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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베트남 민간인 학살’ 증언만 19명…판결 외면하는 군·정부 [뉴스AS]

등록 2023-02-20 16:28수정 2023-02-21 02:44

2001년 베트남을 찾은 고경태 당시 <한겨레21> 기자와 처음 만난 41살의 응우옌티탄. 응우옌티탄은 “집 땅굴 위에서 수류탄을 들고 나를 노려보던 그날 그 남자 때문에, 한국 남자만 봐도 심장이 뛰었다”고 증언했다. 고경태 선임기자
2001년 베트남을 찾은 고경태 당시 <한겨레21> 기자와 처음 만난 41살의 응우옌티탄. 응우옌티탄은 “집 땅굴 위에서 수류탄을 들고 나를 노려보던 그날 그 남자 때문에, 한국 남자만 봐도 심장이 뛰었다”고 증언했다. 고경태 선임기자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에 대해 ‘가해국 한국’이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사건 발생 55년만에 나왔지만, 한국 정부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책임을 인정한 판결문을 보면 20명 가까운 사건 관계인들이 그날의 진실을 증언하고 있었다.

20일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문을 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는 19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사실로 인정하고 있었다. 재판부는 “대한민국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 제1대대 제1중대 소속 군인들은 1968년 2월12일 퐁니·퐁녓마을 일대를 수색하면서 주민들에게 총격을 가하고 집을 불태웠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55년 전 발생한 참극의 사실관계를 확정한 것은 당시 상황을 여러 각도로 목격한 증인들이 용기를 낸 덕이었다. 참극에서 살아남은 5명의 베트남 국민과 미국과 당시 남베트남 소속 군인 8명, 그리고 무엇보다 학살 현장 가까이 있었던 한국군 청룡부대 제1중대원 5명 등 19명이 각자 경험한 바를 서면 혹은 법정 증언을 통해 진술했다.

먼저 이 소송 원고였던 응우옌티탄(63)은 “청룡부대 군인들이 퐁니마을에서 당시 8살이었던 자신에게 총격을 가해 복부에 심각한 상해를 입히고 가족 5명을 죽였다”고 주장했다. 당시 사건을 겪은 그의 오빠 응우옌득상(당시 15살)과 마을 주민 등 생존자 4명은 “가까운 거리에서 가해자를 직접 봤다. 가해자가 한국군임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무엇보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당시 한국군 5명도 “1중대 소속 일부가 당시 마을 주민들을 사살했다”고 입을 모았는데, 법정에 직접 출석했던 당시 소대원 류진성씨는 “다른 소대원들로부터 중대장 명령에 따라 마을 주민들을 공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판결 이후로도 이런 진실을 애써 눈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지난 17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 회의에 나와 “우리 장병들에 의한 학살은 전혀 없었다. 판결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군 장성 출신인 한기호 국회 국방위원장도 “국방부의 즉시 항고를 촉구한다”며 화답했다.

군과 여당의 이 같은 태도는 재판에서 나타난 정부 입장을 되풀이하는 수준이다. 정부는 재판에서 줄곧 퐁니마을 학살 사건이 ‘국군 복장을 한 베트콩의 소행’ 혹은 ‘적과의 교전 중에 발생한 전투행위나 사고’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런 정부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응우옌티탄을 지원한 시민단체들은 입장문을 내어 “이종섭 장관의 발언은 법원 판결과 명백히 배치될 뿐만 아니라 진실을 왜곡하는 발언”이라면서 “55년 동안 고통을 겪어온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저지르는 행위”라고 규탄했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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