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 받지도 않고 합격판정 오락기로 둔갑
사무국 직원 개입…뒤늦게 알고 경찰 신고
사무국 직원 개입…뒤늦게 알고 경찰 신고
한 성인오락기 제조업체가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에 제출한 심의서류가 합격 판정을 받은 뒤 통째로 뒤바뀐 것으로 드러났다. 심의를 받지도 않은 오락기가 합격 판정을 받은 오락기로 둔갑한 것이다. 이는 심의위원뿐 아니라 영등위 사무국 직원들까지 성인오락기 심의를 둘러싼 비리에 깊숙이 개입된 증거로 보인다.
부산 지역의 성인오락기 제조업체 ㅇ사는 지난해 9월12일 ‘피에스001’이라는 오락기에 대한 심의신청서를 영등위에 제출했고, 이듬해 2월23일 ‘18세 이용 가’로 등급 분류를 받았다. 하지만 이 오락기를 심의한 예심위원이 애초 제출된 서류와 심의를 통과한 이후 보관 중인 서류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부 소위원회 위원들도 서류가 뒤바뀌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피에스001은 애초 ‘야마토2’가 게임 내용인 것으로 심의를 받고서 ‘은하철도 999’로 심의받은 것처럼 서류를 바꿨다는 것이다. 이는 영등위 사무국 직원이 개입하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지난 4월 오락기 제조업체의 항의로 이런 사실을 발견한 영등위는 그때야 ㅇ사의 ‘서류 바꿔치기’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영등위는 ㅇ사가 바꿔치기한 서류를 근거로 실제로는 심의를 받지도 않은 기계를 지금까지 버젓이 팔고 있는데도 등급분류 취소 등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영등위 관계자는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켜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영등위 심의 과정에서 서류가 바꿔치기된 정황은 여럿 있다. 지난 3~4월 영등위 심의를 통과한 제이빅8, 에이엔피하월, 라이프스토리 105, 빅3 등 성인오락기들은 모두 일본에서 수입한 ‘은하철도 999’의 부품을 사용해 만든 기종들이다. 이들 오락기는 지난해 10~11월 영등위에 심의신청서를 냈지만, ‘은하철도 999’는 일본에서 지난해 12월에야 처음 출시됐다. 다른 오락기로 먼저 신청서류를 접수한 뒤 심의 전후에 심의 신청 내용을 바꾼 것이다.
이에 대해 영등위 관계자는 “서류 접수에서 심의까지 대기시간이 길기 때문에 업체 편의를 위해서 사소한 서류 변경은 받아주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게임 내용 자체가 통째로 바뀌는 것을 사소한 변경이라고 판단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한 전직 영등위 예심위원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구형 기계로 서류를 접수한 뒤 심의 직전에 신형 기계로 바꾸면 심의기간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다”며 “일부 업체의 경우 ‘위에서 지시해’ 이례적으로 게임 내용까지 바꾸는 서류 변경이 이뤄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 오락기 유통업자는 “성인오락기는 유행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때를 잘 맞춰 새로운 기계를 내놓아야 한다”며 “심의를 받는 데 보통 서너달씩 걸리는 상황을 악용해 영등위 직원들이 돈을 받고 서류 바꿔치기를 해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유신재 임인택 전진식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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