(가명) 차장은 “내 명의 등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내가 샀으니 너도 믿고 사’라고 말하면 고객이 따라온다. 내가 먼저 사니 망설였던 사람들도 다 (따라) 샀다”며 “만약 살 계획이 있으면 미리 사서 영업하는 게 낫다”며 지금이라도 땅을 사라고 권했다.
장 차장처럼 회사에서 땅을 산 차장들은 ‘내가 산 땅은 반드시 오를 것’이라는 믿음이 두터워 보였다. 믿음이 영업의 동력이 된다. 하지만 그 믿음은 사실 그들의 오늘 삶을 버티게 하는 동력일 것이다.
“나 못 믿어? 나 믿고 일단 와서 설명만 들어봐.”
“진짜 돈 천만원 가지고 이렇게 따지고 그러면 이런 좋은 땅 못 산다니까.”
“엄마, 엄마도 돈 벌 수 있다니까.”
과연 개발될 땅일까, 이들에게 땅에 대한 믿음은 어쩌다 필요했을까, 그리고 또 믿음을 필요로 하는 전화 너머 그들은 누구일까.
(※다음 연재로 이어집니다.)
▶‘부동산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신화의 나라. 부동산 성공담이 차고 넘치지만 부동산 게임에서 모두가 ‘승자’가 될 순 없다. 부동산이란 이름의 욕망 전차에도 ‘꼬리칸’은 있게 마련이다. 남들만 돈을 번다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중상류층을 올려다보기만 하던 이들마저 영혼을 끌어모아 부동산 투기 열차에 탑승한다. 이들을 꼬리칸으로 안내하는 이들이 바로 ‘부동산 기획자’다. 돈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을 자극해 쪼개진 ‘땅’의 주인으로 만들고, 2천만원에 갭투자 아파트를 사도록 이끈다. 돈이 적다고 욕망마저 가난할 순 없는, 그럼에도 부동산 생태계에서 끝내 포식자가 되지 못할 이들, 그 2천만원짜리 욕망을 기획하고 판을 짜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장필수 김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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