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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레모네이드 만들며 웃고 고통에 지지 않을 거예요” [생존자의 기록]

등록 2022-11-08 09:17수정 2022-11-08 13:12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기록⑧
지난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추모 공간. 연합뉴스
지난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추모 공간. 연합뉴스

*편집자: <한겨레>는 6일 이태원 참사 생존자인 ㄱ(32)씨가 당시 겪었던 상황과 이후 심리 상담 과정 등에 대해 들었다. ㄱ씨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연재한 상담기록과 일지 등을 당사자 동의를 받아 차례로 옮겨 싣는다. 사고 당일인 29일 밤 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 인파에 휩쓸렸지만, 행인이 난간으로 끌어올려 가까스로 구출된 ㄱ씨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고위험 환자로 판정 받았다.

7일 이태원 참사 현장 주변 경찰 통제선 밑에 추모꽃이 놓여 있다. 국가애도기간은 지난 5일 종료했다. 2022.11.7 연합뉴스
7일 이태원 참사 현장 주변 경찰 통제선 밑에 추모꽃이 놓여 있다. 국가애도기간은 지난 5일 종료했다. 2022.11.7 연합뉴스

선생님 안녕하세요
우리는 내일 만나는 날이지만, 그냥 오늘도 선생님께 편지를 써요.

진실이에게서 연락이 닿았어요,
‘우리 00이, 나는 정말 이제 괜찮아졌어’

카카오톡 메시지로 왔거든요,
또 한번 핸드폰을 잡고 방방 뛰었어요. 반가워서,
제가 그리워한 녹색 어머니회 친구들도 모두 전원 무사히 집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sns로 연락이 닿았어요. 그때도 반가워서 방방 뛰었습니다.
광산에서 무사히 구조된 분들의 소식을 들었을 때도
반가워서 방방 뛰었구요. 반가움을 넘어서 위로와 위안, 희망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생존 자체가 내 삶의 희망이라니요.

‘나 잘 지내고 있어요’라는 연락이 이렇게 소중한 거구나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습니다’ 인사가 이렇게 중요한거구나,
그래서 옛날 옛적 어른들이 들어오고 나갈 때 인사 하라고 그렇게 가르쳤구나 싶어요.

진실이와 저는 사실 같이 일을 하고 있거든요,
일 관련해서 어떤 계정의 비밀번호를 같이 공유하고 있는데,
진실이가 슬슬 일상으로의 복귀를 시동거는지 비밀번호가 기억이 안난다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쇼미더머니2022’라고 알려주었거든요,

그랬더니 진실이가 ‘비밀번호가 쇼미더머니야? 너 되게 귀엽다’라길래,
‘뭐라는거야 네가 올해 우리 돈 많이 벌어보자며 직접 설정한 비밀번호잖아’했어요

정말 짧은 순간, 둘다 빵 터졌고
우리는 그렇게 일상으로 복귀했습니다.
진실이는 참사 이후 처음 웃어본다고 했고,
나는 그렇게 웃는 진실이를 보며 기뻤습니다.

그 이후 진실이는 비밀번호를 또 까먹어서 쇼미더머니2023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때도 우리는 한바탕 웃었어요. ‘우리 진짜 내년에는 돈 많이 벌어보는거다!!”하면서요

웃음이 진짜 중요한거더라구요,
웃음은,, 정말 중요해요. 무언의 메시지였지만, 우리는 다시 같이 잘 살아보자 라고
마음을 주고 받은 것 같아요.

선생님, 진실이는 레몬 같은 친구예요.
레몬처럼 상큼하고 톡톡튀는 아이라서 주변 친구들이 레몬으로 불러주고,
레몬 인형이나 장난감, 소품 등등을 볼때면
진실이에게 가져다 줄 정도로 우리는 진실이를 레몬이라고 부르곤 했어요.

진실이가 저에게 같이 일 해보자고 이야기를 했을 때,
진실은 저에게 가장 좋아하는 영문 속담을 공유해주었어요.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s.
삶이 당신에게 레몬(시련)을 준다면, 그걸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문장인데, 이런 마음으로 회사를 만들어보고 싶어-라고요,
너도 이렇게 밝고 나랑 비슷한 친구니까 우리 이 문장으로 앞으로 나아가면

우리는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을거야”

우리는 그렇게 회사를 만들었고, 큰 시련이 올때마다 그 시련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며
이겨 냈어요.

정말로 우리끼리 레몬을 사서 직접 즙을 짜내며,
시련 네가 아무리 와바라 내가 너한테 지나, 다 짜내고 갈아서 달달하게 마셔버릴거야 했어요
이때 저는 우리끼리만 만들어먹는 레몬음료수와
레몬칵테일 제조 레시피를 개발하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여전히 진실이와는 그날의 일을 서로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터놓고, 그날의 일을 이야기 할 날이 오겠지요.
제가 아는 진실은,
늘 시간을 두고 기다려주면 언제나 옳은 방향으로,
건강하게 자기 자리를 잘 찾아오는 아이였어요. 이번에도 그럴거라 굳게 확신하고 있어요.

우리 같이, 레모네이드 만들며 웃고 깔깔 거리며 삶에 지지 않았던 것처럼요.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고통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허락하지 않을거예요.

지난 주말은 친한 친구가 이틀 내내 함께 해주었습니다.
선생님이 숙제로 내주신대로, 무한도전을 보며 배가 아플 정도로 깔깔 웃었어요.
무한도전에서 박명수씨가,
“야 경호야(매니저), 커피 좀 사와라, 니꺼 빼고”

이러는데, 진짜 어이없게 웃음 팍 터지더니 그 다음부터는
거의 배를 잡고 울면서 봤어요.
웃음은 전염되나봐요 제가 웃으니까 친구도 같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어요.
같이 웃어준 친구에게도, 나를 웃겨준 개그맨에게도 고마웠습니다.

더 오래도록 웃고 싶었어요.
그런데 많은 예능이, 많은 유튜브 프로그램이 결방을 했더라고요,
그래서 더 볼 게 없었습니다.

웃음을 책임지는 개그맨들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어요.
레몬네이드 칵테일 마시며 개그맨들 프로그램 보면서
삶의 고통을 등뒤로 보내고 싶었는데 말이에요.

선생님, 어쩌면 위대한 위인은 개그맨들인지도 몰라요.
다음번엔 유재석씨가 조세호씨 놀리는 레전드 짤만 모아놓은걸 봐야겠어요.

아참, 진실이와 제가 힘들때마다 만들어 먹던 레모네이드와 레몬네이드 칵테일 제조법을 공유해요. 선생님도, 절대 삶의 고통에 지고 싶지 않을 때, 만들어먹어보세요.
어쩌면 웃음이 날지도 몰라요.

<레모네이드 레시피>
1.레몬 2-3개를 껍질을 벗겨 믹서기에 갈거나, 스퀴즈(즙을 짜내준다)한다.
2.레몬 간 것 또는 레몬 원액에 칠성사이다 양 껏 타기(제로 사이다 안됨)

<레모네이드 칵테일 만들기>
1.레몬 4-5개를 껍질을 벗겨 믹서기에 갈거나, 스퀴즈(즙을 짜내준다).
2.레몬 간 것 또는 레몬 원액에 참이슬 소주 3/2 섞기(여타 다른 소주 안됨)
3.달달한 맛을 원하는 친구들은 토닉워터 한 병을 섞고, 단 술을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은 레몬향 탄산수 한 병을 섞기
4.맛있게 먹기.

<유의할 점>
레몬을 직접 짜는 것이 고통 해소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되니,
되도록 직접 소리지르며 스퀴즈 할 것.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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