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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아쉬운 사람은 우리”…한국전쟁유족회, 김광동 망언에 전전긍긍

등록 2023-06-29 13:55수정 2023-06-29 16:07

[현장에서]
(사)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 정기 이사회가 28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공원로에 있는 유족회 사무실에서 열렸다. 한 유족회 지역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 정기 이사회가 28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공원로에 있는 유족회 사무실에서 열렸다. 한 유족회 지역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이렇게 가만히 있어서 쓰겠습니까?”

“우리가 아쉬운 사람들인데 그렇게 싸워서 되겠습니까?”

“아니죠. 사과를 받아내야 해요. 100만 유족을 무시한 망언을 했잖아요.”

“그렇게 해서 무슨 실익이 있겠어요.”

(사)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한국전쟁유족회, 회장 김복영)는 28일 오후 1시 서울 구로구 공원로에 있는 유족회 사무실에서 정기이사회를 열었다. 한국전쟁유족회는 한국전쟁피학살자유족회(회장 윤호상), 한국전쟁유족회특별법추진위원회(회장 김하종) 등과 함께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과 관련한 3대 유족회 중 하나다. 20명 넘는 전국 각지의 지역회장들이 참석해 좁은 사무실이 꽉 찼다. 이날의 가장 큰 의제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 김광동)에 대한 것이었다. 2시간 넘게 격정적 토론이 이어진 이사회를 지켜본 심정은 답답함이었다. 한국전쟁유족회 중앙 지도부는 현재의 상황을 심각히 여기지 않는 듯 했다.

■ “우리가 아쉬운 사람들인데”

이날 정기이사회엔 ‘진실화해위 진행상황 보고 건’이 안건으로 상정됐다. 김광동 위원장의 9일 영락교회 발언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였다. 이사회를 진행한 정명호 부회장(서산유족회장)은 “김복영 회장에게 ‘우리 유족회가 뭐하고 있냐’ 하는 질타가 많이 온다. ‘김광동 사퇴하라’는 팻말 들고 시위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아쉬운 사람들인데 저렇게 싸워서 무슨 실익이 있냐. 우리에게 무엇이 도움이 될 것인지를 심도있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9일 김 위원장은 “침략자에 맞서서 전쟁상태를 평화상태로 만들기 위해 군인과 경찰이 초래시킨 피해에 대해 (희생자) 1인당 1억3200만원의 보상을 해주고 있다. 이런 부정의는 대한민국에서 처음 봤다. 지구상에서 이런 나라가 있어 본 예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침략자에 의해 초래된 희생은 감추고, 침략을 막는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을 ‘국가범죄, 국가폭력’이라는 이름으로 교육하고 1억3200만원씩 보상해주고 있다”는 말도 했다. 김 위원장은 적대세력 희생자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현실과 비교하면서 나온 말이라고 했지만, 명백히 군경에 의한 희생자들을 비하하고 차별하고 죽음을 정당화하는 망언이었다.

(사)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 김복영 회장이 28일 오후 이사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 김복영 회장이 28일 오후 이사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명호 부회장이 김광동 위원장의 발언을 용인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김 위원장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다만 “피해자들마다 진실규명을 신청해 조사를 받고 애타게 결정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결정이 빨리 이뤄지도록 노력하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래야 진실규명 결정을 근거로 보상 소송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간인 학살 유족들은 대부분 70~80대의 고령으로 반세기 넘게 연좌제 등의 피해를 당하며 살았고, 남은 기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초조하다.

■ “왜 김광동 비위만 맞추려고 하냐”

그럼에도 유족회의 상당수 지역회장들은 유족회의 결기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다른 유족회와 공동대응을 하자고 했고, 명확한 요구를 정리해 여러 통로를 통해 전달하자고도 했다. “김광동 위원장 비위만 맞춰서 쓰겠냐”는 비판도 나왔다. “왜 눈치만 보고 있냐”는 질타도 나왔다. “전국 유족들 다 모이게 해서 점거시위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도 했다. 한 유족의 표현대로 “으쌰으쌰”가 필요하다는 거였다.

중앙회 지도부는 여기에 호응하지 않았다. 김복영 회장은 “유족들이 진실규명을 위해 애써야 하는데 조사관이 전화해도 제대로 받지 않거나, 진실화해위에 사건 신청을 해놓고 진실화해위가 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뭔가 핀트가 맞지 않는 말이었다. 이날 이사회는 중앙회 지도부와 지역 유족회장들간에 이렇게 계속 핀트가 맞지 않았다.

물론 시위만이 능사는 아니다. 한 지역회장은 “유족회 중앙회 지도부는 리더십을 발휘해 설득력있는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령 김 위원장에 대한 사과는 반드시 받아야 하는지, 최소한의 요구는 무엇이고, 최대한의 요구는 무엇이 돼야 하는지 등이 정리되지 못했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돼야 유족들이 염원하는 진실 규명 통지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음을, 유족회 중앙 지도부는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28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공원로 (사)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 정기 이사회에서 유족회 회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28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공원로 (사)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 정기 이사회에서 유족회 회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유족들은 지금 진실화해위의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 지역 유족회장은 김광동 위원장한테는 실망했지만 이옥남 상임위원한테는 기대할 여지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옥남 상임위원은 요즘 “희생자 중에서 부역자를 가리겠다”는 진실화해위 기본법에도 없는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 “위법적이며 월권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진실화해위 안팎에서 나온다. 그는 올해 상반기에 진실화해위가 주최한 전국 7개 지역의 유해발굴 관련 각종 행사(개토제, 유해발굴 언론공개, 봉안식)에 단 한번도 모습을 비춘 적이 없다. 한국전쟁을 총괄하는 상임위원이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유족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유족회장들은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듯 했다.

■ 7월5일 김광동 위원장과 간담회

진실화해위에서 한국전쟁 관련 사건 조사관들을 총괄하는 조사1국장엔 대공수사팀 3급 출신이 올 예정이다. 이제 조사관들은 어떤 수사관 마인드를 갖고 희생자 중에서 부역자를 가리게 될까? 여기에 대해 경각심을 갖는 유족회장들도 없었다. 게다가 진실화해위 기간 연장이 확정된 것으로 아는 유족도 있었다. 전체위원회에서 의결한 ‘기간 연장’이란 ‘위원들이 기간 연장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의결한 것이다. 김광동 위원장이 진심으로 기간연장에 관심이 있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지역 유족회장들 중 일부는 이날 이사회에서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에 계류돼 있는 특별법안이 통과되도록 유력 인사를 동원해 국회의원을 압박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그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지만, 지금 유족들을 수렁에 빠뜨리는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진실화해위로부터 말과 각종 제도적 장치를 통해 모욕과 함께 존재를 부정당하고 있고, 앞으로도 이 현실은 더욱 강화될지 모른다는 거다. 이럴 때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건 유족회 중앙 지도부다. 이날 이사회에서 중심이 잡힌 것 같지는 않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김광동 위원장은 민간인 학살 유족들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얼굴에 침을 맞고 화를 내는 건 이성적인가 비이성적인가. 다시 침을 뱉지 못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전쟁유족회 중앙 지도부는 침을 맞고도 별 일 없는 것 같다. 7월5일 한국전쟁유족회는 김광동 위원장과 간담회 일정이 잡혀 있다. “김광동 위원장을 만난 뒤 유족회 차원에서 어떻게 행동할 지 결정하자.” 이날 이사회의 결론이었다.

글·사진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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