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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코앞에 다가온 시내버스 ‘먹튀’…당국은 여전히 현황 파악 중

등록 2023-06-22 08:06수정 2023-06-29 16:37

[준공영제 버스 삼킨 사모펀드]
버스 운영 시스템 대안은
버스노선권을 ‘재산권’ 인정
공공재로 이익얻는 관행 굳어
“뉴욕처럼 공영제 운영 필요”
서울 강북구에 있는 사모펀드 운용사 차파트너스 소유의 동아운수 차고지에 버스들이 나란히 주차해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서울 강북구에 있는 사모펀드 운용사 차파트너스 소유의 동아운수 차고지에 버스들이 나란히 주차해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영국 런던은 시 정부 산하 공기업인 런던광역교통본부(Transport for London)가 버스 준공영제를 운영한다. 런던은 애초 버스 공영제를 운영하다가 민영제로 전환했지만, 공공성 강화를 위해 준공영제를 다시 도입했다. 준공영제에 참여한 버스회사는 모두 6곳이다. 이 버스회사들은 런던광역교통본부가 소유한 버스 노선에 경쟁 입찰해 5년 계약을 맺는다. 평가 항목은 서비스 품질과 안전인데, 이 평가 성적에 따라 2년 단위 연장 계약이 가능하다. 입찰에 성공한 런던 버스회사 6곳은 사모펀드가 진입한 서울과 인천, 대전 등의 버스 준공영제와 달리 독일 국영 철도회사와 프랑스 파리 교통 공기업, 네덜란드 공영 대중교통 회사 등 공공성을 지닌 기업들의 자회사들로 채워져 있다.

미국 뉴욕은 한술 더 떠 뉴욕시 산하의 뉴욕광역교통본부(MTA)에 소속된 공기업이 버스 공영제를 운영한다. 뉴욕광역교통본부는 2000년대 중반 소규모 민간 버스회사와 이 회사들이 소유한 노선권을 사들여 점진적 공영화에 성공했다. 그러면서 표준화된 정비 절차 등을 수립해 차량 고장을 줄이는 성과를 거뒀다. <한겨레> 의뢰로 국외 주요 도시의 버스 시스템 실태를 조사한 국제운수노동조합연맹의 알라나 데이브 도시교통실장은 21일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처럼 준공영제하에서 버스 운영 회사가 노선을 소유하는 것은 선진국에서 유례가 없다”며 “가맹 노조들로부터 받은 정보에 의하면 사모펀드는 경영이나 서비스 품질을 개선하거나 노동자를 공정하게 대우하기보다는 투자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런던과 뉴욕의 이런 상황은 사모펀드가 버스 준공영제의 이점을 파고들어 지방자체단체의 재정 지원을 받으면서도 차고지 매각과 쥐어짜기 운영 등으로 얻은 이익을 시내버스에 재투자하지 않고 투자자(금융회사와 대기업)한테 배당하는 서울과 인천, 대전 등의 버스 체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서울시가 2004년 7월 버스회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구조로 도입한 수익금공동관리형 버스 준공영제의 대안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버스회사에 유리한 표준운송원가 시스템

