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노동연대회의가 22일 밤 서울 종로구 종각 앞에서 신당역 여성노동자 살해 규탄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에 이사했다. 집 앞에서 한 유튜버가 스토킹했기 때문이다. 제 집주소를 공개했던 이들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가해자는 떳떳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이런 사회가 과연 선진국인지 묻고 싶다.”
22일 오후 7시께부터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 광장에서 열린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제’에서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자유발언 기회를 얻어 무대에 올라 발언했다. 박 전 위원장은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나라는 지속될 수 없다”며 “목숨을 잃어야만 이 사회가 찔끔 앞으로 나가는 게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여성노동연대회의가 주관하고 민주노총·한국노총, 한국여성단체연합·한국여성노동자회 등 90개 여성·노동·시민사회 단체가 주최한 이날 집회는 지난 14일 신당역에서 발생한 스토킹 살인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열렸다. 500여명의 참가자들은 검은색 옷을 입고 광장을 채웠다. 참가자들은 ‘어디도 안전하지 않았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저녁 7시30분께 참가자들은 각자 스마트폰 플래시를 켜고 어둠이 내려앉은 광장을 밝혔다.
참가자들은 여성으로서, 노동자로서 일터에서 희생된 피해자의 죽음을 추모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해선 안된다고 입을 모았다.
이현경 서울교통공사노조 조합원은 발언을 통해 “죽지 않고 일하고 싶다고 했는데 교통공사 사장은 여성의 야간 당직을 줄이겠다고 했다. 여성들은 불법촬영 당하고 스토킹도 모자라 반쪽 노동자까지 돼야 한다”며 “고인이 의지했을 일터가 왜 죽음의 장소가 됐는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황연주 젠더정치연구소 사무국장은 “피해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불의에 저항하며 문을 두드렸다”며 “여성의 외침에 응답하지 않은 국가와 정치가 죽인 것”이라고 말했다. 진성선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번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했다. 본질을 흐리지 말고 젠더 폭력이 발생하는 구조에 집중해야 한다”며 “형식적 대책이 아닌 실질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인을 추모하는 연대 발언이 광장에 울리자 일부 참가자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연대 발언이 모두 종료된 저녁 8시10분부터 가수 신승은씨의 추모 공연이 열렸다. 집회 참가자들은 추모 공연이 끝난 후 보신각에서 출발해 을지로입구역, 시청역, 광화문역을 지나 다시 보신각으로 돌아오는 행진을 진행했다.
곽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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