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악성 임대인 정보를 모아놓은 ‘나쁜 집주인’ 누리집. 누리집 갈무리
전세 사기 피해가 전국에 속출하는 가운데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임대인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누리집이 등장했다. 일부 피해자들은 신상공개를 통해 추가 피해 방지와 엄벌 등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민감한 개인정보를 임의로 공개해 ‘사적 제재’라는 우려도 있다.
24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전세금을 반환하지 못한 임대인의 신상정보를 모은 누리집 ‘나쁜 집주인’에는 이날 기준 7명의 임대인의 정보가 공개돼 있다. 해당 누리집에서 공개한 임대인의 개인정보는 이름과 사진, 생년월일과 주소다. 이 누리집에는 악성 임대인 신상정보뿐만 아니라 전세 사기 피해자 모임 온라인 커뮤니티와 전세 사기 관련 기사, 전세 사기 예방법 등의 게시물도 정리돼있다.
이 누리집은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급증하자 지난해 10월 한 개인이 악성 임대인 정보 공개를 통해 추가 피해 예방을 하겠다는 취지로 개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운영자는 양육비 지불 책임을 다하지 않은 부양자의 신상을 공개해 온 민간 누리집 ‘배드파더스’를 차용해 누리집을 개설했다고 한다.
일부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피해 회복과 악성 임대인 엄벌 차원에서라도 신상공개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이 누리집에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은 임대인을 제보한 김연신(54)씨는 이날 <한겨레>에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전세 대출금)상환하는 데 최소 10년 이상은 고생하는 반면, (전세 사기) 죄를 지은 사람들은 형이 얼마 되지도 않고 사기로 취한 금액으로 잘살게 된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제보하게 됐다”며 “배드파더스를 통해서도 상당 부분 양육비 미지급 해결이 된 거로 알고 있다. 명예훼손 등의 문제가 있는 것을 알지만 (피해 회복 및 예방 등을 위해) 각오하고 제보했다”고 말했다.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에서 전세 사기 피해를 본 김씨는 보증금 반환을 두고 임대인과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 전쟁기념관 앞에서 전세사기 대책 관련 윤석열 대통령에게 면담요청을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개인의 신상정보 등을 사적으로 공개하는 경우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2020년 1월 수원지법은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을 공개해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배드파더스 대표 구본창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이들의 신상정보 공개 행위가 공익성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이듬해 12월 2심 재판부는 원심을 뒤집고 구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신상공개 행위를 두고 공익보다 비방의 목적이 인정된다고 봤다. 다만, 양육비 미지급에 대한 법적 제도 마련 등에 기여한 점 등을 고려해 벌금 100만원의 선고 유예 판결을 내렸다. 선고 유예는 가벼운 범죄에 대해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특정 사고 없이 유예기간이 지나면 형의 선고를 면하는 것을 뜻한다. 구씨는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한 뒤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는 중이다.
제도적으로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 악성 임대인 신상을 공개하는 법안이 마련된 상태다. 국회는 지난 2월27일 악성 임대인의 신상을 공개하는 내용이 담긴 주택 도시기금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임대인이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아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대신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내준 경우 가운데, 총 2억원 이상의 보증금을 변제하지 않고 구상채무 발생일로부터 3년 이내에 2건 이상의 반환을 이행하지 않은 사람이 공개 대상이다. 공개되는 정보는 이름, 나이, 주소, 구상채무에 관한 사항 등이며, 오는 9월부터 시행된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