수익금공동관리형 버스 준공영제는 버스 노선에서 나오는 운송수입금을 모두 합쳐서 버스회사들의 조합인 버스운송사업조합이 공동으로 관리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사전에 조합과 합의한 표준운송원가(버스 1대가 1일 동안 운행하는 데 드는 비용)에 따른 운영 비용과 이윤을 각 버스회사에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노선별 운송 수입 현황을 알 수 없어 노선별로 적자가 나는지 흑자가 나는지 알 수 없다. 지자체는 그저 모든 노선의 운송수입금을 합친 금액이 전체 버스의 표준운송원가 합계에 미치지 못하면, 재정으로 차액을 채워줄 뿐이다. 버스회사는 버스 보유 대수만큼 일정한 지원을 받기 때문에 노선별 적자나 흑자 운행 여부와 상관없이 타이어 비용와 부품 구입 및 수리비 등을 쥐어짜 더 많은 재정 지원금을 챙길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이는 서울시의 ‘여객자동차운수사업의 재정지원 및 한정면허 등에 관한 조례’와도 어긋난다. 조례는 표준운송원가에 따른 재정 지원 대상을 ‘수익성 없는 노선의 운행’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버스 1대당 무조건 표준운송원가로 지원하는 게 아니라 버스 노선별 수익을 따져 지원 여부를 결정하라는 취지다. 실제 서울시의 경우 교통카드 사용 내역만 분석해도 적자 노선과 흑자 노선을 구분할 수 있다.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수익금공동관리형 버스 준공영제가 업체별·버스별 정산이라는 상당히 예외적인 지원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며 “노선별 정산 방식 등으로 지원 체계의 변화를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과 인천, 대전 등에서 버스준공영제에 참여하고 있는 버스회사들이 사모펀드 운용회사에 무더기로 인수되고 있다. 사모펀드의 지배력이 점점 더 커질 경우 사모펀드 운용회사들이 앞으로 노선 감축과 회사 매각 등을 매개로 시민들의 발인 시내버스 요금 인상 등을 요구할 수 있고 버스 체계도 황폐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우리 모두의 교통 운동본부’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서울지부’ 활동가들이 지난달 19일 오전 서울 중구 시청역 1번 출구에서 ‘서울시 버스, 지하철 요금 인상 반대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서울과 인천, 대전 등에서 버스준공영제에 참여하고 있는 버스회사들이 사모펀드 운용회사에 무더기로 인수되고 있다. 사모펀드의 지배력이 점점 더 커질 경우 사모펀드 운용회사들이 앞으로 노선 감축과 회사 매각 등을 매개로 시민들의 발인 시내버스 요금 인상 등을 요구할 수 있고 버스 체계도 황폐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우리 모두의 교통 운동본부’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서울지부’ 활동가들이 지난달 19일 오전 서울 중구 시청역 1번 출구에서 ‘서울시 버스, 지하철 요금 인상 반대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노선 ‘특허권’ 사고파는 버스회사들

버스회사들의 노선권이 공공재가 아니라 회사의 사적 ‘재산권’으로 인정되고 있는 문제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은 시내버스 운송사업면허를 포함해 개인택시 면허, 화물차 운송사업면허가 양도·양수, 합병, 상속을 통해 이전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개인택시 면허 등 여객법상 운송사업면허를 재산권으로 인정하는 대법원 판례까지 나오면서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등 지자체는 시내버스 면허와 면허에 포함된 노선권까지 각 회사의 재산권으로 보고 있다. 여객법은 △빈번한 교통사고로 다수의 사상자가 생기거나 △국민 교통편의를 해치는 등 공익이 심각하게 침해된 상황에서만 예외적으로 면허를 취소하거나 정지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서울시는 과거 “버스업체들이 보유한 노선은 특허권으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런 환경에서 버스회사들이 회사를 매각하면서 버스 면허와 함께 노선권까지 묶어서 거래하는 관행이 생겼다. 사모펀드도 이런 점을 투자 유치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서울 시내버스 회사인 선진운수를 인수한 사모펀드 운용사인 그리니치프라이빗에쿼티는 투자 제안서에 “협약 종료 기간이 명시된 인프라 사업과 달리 준공영제 시내버스 사업은 법률상 특허에 해당하는 영구적인 재산권”이라며 “대법원은 민간의 버스 운송업 노선 면허를 특허의 일종인 재산권으로 인정해 지자체의 인위적인 노선 개편이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한 법무법인은 사모펀드에 투자금을 댄 비영리 법인 수협중앙회의 의뢰를 받아 ‘현실적으로 (버스회사가) 면허 취소로 운행을 중단하면 국민 생활에 중대한 불편이 초래되기에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면허 취소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자문 의견을 내기도 했다.

여객법이 버스회사의 면허를 재산권으로 인정하게 된 건 다른 공적 영역처럼 대중교통 서비스 역시 민간 자본에 의존해 서비스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민간 자본의 권리가 최대한 보장됐다. 여객법 변천 과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외국과 우리는 시내버스 발달 과정이 다르다”며 “정부 재정이 부족한 상황에서 대중교통 서비스를 시작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여객법이 제정된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버스 운영은 재정 지원 없이 존속할 수 없을 만큼 공공성이 커졌기 때문에 여객법이 보장하는 면허권을 재해석하거나 여객법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의 이석 변호사는 “면허는 민간 사업자에게 공공성을 수행하는 대가로 주어지는 독점적인 지위다. 그런데 준공영제 버스 체계에서는 버스회사가 사유재산으로서의 권리와, 공공성을 대가로 한 독점적 지위를 모두 누리게 된 만큼 법적으로 따져볼 여지가 있다”며 “시내버스 면허 보유 기간을 제한하거나 면허 보유자들의 재심사 기준을 새롭게 마련하는 등 면허제에 대한 원론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도 “버스회사를 사고팔면서 공공재적 성격이 강한 버스 노선까지 함께 팔아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현행 제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알라나 데이브 국제운수노동조합연맹 도시교통실장. 연맹 제공
알라나 데이브 국제운수노동조합연맹 도시교통실장. 연맹 제공

