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신이의 발자취] 한승헌 변호사를 떠나보내며
누구보다 충실한 인권변호사 삶
문학도·유머인으로 ‘중화’시켜
높은 정신성 구현한 ‘중도의 삶’
어떤 분야든 극단 빠지지 않아
사관처럼 자신의 기록 꼼꼼히 정리 최선 다해 스승 가르침 실현할 것 스승이 별세하셨습니다 . 한승헌 변호사님의 별세로 우리는 또 한 명의 스승을 잃었습니다 . “아무도 존중할 사람이 없고 의지할 사람이 없이 머문다는 것은 괴로움이다 ”라고 세존 , 고타마 싯다르타는 말씀했습니다 . 따라 배울 스승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 지금처럼 갈등이 높은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에게 한승헌 변호사님의 가르침과 행적 , 향기가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 스승의 별세에 세상은 놀랐습니다 . 평소 견해를 달리 해 온 언론들도 모두 한승헌 변호사님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했습니다 . 1세대 인권변호사로서 평생을 산 한 변호사님의 삶을 진지하게 소개했습니다 . 우리가 지금 누리는 인권은 인권변호사들께서 만들고 정착시킨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 1세대 인권변호사님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의 인권은 여전히 후진적일 것입니다 . 한 변호사님은 1세대 인권변호사이면서도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높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 언론도 한 변호사님을 깊이 존경했습니다 . 한겨레신문사는 한 변호사님이 ‘창간위원회 위원장’이셨으니 당연하겠지만 다른 언론도 깊은 존경심을 표했습니다 . 한 변호사님은 인권변호사의 삶을 가장 충실하게 실현하였습니다 . 그러면서 이를 중화시키는 여유를 가지셨습니다 . 문학도 한승헌 , 유머인 한승헌이 인권변호사의 삶을 중화시켰습니다 . 가장 치열하게 인권변호사로 살았으나 수많은 분야에서 “세상의 끝 ”에까지 다가가 높은 성취를 보여주었습니다 . 더 중요하게는 모든 분야에서 극단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 한 변호사님의 삶은 균형과 품격의 삶이었습니다 . 한 변호사님은 높은 정신세계를 구현하는 균형 , 중도의 삶을 실현했습니다 . 섭렵한 모든 분야에서 높은 경지에 도달했으나 그것만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 한 변호사님은 군부독재 피해자들을 법정에서 변론하는 변호사의 삶과 자신이 직접 군부독재와 싸운 투사로서의 삶을 함께 살았습니다 . 법정 안팎을 오가면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 자유와 인권을 위한 투쟁에 몸 바쳤습니다 . 한 변호사님은 법률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문학도로서 시집과 산문집을 계속 출간했습니다 . 법률가로서는 인권이라는 근본 가치와 저작권이라는 미래 가치를 동시에 연구한 보기 드문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 그리고 문학을 통해 삶의 감정을 승화시켰습니다 . 감정을 담은 문학은 삶에 여유를 가져다줍니다 . 나아가 서슬 퍼런 군부독재와 맞서 싸우는 동안 당신 본인은 가을 서리같이 냉정하고 엄격하게 살면서도 동료와 후배들에게는 유머라는 너무나 멋진 보물을 선물했습니다 . 한 변호사님은 날카로운 투사이면서 여유를 갖춘 신사였습니다 . 균형과 여유는 곧 품격으로 이어집니다 . 군부독재 시절 민주세력이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조그마한 틈을 한 변호사님은 유머와 품격으로 만들었습니다 . 한 변호사님은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혁신에 진력했습니다 . 특히 감사원장 재직 때 감사원의 원훈을 ‘바른 감사 , 바른 나라’로 정하고 감사 문장 바로쓰기 등 혁신에 앞장섰습니다 . 전통을 존중하면 혁신에 둔감해지고 혁신에 진력하면 전통을 무시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는데 이를 뛰어넘었습니다 . 한 변호사님은 동학농민운동 지도자의 유골을 일본에서 봉환하는 데 앞장서는 민족주의자이면서 세계 보편의 인권을 강조한 세계주의자였습니다 . 