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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그를 바꿔놓은 건 세월일까, 시대일까

등록 2007-01-04 10:59수정 2007-01-06 10:32

엘아이지화재보험의 최성열 과장이 회사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대학 시절에는 강의실보다 시위 현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회사 일과 아이들 교육 문제로 고민하는 평범한 생활인이다. 박종식 기자 <A href="mailto:anaki@hani.co.kr">anaki@hani.co.kr</A>
엘아이지화재보험의 최성열 과장이 회사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대학 시절에는 강의실보다 시위 현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회사 일과 아이들 교육 문제로 고민하는 평범한 생활인이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987년 그뒤 20년] 386 다섯갈래의 삶 ① LIG화재보험 최성열 과장
역사앞에 분노한 청년이 이젠 평범한 40대 직장인
정치로 세상 바꾼다는 생각 불투명한 희망으로 변해
“노조활동으로 자위하지만 한번 딱 이긴뒤 계속 졌다”

엘아이지화재보험의 최성열(39) 과장은 대학 새내기 시절이던 1987년, 강의실보다 거리에서 ‘데모’로 보낸 시간이 훨씬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회사 일과 아이들 교육 문제에 머리를 싸매는 평범한 생활인이다.

87년의 그

20년 전, 청년 최성열은 경제학과를 사회학과로 착각하고 입학할 정도로 어리숙한 대학 새내기였다. 최루탄이 교정의 봄내음을 지우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그의 눈은 교문 밖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1980년 5월 광주의 실상을 몰래몰래 접하면서 역사 앞에 분노할 줄도 알게 됐다.

그해 1학기 기말고사를 앞두고 벌어진 시위 도중 같은 대학의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숨진 사건은 청년의 삶을 뒤흔들었다. 이한열의 주검을 경찰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을 지키는 시위대에 그가 있었고, 서울시청까지 이어진 상여 행렬에도 그가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엉뚱한 상상도 했다. 외계인이 나타나 소원을 물으면 “광주의 진실을 방송으로 내보내달라”고 답하겠다는 것이었다.

군대에 다녀온 뒤인 1991년, 강경대가 시위 도중 경찰에 맞아 숨지고 김귀정도 그렇게 죽어갔다. 그는 동아리 후배들 손을 잡고 다시 거리에 나섰다. 그리고 어느덧 졸업반이 됐다. 주변에선 노동운동가가 되기 위해 ‘위장 취업’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는 고민 끝에 평범한 직장인의 길을 택했다. 대신 노동조합 활동이 활발한 곳을 택했다. ‘변절자’라는 후배들의 비난을 조금이라도 쉽게 견디기 위한, 양심의 방어장치 같은 것이었다.

지금의 그

엘아이지화재보험의 최성열 과장. 1991년 복학한 뒤 연세대 도서관 앞에서 동아리 친구들이 찍어준 사진.
엘아이지화재보험의 최성열 과장. 1991년 복학한 뒤 연세대 도서관 앞에서 동아리 친구들이 찍어준 사진.
출근 시간은 7시40분, 퇴근 시각은 제각각. 올해 마흔이 된 최성열 과장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딸을 둔 가장이다.

1996년 결혼한 뒤 2004년 3억원을 주고 산 집은 그새 값이 올라 4억5천만원이 됐다. 별로 기쁘진 않다. 어차피 계속 살 집이니 값이 올라봐야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에게는 교육비로 한달 70만~80만원을 쓴다. 최씨는 “아이 엄마가 동네 아주머니들과 커뮤니티를 이뤄 딸아이 교육에 극성”이라고 말한다.

직장에서는 후배들이 자기 세대와 많이 다르다고 느낀다. 똑똑하고 경력이 화려하다. 놀이 문화도 다르다. 과거엔 틈만 있으면 함께 술을 마시는 등 ‘동료애’가 강조됐다면, 지금은 각자 바쁘게 학원에 다니는 등 ‘실속’을 중시하는 풍토다. 정치를 말할 때도 최씨 세대가 ‘옳다, 그르다’로 판단한다면, 후배들은 ‘좋다, 싫다’로 판단한다.

그는 어느덧 일에 빠진 재미없는 아빠, 구식 선배이다. 그의 이름은 생활인 최성열이다.

“87년 이후로는 계속 져왔다”

청년 최성열과 생활인 최성열 사이엔 무엇이 있었나? 최씨는 졸업 전 후배들과 약속한 대로 수습사원 때부터 ‘겁없이’ 노조 활동에 나섰다. 노조 노래패로 시작해 부위원장까지 지냈다. 그 부위원장 시절 겪었던 외환위기는 그의 삶에 또 하나 변곡점이 됐다. 명예퇴직, 상여금 반납, 분사 등 한바탕 광풍이 불어닥쳤다. 최선을 다했다고 자위하지만, 200여명이 명예퇴직했다.

졸업 뒤 자주 만나던 12명 친구들 가운데서도 5명이 외환위기를 전후해 해직됐다. 연락이 뚝 끊기는 친구도 생겨났다.

김대중 정부에 기대를 걸었지만, 희망은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출범 초기 롯데호텔에서 일어난 파업사태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였다. 노무현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최씨는 “두 정부도 이전 정부와 마찬가지로 노동자에게는 일관되게 폭력적이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좌절의 연속이었다. “1987년 딱 한번 이겨본 뒤로는 계속 져온 것 같아요.”

불투명해진 희망

최씨는 올해 대선에서 누굴 찍을지 고민이다. 눈코 뜰새 없이 바빠도 한가닥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있다. 그것이 1987년을 겪은 이로서 최소한의 도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도 그런 맥락이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위안은 될 지언정 대안은 못된다고 생각한다.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꿀 수 있구나’하는 생각은 20년 동안 숱한 좌절과 실망을 겪으며 ‘불투명한 희망’으로 변했다.

그를 바꿔놓은 건 세월일까, 시대일까, 또다른 무엇일까?‘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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