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암ㆍ희귀병 투병과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 빈소에 시민들이 찾아와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친한 후배의 어머니, 여동생들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게 됐는데,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야겠다 싶어서 왔습니다. 좋은 곳에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24일 오후 8시께 경기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 지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수원 세모녀’를 위해 마련된 빈소에는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다. 화성시 기배동에서 조문 온 오아무개씨는 “친동생처럼 여겼던 후배의 가족이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오씨는 숨진 세모녀의 주민등록상 주소지인 화성 기배동의 주택 소유주의 아들이다. 숨진 어머니 ㄱ(60대)씨의 장남 ㄴ(40대)씨와 동네 선후배 사이다. 그는 “20여년 전 ㄴ씨의 부탁을 받고 주소를 우리집으로 이전하도록 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ㄴ씨가 2년여 전 죽고나서, (가족의) 생활이 급격하게 어려웠던 모양”이라고 전했다.
24일 밤 10시10분께 수원 세모녀 빈소가 마련된 수원중앙장례식장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조문을 하고 있다. 이정하 기자
언론 보도를 통해 빈소가 마련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서울 광진구에서 온 직장인 지아무개(31)씨는 “경제적 사정 탓에 치료 등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하고 숨진 이들의 명복을 빌어주려고 왔다. 다시는 이런 아픔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정치인의 조문도 이어졌다. 빈소를 개방한 이날 오후 5시께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가장 먼저 찾아왔다. 그는 “송파 세모녀 사건 이후 달라졌을 것으로 믿었던 복지 전달체계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신청해야만 검토해서 주는 방식의 행정으로는 이런 비극을 막지 못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당 대표 후보가 2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암ㆍ희귀병 투병과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밤 10시10분께 방문한 김동연 경기지사는 “경기도에서 이런 비통한 일이 생겨 비통하고 참담하다”며 “힘든 분들 연락하는 콜센터를 개편해 힘든 상황에 있는 분들이 연락하면 대처할 수 있는 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사회가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 주변에 이런 분들이 있으면 함께 고민해 주고 알려줘서 다함께 더불어 상생하는 공동체를 만든 것이 중요하다. 그런 사회를 만들어 보겠다”고 덧붙였다.
평소 주변과 왕래가 없었던 탓인지 세모녀와 직접 연락하며 지내던 지인들의 방문은 없었다. 이들의 주검을 인계할 마땅한 가족이 없어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되면서 장례식은 수원시의 공영장례로 치러지게 됐다.
2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암ㆍ희귀병 투병과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 빈소에 시민들이 찾아와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때문에 빈소에는 상주나 영정사진 없이 세 명의 이름이 새겨진 위패만 놓였다. 수원시에서 파견한 공무원 3~4명이 조문객을 맞고 있다. 시는 수원시 공영장례 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라 안치료·염습비·수의·관 등 주검 처리에 드는 비용과 빈소 사용료·제사상 차림비·위패·향·초·국화 등 장례의식에 필요한 비용 일체를 지원하기로 했다.
25일 오후 2시에는 세모녀를 위한 종교단체의 추모의식이 예정돼 있다. 세모녀의 주검은 26일 오전 11시30분 발인하고, 수원연화장에서 화장을 거쳐 봉안당에 봉안될 예정이다.
지난 21일 오후 2시50분께 수원시 권선구의 연립주택에서 세모녀는 주검으로 발견됐다. ㄱ씨는 암 진단을 받아 투병 중이었고, 큰딸도 지병을 앓았으며, 둘째 딸은 생활고 등으로 괴로워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에선 어머니와 작은딸이 쓴 9장의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에서 “지병과 빚 탓에 경제적으로도 힘들었다”고 적혀 있었다.
이들은 주소는 화성에 두고, 2020년 2월 현재 거주한 12평 남짓한 수원 월셋집으로 이사했다.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2000년 초반부터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이들 가족은 택배 등으로 생계를 꾸리던 장남이 2019년에 숨지고 남편까지 사망하면서 더 형편이 어려워졌다. 건강보험료를 지난해 2월분부터 올해 7월분까지 18개월간 33만9830원(연체금 1만4490원 별도) 연체했지만 전입신고 등이 되지 않아 정부의 사회복지 지원을 전혀 받지 못했다.
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