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균형과 품격의 삶 보여준 ‘시대의 스승’이셨죠”

등록 2022-04-24 18:59수정 2022-04-25 02:36

[가신이의 발자취] 한승헌 변호사를 떠나보내며

지난 21일 고 한승헌 변호사 빈소가 차려진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을 시민들이 찾아 조문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21일 고 한승헌 변호사 빈소가 차려진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을 시민들이 찾아 조문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누구보다 충실한 인권변호사 삶
문학도·유머인으로 ‘중화’시켜
높은 정신성 구현한 ‘중도의 삶’
어떤 분야든 극단 빠지지 않아
사관처럼 자신의 기록 꼼꼼히 정리

최선 다해 스승 가르침 실현할 것

스승이 별세하셨습니다 . 한승헌 변호사님의 별세로 우리는 또 한 명의 스승을 잃었습니다 . “아무도 존중할 사람이 없고 의지할 사람이 없이 머문다는 것은 괴로움이다 ”라고 세존 , 고타마 싯다르타는 말씀했습니다 . 따라 배울 스승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 지금처럼 갈등이 높은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에게 한승헌 변호사님의 가르침과 행적 , 향기가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

스승의 별세에 세상은 놀랐습니다 . 평소 견해를 달리 해 온 언론들도 모두 한승헌 변호사님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했습니다 . 1세대 인권변호사로서 평생을 산 한 변호사님의 삶을 진지하게 소개했습니다 . 우리가 지금 누리는 인권은 인권변호사들께서 만들고 정착시킨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 1세대 인권변호사님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의 인권은 여전히 후진적일 것입니다 .

한 변호사님은 1세대 인권변호사이면서도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높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 언론도 한 변호사님을 깊이 존경했습니다 . 한겨레신문사는 한 변호사님이 ‘창간위원회 위원장’이셨으니 당연하겠지만 다른 언론도 깊은 존경심을 표했습니다 .

한 변호사님은 인권변호사의 삶을 가장 충실하게 실현하였습니다 . 그러면서 이를 중화시키는 여유를 가지셨습니다 . 문학도 한승헌 , 유머인 한승헌이 인권변호사의 삶을 중화시켰습니다 . 가장 치열하게 인권변호사로 살았으나 수많은 분야에서 “세상의 끝 ”에까지 다가가 높은 성취를 보여주었습니다 . 더 중요하게는 모든 분야에서 극단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

한 변호사님의 삶은 균형과 품격의 삶이었습니다 . 한 변호사님은 높은 정신세계를 구현하는 균형 , 중도의 삶을 실현했습니다 . 섭렵한 모든 분야에서 높은 경지에 도달했으나 그것만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

한 변호사님은 군부독재 피해자들을 법정에서 변론하는 변호사의 삶과 자신이 직접 군부독재와 싸운 투사로서의 삶을 함께 살았습니다 . 법정 안팎을 오가면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 자유와 인권을 위한 투쟁에 몸 바쳤습니다 . 한 변호사님은 법률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문학도로서 시집과 산문집을 계속 출간했습니다 . 법률가로서는 인권이라는 근본 가치와 저작권이라는 미래 가치를 동시에 연구한 보기 드문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 그리고 문학을 통해 삶의 감정을 승화시켰습니다 . 감정을 담은 문학은 삶에 여유를 가져다줍니다 . 나아가 서슬 퍼런 군부독재와 맞서 싸우는 동안 당신 본인은 가을 서리같이 냉정하고 엄격하게 살면서도 동료와 후배들에게는 유머라는 너무나 멋진 보물을 선물했습니다 .

한 변호사님은 날카로운 투사이면서 여유를 갖춘 신사였습니다 . 균형과 여유는 곧 품격으로 이어집니다 . 군부독재 시절 민주세력이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조그마한 틈을 한 변호사님은 유머와 품격으로 만들었습니다 .

한 변호사님은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혁신에 진력했습니다 . 특히 감사원장 재직 때 감사원의 원훈을 ‘바른 감사 , 바른 나라’로 정하고 감사 문장 바로쓰기 등 혁신에 앞장섰습니다 . 전통을 존중하면 혁신에 둔감해지고 혁신에 진력하면 전통을 무시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는데 이를 뛰어넘었습니다 . 한 변호사님은 동학농민운동 지도자의 유골을 일본에서 봉환하는 데 앞장서는 민족주의자이면서 세계 보편의 인권을 강조한 세계주의자였습니다 . 후세 다쓰지 , 마사키 히로시 일본 변호사를 존경한 세계주의자였습니다 . 어느 한 편 치우침이 없었습니다 . 다시 균형입니다 . 다시 품격입니다 .

한 변호사님은 다양한 일을 하면서도 항상 그 일을 꼼꼼하게 기록했습니다 . 변호사님의 활동은 인권 , 민주화운동 , 언론 , 저작권 , 감사원장과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 등 공직을 가리지 않고 다양했습니다 . 그것도 최고 책임자급에서 활동했습니다 . 그러면서 마치 조선시대 사관처럼 자신의 역사를 정리했습니다 . 우리는 변호사님이 저술한 47권의 책에서 치열하면서도 여유 있는 삶을 목격합니다 . 기록의 정리는 자신의 삶을 균형과 여유 있게 객관적으로 보는 큰 힘입니다 .

한 변호사님의 삶은 자부심으로 가득한 삶이었으나 누구보다 겸손한 삶이기도 했습니다 . 인권과 자유와 법치라는 일관된 삶을 살았으나 누구보다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 세속에서 제도의 개혁과 인간의 행복을 위해 노력했으나 진한 탈속의 향기를 풍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 핍박을 받으면서 가해자들을 증오하지 않았고 고난의 길을 가면서도 오히려 후배들을 지키고 이끄는 스승의 삶을 완성했습니다 .

의지할 수 있는 어른 , 스승이 드문 시대입니다 . 우리는 또 한 분의 위대한 스승을 잃었습니다 . 깨우치지 못한 평범한 인간으로서 매우 슬픈 일입니다 . 그렇지만 스승의 가르침은 남아 있습니다 . 이 가르침이 사라지지 않는 한 , 그리고 이 가르침에 의지하는 한 스승 없는 괴로움은 덜 할 것입니다 . 한 변호사님의 가르침을 익히고 보존하고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 . 이것이 스승을 존경하는 자들의 몫입니다 . 저도 한 변호사님의 가르침을 실현하고 보존하고 전하도록 미력한 힘이나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김인회/감사위원·<한승헌 변호사의 삶: 균형과 품격> 저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