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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62시간 일한 뒤 사망…“이불 챙겨 나가던 모습이 마지막”

등록 2023-03-13 05:00수정 2023-03-16 21:10

49살 경비직, 나흘 연속 일하고 급성심근경색
유족 “생전 일손 부족 토로”…사쪽 ‘병사’ 주장
나흘에 걸쳐 62시간 근무하다 숨진 경비노동자의 유가족이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속 당직근무일이 표시된 숨진 노동자의 근무표.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나흘에 걸쳐 62시간 근무하다 숨진 경비노동자의 유가족이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속 당직근무일이 표시된 숨진 노동자의 근무표.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서울 한복판 고층 빌딩에서 나흘 동안 퇴근하지 못하고 62시간 연속으로 일한 경비노동자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족들은 장시간 노동에 따른 과로사라며 ‘산업재해’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계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현장 노동자 실태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며, 윤석열 정부의 집중근로를 가능하게 하는 근로시간 개편안 추진에 우려를 나타냈다.

12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8일 아침 7시10분께 서울 종로구 콘코디언빌딩(옛 금호아시아나그룹 본관) 지하 사무실에서 빌딩 관리업체 소속 보안팀장인 이민우(49)씨가 쓰러진 채로 발견됐다.

이날 새벽 6시34분 “아침 출근 때 소화제 있으신 분 가져다달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고 온 보안대원 ㄱ씨가 그를 발견했다. ㄱ씨는 119 구급차를 불러 빌딩에서 600m 떨어진 강북삼성병원으로 이씨를 옮겼지만, 두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8시9분 그는 숨을 거뒀다.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으로 밝혀졌다.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사건 현장에서 타살 흔적은 없었다”고 했다.

유가족은 지병이 없던 고인이 ‘급작스러운 과로’로 숨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족이 제공한 근무표를 보면, 이씨는 지난 5일 오후 4시부터 야간근무를 시작해 9일 새벽 4시까지 닷새에 걸쳐 24시간 당직 근무를 서야 했고, 휴일 없이 10일도 출근하도록 돼 있다. 6~8일에 적힌 ‘당’은 24시간 일하는 당직을 뜻한다. 결국 이씨는 출근 나흘 동안 약 62시간(8시간+24시간+24시간+6시간)을 일한 뒤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지난해부터 이 업체에서 일한 이씨는 팀장이었기 때문에 하루 8시간 주 5일 일하는 스케줄이었다. 그러나 보안대원들의 퇴사로 결원이 생기자 이를 메우려고 무리하게 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지난 9일 이 빌딩에서 만난 보안 직원도 “팀원 2~3명가량이 부족해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팀장님이 근무했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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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에 걸쳐 62시간 근무하다 숨진 경비노동자의 유가족이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속 당직근무일이 표시된 숨진 노동자의 근무표.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아내 양애리(50)씨와 딸 이아무개(15)양은 “(고인이) 2월 초중반부터 회사에 사람이 부족해 고민이라고 했다”며 “3월부터는 ‘집에 들어오더라도 잠만 잘 거니까 깨우지 말라’, ‘사람이 구해질 때까지는 회사에 있어야 할 것 같다’고 했었다”고 말했다.

이양은 “이불을 들고 나가며 ‘9일 새벽 4시30분에 들어올 테니까 문을 잠그지 말라’고 한 게 아빠의 마지막 말이었다”며 “지난해 11월 아빠가 사무실에 소파가 생겼다고 좋아했는데, 그곳에서 자면서 근무했던 것 같다”고 했다.

관리업체는 이씨의 죽음이 과로사가 아닌 ‘병사’로 추정하며, 이에 기반한 위로금을 제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양씨는 “회사 쪽은 남편이 ‘자발적으로 근무’한 것이라고 하지만, 인원이 부족한데 팀장으로서 어떻게 외면할 수 있었겠느냐”고 했다. 그는 “제가 병으로 일하지 못하자 생계를 위해 (남편이) 그렇게 일을 한 것 같다”며 울먹였다. 회사 쪽 관리소장은 이날 <한겨레>에 “말씀드릴 것이 없다”고 했다.

이번 사건을 두고 경비·보안 업계에 만연한 장시간 노동, 야간 노동의 현실을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 노동계에서 나온다. 정부는 최근 발표한 ‘근로시간 개편방안’에서 감시·단속적 노동자가 “건강권 보호의 사각지대에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사각지대를 축소하는 방안은 ‘연구 과제’로 남겨둬 미흡한 대책이라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이씨 같은 감시·단속적 노동자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근로시간제도 개편방안은 한 주 64시간만 넘지 않으면 퇴근과 출근 사이 연속 11시간 휴식을 주지 않아도 된다. 일반 노동자도 나흘 연속으로 62시간 일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임상혁 녹색병원장(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은 “나흘간 연속 근무했다면 젊고 지병이 없는 사람도 급작스러운 심정지가 올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과로사”라며 “정부 추진안에 따라 근로시간이 연장된다면, 일반 노동자도 과로사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고 곧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3월16일 오후 9시10분 수정.

<한겨레>와 만난 숨진 경비노동자의 배우자는 “산재 인정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회사가 합의금 1억원을 제시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당시 다른 유족과 건물 관리업체 쪽 통화 녹취록을 살펴보니, 업체는 산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붙여 합의금을 협의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 확인됐습니다. 유족과 업체 사이 소통에 혼란이 있었다고 판단돼 이를 바로잡습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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