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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젓갈 항아리에 숨어 한국군 그림자 봤다”

등록 2023-09-12 07:00수정 2023-09-12 08:34

[베트남전 파병, 60년의 기억] ③ 학살 생존자 전 교수 후인응옥상의 증언
빈타인 출신 전 호찌민대 교수 후인응옥상. 한베평화재단 제공
빈타인 출신 전 호찌민대 교수 후인응옥상. 한베평화재단 제공

‘빈타인(빈탄) 학살’의 제보자인 후인응옥상(68) 전 호찌민시 국립대 지리학과 교수는 지난 2월 한국 사법부의 판결을 보고 “내 경험을 한국에 알리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다. 서울중앙지법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국가배상 소송 1심 판결에서 원고인 응우옌티탄(꽝남성 퐁니마을)의 손을 들어줬고, 이 사실이 베트남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빈타인 출신인 그의 마음이 흔들렸다.

후인응옥상은 꽝응아이성 빈선현 빈타인사 탐호이촌에서 태어났다. 1966년 8월 벌어진 한국군의 총격으로 어머니 응우옌티끼엠(당시 54살)을 잃었고, 당시 11살이던 그는 다리에 심각한 총상을 입었다. 청룡부대(해병 제2여단)가 푸옌성에서 꽝응아이성 등의 여러 지역으로 병력을 이동하며 진지를 구축하던 시점이었다. 그의 증언을 요약해 옮긴다.

“1966년 8월29일 새벽 5시, 해가 뜨기도 전에 총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어머니와 함께 나갔더니, 누군가 밖에서 총을 맞고 부상당한 상태였다. 어머니가 뭔가를 봤는지 목소리와 손짓이 긴박하게 돌아오라고 했는데, 그 순간 왼 다리에 총을 맞았다. 어머니도 쓰러졌는데, 곧 숨이 끊어졌다.

한국군에게 학살당한 어머니의 기일인 올해 8월29일에 가족들이 모였다. 앞줄 왼쪽 둘째가 후인응옥상. 한베평화재단 제공
한국군에게 학살당한 어머니의 기일인 올해 8월29일에 가족들이 모였다. 앞줄 왼쪽 둘째가 후인응옥상. 한베평화재단 제공

작은 방에 기어들어가 옷을 찢어 피가 나는 상처를 감쌌다. 군인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무서워 어머니가 담그던 느억맘(베트남 젓갈) 항아리 속으로 들어갔다. 그 속에서 지나가는 군인의 그림자를 봤다. 그들은 어머니를 확인한 뒤 뒷마당으로 나갔다. 이후 형수와 숙모가 집에 들어와 나를 항아리에서 꺼내줬는데, 또 총탄이 발사됐다. 다리가 골절돼 6개월간 목발을 짚고 다녔다. 2년간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사건 당일, 마을 사람들이 한국군에 어머니 주검 수습을 두차례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오히려 찾아간 일부 여성들의 눈을 가리고 벽을 보게 한 뒤 성폭행하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저녁엔 한국군이 마을을 떠났고, 어머니 주검을 수습해 집에서 2㎞ 떨어진 곳에 매장했다고 한다. 1966년 8월 한국군 청룡부대가 온 초기에는 초소를 만들고 진지를 구축해야 해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일주일이 지나 진지를 구축한 뒤에는 나무꾼부터 집에 있던 마을 주민들에게까지 총질을 했다.

본인이 경험하고 목격한 빈타인 학살 사건을 자세히 기록한 후인응옥상의 자서전 ‘인생에 꿀을 보태다’.
본인이 경험하고 목격한 빈타인 학살 사건을 자세히 기록한 후인응옥상의 자서전 ‘인생에 꿀을 보태다’.

한국의 국방부는 학살 피해 관련 자료가 없다고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꽝남성 하미 사건의 조사를 거부했다. 한국 정부는 민간인 학살에 대한 국가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며 항소한 것으로 안다.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한 일은 여러 자료와 피해자들의 무덤, 위령비 등에 다 적혀 있다.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여전히 살아 있다. 그들은 한국군의 죄악을 기억한다. 한국 정부에 바라는 것은 그저 진실이다. 진실을 밝혀야 한다면, 한 사람의 증언자로 그치지 않겠다. 베트남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울려퍼지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도움 한베평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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