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6천억원대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중단 사태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으로부터 룸살롱 술접대를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검사들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이 이 사건에 형법상 뇌물죄가 아닌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을 적용해 처벌 기준이 크게 낮아졌고, 술자리 참석자 수가 늘어나 접대 금액이 형사처벌 기준 이하로 계산됐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지난달 30일 서울남부지법 형사11단독 박영수 판사가 쓴 1심 판결문을 뜯어봤다. 판결문에는 검사들에게 면죄부를 발부한 그들만의 계산법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법조계에서는 이런 ‘술값 쪼개기’ 계산법이 김영란법 향응액수 계산의 판례로 굳어질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2019년 7월18일, 논현동 룸살롱에선 무슨 일이?
라임 술접대는 2019년 7월18일 서울 논현동의 한 룸살롱에서 이뤄졌다. 이날 밤 김봉현 전 회장은 모두 3개의 방에서 합계 1141만원의 술값을 계산했다. 이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검사들을 접대한 1호실에서 536만원, 이 사건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 5호실에서 350만원, 1호실을 오가며 술을 마신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 등이 있었던 6호실에서 255만원이 나왔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방은 1호실과 6호실이다.
애초 1호실에는 5명이 있었다. 김봉현 전 회장과, 검사 출신인 이아무개 변호사, 나아무개 검사를 포함한 검사 3명이었다. 김 전 회장과 이 변호사, 나 검사는 이번에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나머지 검사 2명은 2020년 12월 검찰이 불기소했다. 이 자리는 김 전 회장 사건을 맡은 이 변호사가 “후배 검사들과 술자리를 할 테니 주점에 예약을 해달라”고 전화를 하면서 시작됐다. 김 전 회장은 유흥주점 1호실을 예약했고, 술자리를 함께할 여성 유흥접객원 3명도 불렀다. 김 전 회장과 검사들까지 모두 5명이 모인 1호실 술자리는 밤 9시30분 시작됐다. 밤 10시50분께 불기소된 검사 2명이 먼저 자리를 뜨면서 참석자가 3명으로 줄었다. 이즈음 남은 피고인들은 노래를 부르기 위해 밴드를 불렀다. 이 술자리는 19일 새벽 1시께 끝났다.
같은 시각, 6호실에는 이종필 전 부사장이 있었다. 6호실 술자리는 1호실 술자리보다 1시간 빠른 밤 8시30분 시작됐다. 김 전 회장과 이 전 부사장은 이 방에서 라임자산운용 수사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이 전 부사장은 1호실과 6호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술을 마셨다.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연합뉴스
■ ‘김영란법’ 공소 사실 안에서도 ‘술값 쪼개기’
만약 이 사건이 뇌물죄로 기소됐다면, 술자리에서 몇 명이 참석했는지, 누가 몇시에 자리를 떴는지를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뇌물죄는 금액과 상관없이, 직무와 관련해 뇌물을 받으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한다. 뇌물액은 3천만원 이상인 경우 적용되는 가중처벌에 해당하는지를 따질 때만 살펴보게 된다.
하지만 이 사건은 검찰이 김영란법을 적용해 1인당 접대금액이 100만원이 넘는지가 최대 쟁점이 됐다. 김영란법은 직무관련성이 없는 경우 1회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규정하고 있다.
검찰은 김영란법상 접대금액을 따지기 위해 시간과 인원을 나눈 ‘술값 쪼개기’를 활용했다. 검사 3명을 접대하기 위해 치러진 1호실 청구액 536만원을 ‘술값’과 ‘여성 접객원 비용’, ‘밴드 비용’ 등으로 잘게 쪼갰다. 검사 2명이 돌아간 시점 이후 추가된 ‘여성 접객원 추가 비용’(20만원)과 ‘밴드 비용’ 등을 별도로 책정할 기준을 마련한 것이다.
이에 따라 1호실 참석자 가운데 김봉현 전 회장, 이 변호사, 검사 3명이 술값 240만원과 웨이터 관련 비용 121만원, 여성 접객원 기본비용 120만원을 똑같이 향유했다고 판단했다. 결국 밤 10시50분까지 이들 참석자 5명의 향응가액은 1인당 96만2천원이었다. 10시50분 귀가한 검사 2명은 100만원에 미달해 기소하지 않은 것이다. 검사들을 접대하려 한 김 전 회장과 이 변호사도 접대받은 이들과 똑같은 ‘엔(n)분의1’ 계산에 포함시킨 결과였다.
