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림역 인근 상가 골목에서 행인을 상대로 무차별 흉기를 휘두른 조아무개씨가 지난 23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법으로 향하는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림동 흉기 난동 사건으로 ‘묻지마 범죄’(이상동기 범죄)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하고 유사한 범죄가 반복될 때에만 반짝 관심을 가질 뿐 수사당국 차원에서 관련 통계·사례 분석조차 관리하지 않아, 제대로 된 대책 마련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묻지마 범죄’는 관련 통계조차 사실상 없다. 대검찰청이 2017년 국정감사 때 제출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270건’이라는 자료가 전부다. 이에 경찰청은 지난해 초 범행 동기가 명확하지 않거나 범행 대상에 필연적인 이유가 없는 등 불특정성이 두드러진 범죄 사건을 일컫는 ‘묻지마 범죄’를 ‘이상동기 범죄’라고 이름 붙이고, 관련 범죄 분석 및 통계 수집, 대응책 마련 등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특별히 진척된 사항은 없다. 경찰청 관계자는 “묻지마 범죄가 법률적·학술적 용어가 아니다 보니 정립된 개념도 현재로서 없어 고민”이라며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개별 사안에 대한 질적 분석도 충분치 않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가기관이 강남역 살인사건, 강서구 피시(PC)방 살인사건, 최근 과외앱 살인사건까지 비슷한 범죄 유형의 사람들에 대한 생애사적 분석을 통해 왜 이런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 진짜 원인은 무엇인지 알아야 그에 맞는 대책도 세울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은 공식적인 분석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수사기관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한다. 한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 구속 기간 프로파일러가 투입돼도 증거는 어딨는지, 직접적인 범행 동기는 뭔지 등 수사와 양형에 초점을 맞춘 조사가 진행될 수밖에 없다”며 “외부에 공개할 수준의 사례 분석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형사 업무를 오래 해온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관련 연구가 많은 미국조차 일종의 묻지마 범죄인 총기난사가 왜 근절되기 어렵겠느냐”며 “이상동기 범죄라는 이름처럼 세분화된 분석과 대책을 마련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으론 ‘묻지마 범죄’ 안에서도 범인의 정신질환이나 마약 투약 여부 등에 따라 접근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묻지마 범죄’ 자체로 뭉뚱그려 접근해선 안 된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기본적인 실태 파악이 이뤄지면 교정 단계에서 재소자에 대한 치료가 필요한 경우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성도 거론된다. 재범 위험성이 있다고 분류되는 경우에는 독일처럼 이들이 사회에 적응하는 것을 목적으로 개별적인 치료 및 교화, 일반적인 생활 처우 개선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웅혁 건국대 교수(경찰학)는 “교도소에서도 실질적인 치료와 교화에 맞춘 프로그램으로 시설 환경과 인력 보강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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