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질서유지선 설치된 대통령 집무실 일대. 연합뉴스
법원이 용산 대통령 집무실 100m 이내는 집회 금지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면서 그간 경찰의 집회 금지통고에 맞서온 참여연대와 시민사회단체는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을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한 지난해 5월 이후 경찰이 줄곧 ‘집무실=관저’로 해석해 집회를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하면서, 집회를 막기 위한 소송 비용에 막대한 국민 세금만 들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12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박정대)는 참여연대가 서울 용산경찰서를 상대로 낸 옥외집회금지 통고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지금까지 경찰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11조3호가 정한 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장소인 ‘관저’에 용산 대통령실이 포함된다며 인근 집회신고를 금지하는 처분을 내려왔으나, 재판부는 이날 ‘대통령 집무실’은 ‘관저’에 포함될 수 없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이날 판결이 나온 뒤 참여연대는 “이번 판결은 윤석열 대통령이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한 후 집시법 11조를 자의적으로 확대 해석해 그동안 수차례 집회금지를 통고한 경찰 처분의 위법성을 확인한 당연한 판결”이라며 “집회 신고제의 취지를 왜곡해 허가제로 운영한 경찰은 통렬한 반성과 함께 위법·위헌적인 집회금지 방침을 전면 철회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선휴 변호사(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는 “이미 가처분 성격의 집행정지 신청 단계에서도 관저에 대통령실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법원 판단이 연달아 있었는데, 경찰이 본안 판단을 받겠다는 강한 입장을 밝히면서 해결이 지연된 측면이 있다는 점은 아쉽다”고 했다.
승소 가능성이 희박했던 소송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한 경찰에 대한 성토도 이어졌다. 정권의 ‘심기 경호’를 위해 패소를 예상하면서도 소송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지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선임간사는 “경찰은 거듭되는 법원의 입장을 확인하면서도 대형 로펌을 선임해 끝까지 재판을 끌어왔다”며 “자의적 확대 해석을 통해 기본권을 제한하는 행위를 반성 없이 계속 이어가면서 무리하게 국민의 세금으로 소송을 진행한 경찰의 행위는 비판받아야 마땅하다”고 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금까지 최소 8차례 이상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한 바 있다. <한겨레>는 경찰이 집무실 앞 집회 금지통고에 불복한 4개 단체가 낸 행정소송 및 집행정지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모두
7700만원을 변호사 선임료와 성공보수로 집행·책정했다고 지난해 6월 보도한 바 있다.
이번 판결로 사법부가 대통령실 앞 집회의 자유 보장에 대한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다른 조항이 ‘꼼수’로 활용될 우려도 나온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의 박한희 변호사는 “앞으로 경찰이 집시법 11조를 근거로 집회·시위를 막을 순 없겠지만, 대통령실 앞 도로를 ‘주요 도로’로 지정해 집시법 12조에 따른 ‘교통 소통을 위한 제한’을 명분으로 들고나올 가능성이 있다”며 “국회에서 대통령 집무실과 전임 대통령 사저를 함께 집회금지 장소로 추가하는 법을 통과하려고 시도하는 것도 지켜봐야 할 과제”라고 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