두 검사가 떠난 뒤 10시50분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만 산정된 추가 비용은 ‘여성 접객원 추가 비용’ 20만원과 ‘밴드 비용’ 35만원이다. 이를 3명으로 나눈 18만3333원을 앞서 계산한 96만2천원에 더하자, 김 전 회장과 이 변호사, 나 검사의 향응액이 114만5333원이 됐다. 100만원을 초과해 이들 3명은 기소됐다.
■ 1호실 6·7번 참석자는 누구?
판결문에는 검찰이 1번방 참석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2명이 추가로 등장한다. 이종필 부사장과 김아무개 전 청와대 행정관이다. 김 전 행정관은 이 사건과 관련해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문제가 된 접대 당일 논현동 유흥업소에 가서 술을 마신 것이 맞다”면서도 “1호실에 간 적이 없고 1호실에 있던 검사들과 만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밤 ㄱ씨가 유흥업소 몇번 방에서 술을 마셨는지 입증할 명확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법원은 그를 1호실 술자리의 6번째 참석자로 판단했다.
김 전 회장의 고교 동창인 김 전 행정관은 이미 골프·술자리 등 접대를 받은 뒤 금융감독원의 ‘라임자산운용에 대한 검사계획 보고서’를 보여준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형편이었다. 재판부는 “이런 상황에서 김 전 행정관이 1호실에서 함께 술접대를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추가로 처벌을 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사실대로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ㄱ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상당한 개연성”만으로 ㄱ씨를 1호실 6번 참석자로 만든 뒤, 재판부는 검찰이 5명으로 나눴던 10시50분까지의 술값 481만원을 6명으로 더 잘게 쪼갰다. 1인당 96만2천원이었던 접대 금액은 80만1667원으로 더 줄었다. 10시50분 이후 추가된 술값 55만원도 3명이 아닌 4명으로 나눠 추가요금은 1인당 18만3333원이 아닌 13만7500원이 됐다.
재판부가 7번 참석자로 본 사람은 6호실에서 술을 마시다 1호실에 오가며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는 이종필 전 부사장이다. 이 전 부사장이 1호실에 머물렀던 30여분까지 반영하면 1인당 향응액이 93만9167원보다 더 낮아질 것이라는 게 1심 재판부의 계산이었다. 이런 계산을 토대로 법원은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 ‘술값 쪼개기’ 판례로 굳어질라
검찰과 법원의 술값 쪼개기는 정당한 것일까? 이를 판단하려면 기준이 될 만한 판례가 있어야 하지만, 막상 김영란법 위반 사건을 심리해본 판사 자체가 많지 않다. 익명을 전제로 취재에 응한 한 고위 법관은 “대법원 판례가 여러 건 축적돼야 판단 기준이 명확해질 텐데, 아직 참고할 판례가 없다”며 “2016년 김영란법이 시행된 뒤 지금까지 이 법이 적용된 사건을 다뤄본 적이 없다. 이 법으로 정식 기소된 사건 자체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자의적으로 접대금액을 계산하는 술값 쪼개기 계산법이 판례로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대법원이 명확한 판단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피고인들은 법원이 접대 금액 100만원 초과 여부를 엄격히 따져주기를 바라겠지만, 법원이 피고인의 이익만을 고려해 판단한다면 청탁금지법의 입법 취지가 몰각될 우려가 있다”며 “서로 충돌하는 양쪽의 가치를 고려해 대법원이 명확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애초 김영란법이 아닌 형법상 뇌물죄가 적용됐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김 전 회장 쪽이 부패·금융범죄를 주로 수사했던 부패범죄특별수사단 출신 검사들을 콕 짚어 접대했지만, 검찰은 술접대 시점에는 ‘라임 수사팀’이 꾸려지지 않아 직무관련성이 없다며 뇌물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뇌물죄의 구성 요건인 ‘직무 관련성’에 대해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과거에 담당했거나 장래에 담당할 직무를 모두 포함하고, 현실적으로 담당하지 않아고 법령상 직무권한에 속하는 직무 등 일체의 직무를 포함한다고 본다. 실제 술접대 당시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으로 근무했던 나 검사는, 불과 한달여 뒤 서울남부지검으로 자리를 옮겨 ‘라임 수사팀’에 포함된 바 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검찰은 ‘제 식구 봐주기’ 관행을 되풀이 했고, 이것이 무죄 선고로 이어졌다”이라며 “검찰은 항소심 과정에서 공소사실을 재검토하고 공소장을 변경해서라도 뇌물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