후세 다쓰지 , 마사키 히로시 일본 변호사를 존경한 세계주의자였습니다 . 어느 한 편 치우침이 없었습니다 . 다시 균형입니다 . 다시 품격입니다 . 한 변호사님은 다양한 일을 하면서도 항상 그 일을 꼼꼼하게 기록했습니다 . 변호사님의 활동은 인권 , 민주화운동 , 언론 , 저작권 , 감사원장과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 등 공직을 가리지 않고 다양했습니다 . 그것도 최고 책임자급에서 활동했습니다 . 그러면서 마치 조선시대 사관처럼 자신의 역사를 정리했습니다 . 우리는 변호사님이 저술한 47권의 책에서 치열하면서도 여유 있는 삶을 목격합니다 . 기록의 정리는 자신의 삶을 균형과 여유 있게 객관적으로 보는 큰 힘입니다 . 한 변호사님의 삶은 자부심으로 가득한 삶이었으나 누구보다 겸손한 삶이기도 했습니다 . 인권과 자유와 법치라는 일관된 삶을 살았으나 누구보다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 세속에서 제도의 개혁과 인간의 행복을 위해 노력했으나 진한 탈속의 향기를 풍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 핍박을 받으면서 가해자들을 증오하지 않았고 고난의 길을 가면서도 오히려 후배들을 지키고 이끄는 스승의 삶을 완성했습니다 . 의지할 수 있는 어른 , 스승이 드문 시대입니다 . 우리는 또 한 분의 위대한 스승을 잃었습니다 . 깨우치지 못한 평범한 인간으로서 매우 슬픈 일입니다 . 그렇지만 스승의 가르침은 남아 있습니다 . 이 가르침이 사라지지 않는 한 , 그리고 이 가르침에 의지하는 한 스승 없는 괴로움은 덜 할 것입니다 . 한 변호사님의 가르침을 익히고 보존하고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 . 이것이 스승을 존경하는 자들의 몫입니다 . 저도 한 변호사님의 가르침을 실현하고 보존하고 전하도록 미력한 힘이나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김인회/감사위원·<한승헌 변호사의 삶: 균형과 품격> 저자

지난 21일 고 한승헌 변호사 빈소가 차려진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을 시민들이 찾아 조문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문학도·유머인으로 ‘중화’시켜
높은 정신성 구현한 ‘중도의 삶’
어떤 분야든 극단 빠지지 않아
사관처럼 자신의 기록 꼼꼼히 정리 최선 다해 스승 가르침 실현할 것 스승이 별세하셨습니다 . 한승헌 변호사님의 별세로 우리는 또 한 명의 스승을 잃었습니다 . “아무도 존중할 사람이 없고 의지할 사람이 없이 머문다는 것은 괴로움이다 ”라고 세존 , 고타마 싯다르타는 말씀했습니다 . 따라 배울 스승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 지금처럼 갈등이 높은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에게 한승헌 변호사님의 가르침과 행적 , 향기가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 스승의 별세에 세상은 놀랐습니다 . 평소 견해를 달리 해 온 언론들도 모두 한승헌 변호사님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했습니다 . 1세대 인권변호사로서 평생을 산 한 변호사님의 삶을 진지하게 소개했습니다 . 우리가 지금 누리는 인권은 인권변호사들께서 만들고 정착시킨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 1세대 인권변호사님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의 인권은 여전히 후진적일 것입니다 . 한 변호사님은 1세대 인권변호사이면서도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높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 언론도 한 변호사님을 깊이 존경했습니다 . 한겨레신문사는 한 변호사님이 ‘창간위원회 위원장’이셨으니 당연하겠지만 다른 언론도 깊은 존경심을 표했습니다 . 한 변호사님은 인권변호사의 삶을 가장 충실하게 실현하였습니다 . 그러면서 이를 중화시키는 여유를 가지셨습니다 . 문학도 한승헌 , 유머인 한승헌이 인권변호사의 삶을 중화시켰습니다 . 가장 치열하게 인권변호사로 살았으나 수많은 분야에서 “세상의 끝 ”에까지 다가가 높은 성취를 보여주었습니다 . 