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지난해 12월2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피해 상황을 호소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서구와 은평구 일대에서 벌어진 대규모 전세사기, 이른바 ‘강서구 빌라왕’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부동산컨설팅업체 대표에게 법원이 징역 8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전세사기와 관련해 잇달아 중형을 선고하는 등 엄벌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0단독 강민호 판사는 14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부동산컨설팅업체 대표 신아무개씨에 대해 “이 사건 피해자 대부분은 사회 경험이 없는 청년들로 (신씨는) 임대차보증금을 당연히 돌려줄 것이란 청년들의 심리적 기대를 악용해 범행을 저질렀다”며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신씨는 2019년 7월부터 2020년 9월까지 자신의 업체에 ‘바지 임대인’을 여러명 두고 ‘무자본 갭투자’로 다세대 주택을 사들인 뒤 임차인 37명에게 80억300만원 상당의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신씨는 서울 강서·양천구 일대에서 빌라와 오피스텔 240채를 매입한 뒤 세를 놓다가 2021년 7월 제주에서 숨진 정아무개씨 등 7명 빌라왕의 배후로 지목된 인물이기도 하다.
재판의 쟁점은 신씨가 임차인 즉 세입자를 속이려는 의도가 있었는지 였다. 법원은 사기가 성립하지 않으려면, 집주인이나 임대사업자는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까지 충분히 세입자에게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봤다. 계약 당사자가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거래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씨 쪽은 충분히 관련 사실을 고지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주택의 매매가격이 전세 보증금보다 낮다는 점 △무자본 갭투자를 했다는 점 △임대차 계약을 할 당시 리베이트 금액이 오고갔다는 점 등이 계약당사자에게 고지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신씨가 재판 과정에서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탓한데 대해 “주장 자체를 인정하기 어렵고, 정책에 일정한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상황을 이용해 피해자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것 역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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