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룡 차관 “위원장까지 만났지만 효과 없어”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가 문화관광부의 공식적인 반대조차 무시하고 바다이야기·황금성 등 사행성 높은 오락기들의 허용을 강행했던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또 영등위는 자동으로 게임이 반복되게 하는 이른바 ‘자동게임기능’이 불법인데도 ‘심의 편의’를 이유로 업체 쪽에 이 기능을 갖춰 심의를 받게 한 사실도 확인됐다.
유진룡 문화관광부 차관은 6일 “2002~03년 문화산업국장으로 있을 당시 ‘스크린경마’와 신종 릴게임에 대한 ‘불허 요청 공문’을 영등위에 보냈고 영등위원장 등을 직접 만나기도 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며 “당시 김수용 영등위원장으로부터 ‘독립민간기구인 영등위(업무)에 정부가 관여하지 말라’는 답변만 들었다”고 밝혔다. 유 차관은 또 “2004년 ‘바다이야기’ 등에 대해 문화부는 영등위 쪽에 ‘허가를 하지 말아라, 그리고 재심의를 하고 방지 대책을 세워 달라’고 요청했지만 역시 반영되지 않았다”며 “사행성이 높은 성인오락기의 위험성을 영등위에 세 차례 이상 경고했으나 무시당했다”고 말했다.
스크린경마, 바다이야기, 황금성 등은 현재 성인오락실 시장의 최대 점유율을 기록하며 사법 당국은 물론 업계 내부로부터도 사행성 도박 게임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바다이야기는 1년도 안된 사이 3개의 다른 버전이 연속 통과된 이후 모두 전국에 4만5천대가 유통됐다. 노웅래 열린우리당 의원은 “2003년 문광부가 심의 불허를 요청했던 릴게임들이 통과되는 관례가 생기면서 이후 바다이야기·황금성 등 수많은 게임들에 대해서도 문이 활짝 열렸다”고 설명했다.
또 영등위는 지난 6월23일 심의를 요청하는 오락기 제조업체들에 ‘심의 실사와 검토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므로 자동게임기능을 갖춰서 제출하라’고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동게임기능은 버튼 위에 물체를 올려놓기만 해도 자동으로 게임이 반복되는 기능으로, 게임제공업용 게임물 등급분류기준에서는 명백히 불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는 한 사람이 3~4대의 게임기를 동시에 취급할 수 있어 ‘시간 당 게임비를 9만원으로 제한’하는 법조항 자체를 무의미하게 해 성인오락기의 도박성을 키운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전국에 유통되는 성인오락기 100여만대 가운데 자동기능이 없는 것은 없다고 봐도 된다”며 “자동게임 기능 때문에 2003년 3800억원 수준이던 사행 시장이 올해 28조원대로 커졌고 여기엔 영등위도 크게 일조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영등위가 공지사항에 ‘심의 이후 수동조작만 가능하도록 게임물을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무의미한 얘기였다”고 말했다. 실제 자동게임 기능으로 도박성이 커지고 상품권 유통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그 사이 이 기능으로 단속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임인택 유신재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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