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이 제출한 식별 불가능한 영수증. 뉴스타파 제공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 : “지금 박주민 의원께서 지적을 하셨는데 업무추진비와 관련해서 백지 영수증이 있다. 취지로 질의를 했는데 그걸 이제 우리 장관한테 질의를 해야 될 걸 감사원장께 질의를 드리는 바람에 장관께서는 답변을 못 한 것 같은데, 백지 영수증이라는 게 뭡니까?”
한동훈 법무부 장관: “영수증 원본을 보관하다 보면 잉크가 휘발되지 않습니까? 6~7년 되고, 오래된 것이니까 잉크가 휘발된 것을 말씀하시는 거고요. 그것을 저희가 지금 상황에서 추정해서 가필해서 제출하면 더 문제 아니겠습니까. 저희가 보관하는 그대로 그 내용을 보여 드린 거라는 말씀드립니다.”
-7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지난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검찰이 공개한 대검찰청장과 서울중앙지검 업무추진비 지출증빙자료 중 ‘백지 영수증’ 논란이 일고 있는 것에 대한 질의응답이 있었습니다.
지난 6월29일 뉴스타파·세금도둑잡아라·함께하는시민행동·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는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서울 중앙지검장이던 시절 사용한 업무추진비 내역을 검찰에서 받아 공개했는데 음식점 이름이 삭제되고, 영수증들이 복사 상태가 나빠 대부분 식별이 불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전체 535건의 영수증 중 61%가 판독 불가능한 상태다. 나머지 39%가량도 겨우겨우 식별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해당 자료는 뉴스타파와 3개 단체가 3년5개월간 정보공개소송 끝에 지난 4월13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해서 받은 것입니다.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2017년 1월1일부터 2019년 9월30일까지 지출한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 각각의 증빙서류 1만6735장 사본을 6월23일 공개했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6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사위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시에도 검찰은 식별 불가능한 영수증 사본에 대해 한 장관의 국회 답변처럼 ‘오래전 영수증이라 원본 자체가 이미 잉크가 휘발돼 희미한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당시에도 원본 대조 요구가 나왔는데, 최근 한 장관의 입에서도 “잉크가 휘발됐다”는 발언이 나오자 “원본을 대조하면 되지 않나”라는 비판이 다시 나옵니다.
■ 구내식당만 잘 보이는 영수증?
“잉크가 휘발됐다”는 발언에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업무추진비 카드 전표가 흐린 것에 대해서는 원본대조를 시켜주면 될 텐데, 그걸 안 시켜주고 엉뚱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는 이날 뉴스타파에 기고한 글에서도 “3개 시민단체와 뉴스타파는 6월23일, 자료를 공개 받은 후에, 카드 전표가 흐릿하게 보이는 부분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에 원본 대조를 시켜달라고 요구했다. 원본도 진짜 안 보이는 것인지 대조를 시켜달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서울중앙지검은 거부했다. 만약 진짜 잉크가 휘발돼서 안 보이는 것이라면, 왜 원본 대조 요구까지 거부하나?”라고 했습니다.
앞서 하 대표는 6월29일 기자회견에서 “서울중앙지검 안에 구내식당 같은 데서 먹은 건 잘 보인다. 근데 이상하게, 이상하게도 다른 영수증들 상태를 보시면 이런 식으로 거의 판독이 불가능한 상황이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영수증도 선택적으로 잉크가 휘발되냐’, ‘원본 보면 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옵니다.
뉴스타파 언론인들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활동가 등이 6월 2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정 들머리로 대검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들고 이동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 법원은 공개하라 했는데…식당 이름 가린 검찰
한편, 법무부는 27일 방송인 김어준씨에 대해 “국민을 속이려는 의도의 김씨 거짓 주장에 대해 법무부는 필요한 법적 조치 등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김씨가 이날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한 발언을 문제 삼은 것입니다.
김씨는 한 장관의 국회 답변에 대해 “진짜 헛소리다”, “모든 영수증의 특정 부위가 날아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다른 글씨는 보이는데, 식당 이름만 안 보이고 일자는 보이는데 결제 시간이 안 보인다. 일부러 종이로 가리고 복사를 한 것이고, 국회에 나와서 일국의 장관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법무부는 이를 명백한 ‘허위사실’이라고 했습니다.
검찰이 원본 영수증의 상호와 결제 시각을 가리고 제공했다는 것은 앞서 법무부와 검찰이 설명한 내용입니다. 이에 법무부는
“상호와 결제 시각이 안 보이는 것은 법원 판결에 따라 가림 처리되어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진행자 김어준씨는 마치 법무부 장관이 상호와 결제시각에 대해 ‘오래되어 휘발되었다’고 말한 것처럼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거짓주장을 했다”고 했습니다.
서울중앙지검이 제출한 식별 불가능한 영수증. 뉴스타파 제공
법무부 말대로 영수증에서 상호와 결제 시각이 “휘발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런데 법무부가 ‘법원 판결에 따라 가림 처리’라고 한 것도 사실이라고 하기에 무리가 있습니다.
앞서 진행된 정보공개 소송에서 검찰이 ‘상호명이 공개되면 사업장의 영업 이익이 침해될 수 있다’며 비공개를 주장했지만, 1심과 2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이 인용한 서울고등법원 판결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소속 구성원들이 업무추진비가 지출된 해당 음식점을 이용한 사실이 공개된다고 해서 해당 음식점의 경영 영업상 비밀을 침해한다거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발생한다고 할 수 없고, 이를 공개하지 아니할 정당한 이익이 있다고 할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대법원은 업무추진비와 관련해 ‘행사 참석자 이름, 직책 등 개인정보’만 비공개 정보로 분류했습니다. 검찰이 대법원 판결 취지와 다르게 자료를 공개한 것입니다.
이에 하 대표는 페이스북에 “일국의 법무부 장관이나 법무부 검사들이 법원 판결문도 읽지 못하는 것인지, 의심된다. 법원 판결문에서는 업무추진비 지출증빙서류와 관련하여, 개인식별정보를 제외한 모든 정보에 대한 정보공개거부처분을 취소한다고 되어 있는데, 음식점 상호나 사용시간을 가리고 공개한 것이 법원 판결문에 따른 것이라고 우기고 있으니 말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