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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핏줄이 그렇게 쉽게 안 끊어져”…법 비웃는 ‘가족 간 스토킹’

등록 2023-03-16 07:00수정 2023-03-16 21:27

<더 글로리>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더 글로리>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핏줄이 그렇게 쉽게 안 끊어져. 동사무소 가서 서류 한장 떼면 너 어디 있는지 다 나와. 어디 또 숨어봐. 내가 찾나, 못 찾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딸인 문동은(송혜교)을 기어코 찾아낸 엄마 정미희(박지아)가 동은에게 한 말이다. 미희는 어린 동은을 방치하고 학대한 가정폭력 가해자다. 18년 동안 미희와 연락을 끊은 채 살던 동은은 미희의 등장으로 또다시 끔찍한 현실을 마주한다.

동은처럼 가족·친족으로부터 스토킹 피해를 입는 일은 현실에서도 빈번하다. 2021년 20대 여성 ㄱ씨는 생모인 ㄴ씨의 반복되는 폭언 때문에 거주지를 옮기고 연락처를 바꿨다. 그러나 이사한 지 한달여 만에 ㄴ씨는 ㄱ씨를 찾아냈다. ㄱ씨의 이모를 통해서였다. ㄴ씨는 ㄱ씨가 사는 오피스텔을 두 차례 찾아가 각각 1시간7분, 38분 동안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문을 두드리는 등 난동을 부렸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 8일 발표한 ‘2022 전국 상담 통계’에서도 스토킹 가해자는 과거 또는 현재 연인, 데이트 상대자(35.1%)에 이어 전·현 배우자(14.4%)와 친족(11.7%) 등의 순이었다.

스토킹 범죄 피해에서 ‘가족 관계’는 도망치기 어려운 덫으로 작용한다. 가해자는 ‘친족’이라는 관계를 이용해 실종 신고를 해 피해자를 찾아내거나, 피해자 명의의 도장을 이용해 피해자 주거지에 무단으로 전입신고를 하기도 한다. 피해자 주변인을 괴롭혀 정보를 얻어내는 일도 빈번하다. 2018년 서울 강서구에서 벌어진 전남편에 의한 스토킹 살해 사건처럼, 가정폭력 피해는 가족 내 스토킹 피해로 이어지기 쉽다.

하지만 수사기관은 가족 간 스토킹 범죄 수사에 소극적이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스토킹은 구애 과정, 연인 간 결별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란 인식 탓에 수사기관조차 가족 관계에서 발생하는 스토킹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낮다”고 말했다. 가족 내 스토킹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선 가정폭력처벌법에 스토킹 범죄를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허 조사관은 “가정폭력처벌법에 가족 간 스토킹 범죄를 규정해놓으면, 수사기관도 적극적으로 수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토킹처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최나눔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정책팀장은 “스토킹 행위를 협소하게 규정한 탓에 초기 대응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스토킹을 포괄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스토킹처벌법은 접근하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우편·전화·팩스 등을 이용해 물건·글·말·그림 등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 등 처벌 가능한 스토킹 유형을 5가지로만 한정하고 있다.

한편, <더 글로리> 속 동은과 달리 가정폭력 피해자는 가족에게 거주지가 노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주민등록표 등·초본 교부 제한을 신청하면 된다. 다만, 이때 피해자는 가정폭력·성폭력 상담 사실 확인서 등을 증거서류로 제출해야 한다. 지난해 8월 ‘주민등록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병원 진단서·경찰관서 발급 서류 등은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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