뉴욕같이 점진적 버스 공영화 필요

여객법 개정 논의와 동시에 노선별 수익 현황을 파악한 뒤 적자가 심각한 일부 노선부터 지자체가 노선권을 사들이고 뉴욕처럼 점진적으로 공영화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나온다. 지자체가 대중교통의 공공성을 위해 유지해야 하는 ‘필수 적자 노선’을 직접 운영해 개별 버스회사에 지급하는 재정 지원금을 줄이자는 것이다. 지자체가 시내버스 산업을 유지하는 데 드는 전체 비용은 줄어들지 않지만, 재정 지원금이 사모펀드를 통해 배당금으로 흘러나가는 현실은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런던처럼 노선입찰제를 통한 버스 준공영제를 시행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노선입찰제는 노선을 소유한 지자체가 경쟁 입찰을 통해 운영권을 일정 기간 민간업자에게 위임하는 방식이다. 수익금공동관리형과 달리 주도권이 지자체에 있어 런던처럼 서비스 품질과 안전 등 공적 성향의 평가 항목을 통해 버스를 제대로 운영하고자 하는 사업자들에게 운영권을 맡길 수 있다. 이미 경기도는 광역버스 노선에 한해 노선입찰제형 준공영제를 시행하고 있다. 코로나19 때 일부 버스회사가 적자가 커지면서 노선 운영을 포기하자 경기도가 이를 넘겨받아 자격을 갖춘 버스회사에 노선 운영권을 위임한 것이다. 김채만 경기연구원 모빌리티연구실장은 “이미 대부분의 버스가 재정 지원 없이는 적자여서 운영이 어렵다”며 “재정 지원 조건만 변경하면 버스회사가 노선권을 반납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영제로 넘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사모펀드 엑시트 코앞인데…대응 늦은 지자체

문제는 서울시와 인천시, 대전시 등 지자체와 국토교통부의 대응이 미온적이라는 점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5월 ‘시내버스 민간자본 진입 기준’을 마련해 요건을 갖춘 사모펀드만 버스회사를 인수할 수 있도록 했다. 시에서 정한 △기준치를 초과해 배당하거나 △사전 협의 없이 자산을 매각하거나 △5년 내 재매각할 시 서비스 평가 점수를 감점하겠다고 밝혔다. 인천시도 비슷한 대응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서비스 평가 점수 감점은 한 해 평가에 국한되는데다, 이 감점을 받아도 현행 시스템에선 여전히 기본 이윤을 보장받는다. 국토교통부 역시 지난 3월 시내버스 사모편드 현황을 파악하고자 한국교통연구원에 연구용역을 발주한 상태다. 하지만 연구용역 결과가 내년 3월에야 나온다. 사모펀드들은 내년 하반기부터 줄줄이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앞두고 있다.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국토부나 지자체 공무원의 잦은 인사도 사모펀드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차파트너스 자산운용과 그리니치프라이빗에쿼티 등 시내버스를 인수한 사모펀드 운용사는 통상 엑시트 시점을 인수 뒤 5년으로 잡는다. 이 기간 동안 지자체 버스 담당자가 여러 차례 바뀌면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당장 서울시 버스정책과 ㄱ팀장과 인천시 버스정책과 ㄴ팀장, 국토부 교통서비스정책과 ㄷ사무관이 올해 초 새로 부임해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사모펀드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설계하고 있는 데 견줘 정부 대응은 부실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김상철 정책위원장은 “현행 준공영제가 명확한 규정과 근거보다 관례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다보니 신임 공무원이 효과적으로 업체와 협의하는 건 힘들다”며 “그러니 경험의 연속성을 가진 버스업체의 압박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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