더 중요하게는 모든 분야에서 극단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 한 변호사님의 삶은 균형과 품격의 삶이었습니다 . 한 변호사님은 높은 정신세계를 구현하는 균형 , 중도의 삶을 실현했습니다 . 섭렵한 모든 분야에서 높은 경지에 도달했으나 그것만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 한 변호사님은 군부독재 피해자들을 법정에서 변론하는 변호사의 삶과 자신이 직접 군부독재와 싸운 투사로서의 삶을 함께 살았습니다 . 법정 안팎을 오가면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 자유와 인권을 위한 투쟁에 몸 바쳤습니다 . 한 변호사님은 법률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문학도로서 시집과 산문집을 계속 출간했습니다 . 법률가로서는 인권이라는 근본 가치와 저작권이라는 미래 가치를 동시에 연구한 보기 드문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 그리고 문학을 통해 삶의 감정을 승화시켰습니다 . 감정을 담은 문학은 삶에 여유를 가져다줍니다 . 나아가 서슬 퍼런 군부독재와 맞서 싸우는 동안 당신 본인은 가을 서리같이 냉정하고 엄격하게 살면서도 동료와 후배들에게는 유머라는 너무나 멋진 보물을 선물했습니다 . 한 변호사님은 날카로운 투사이면서 여유를 갖춘 신사였습니다 . 균형과 여유는 곧 품격으로 이어집니다 . 군부독재 시절 민주세력이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조그마한 틈을 한 변호사님은 유머와 품격으로 만들었습니다 . 한 변호사님은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혁신에 진력했습니다 . 특히 감사원장 재직 때 감사원의 원훈을 ‘바른 감사 , 바른 나라’로 정하고 감사 문장 바로쓰기 등 혁신에 앞장섰습니다 . 전통을 존중하면 혁신에 둔감해지고 혁신에 진력하면 전통을 무시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는데 이를 뛰어넘었습니다 . 한 변호사님은 동학농민운동 지도자의 유골을 일본에서 봉환하는 데 앞장서는 민족주의자이면서 세계 보편의 인권을 강조한 세계주의자였습니다 . 후세 다쓰지 , 마사키 히로시 일본 변호사를 존경한 세계주의자였습니다 . 어느 한 편 치우침이 없었습니다 . 다시 균형입니다 . 다시 품격입니다 . 한 변호사님은 다양한 일을 하면서도 항상 그 일을 꼼꼼하게 기록했습니다 . 변호사님의 활동은 인권 , 민주화운동 , 언론 , 저작권 , 감사원장과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 등 공직을 가리지 않고 다양했습니다 . 그것도 최고 책임자급에서 활동했습니다 . 그러면서 마치 조선시대 사관처럼 자신의 역사를 정리했습니다 . 우리는 변호사님이 저술한 47권의 책에서 치열하면서도 여유 있는 삶을 목격합니다 . 기록의 정리는 자신의 삶을 균형과 여유 있게 객관적으로 보는 큰 힘입니다 . 한 변호사님의 삶은 자부심으로 가득한 삶이었으나 누구보다 겸손한 삶이기도 했습니다 . 인권과 자유와 법치라는 일관된 삶을 살았으나 누구보다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 세속에서 제도의 개혁과 인간의 행복을 위해 노력했으나 진한 탈속의 향기를 풍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 핍박을 받으면서 가해자들을 증오하지 않았고 고난의 길을 가면서도 오히려 후배들을 지키고 이끄는 스승의 삶을 완성했습니다 . 의지할 수 있는 어른 , 스승이 드문 시대입니다 . 우리는 또 한 분의 위대한 스승을 잃었습니다 . 깨우치지 못한 평범한 인간으로서 매우 슬픈 일입니다 . 그렇지만 스승의 가르침은 남아 있습니다 . 이 가르침이 사라지지 않는 한 , 그리고 이 가르침에 의지하는 한 스승 없는 괴로움은 덜 할 것입니다 . 한 변호사님의 가르침을 익히고 보존하고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 . 이것이 스승을 존경하는 자들의 몫입니다 . 저도 한 변호사님의 가르침을 실현하고 보존하고 전하도록 미력한 힘이나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김인회/감사위원·<한승헌 변호사의 삶: 균형과 품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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