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3년 8월14일 서울 동교동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8월8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들한테 납치됐다가 13일 풀려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DJ 납치 불편한 진실’ 우회하는 두 나라
한-일 정부 ‘껄끄러운 외교사안’ 갈등
외교 쟁점화는 피해 조심스런 대응
양국 여론 따라 ‘34년전 봉합’ 터질수도
한-일 정부 ‘껄끄러운 외교사안’ 갈등
외교 쟁점화는 피해 조심스런 대응
양국 여론 따라 ‘34년전 봉합’ 터질수도
김대중 납치사건이 다시 한-일 정부의 불편한 외교 사안이 되고 있다.
‘김대중 납치사건’에 한국 중앙정보부의 ‘주도적 공작과 조직적 은폐’가 있었다는 24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조사 결과 발표에, 일본 정부는 유감의 뜻을 밝히고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한국 정부의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과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고 유감스러운 일”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사과’를 요구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이 문제를 양국 외교 문제로 확대하고 싶지 않다는 속내도 내비쳤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치무라 노부타카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주권이 침해당한 듯한 사건이 일어난 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면서도, 한국 정부에 공식 사과를 요구했냐는 질문에 “한국 정부로부터 응분의 대응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직답을 피했다. 그는 일본 정부의 수사 재개 여부에 대해 “수사 당국의 판단에 맡기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언급을 피했다. 현재 일본에서 ‘김대중 납치사건’은 공소시효가 중단된 상태인데다 수사본부도 아직 경찰청에 설치돼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수사를 다시 할 수 있다.
도쿄 외교소식통은 “한-일 두 나라 사이에서 이번 진상 발표가 외교문제로 비화하는 것은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묵시적인 공감대가 있었다”고 전했다. 일본 외무성 간부도 “신중하게 협의하겠다”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고 <마이니치신문>이 전했다. 외교통상부 고위 관계자는 “이 사건은 이미 30여년 전에 당시 한-일 정부 사이에 외교적으로 종결된 문제”라며 “양국간 외교 현안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는 “추가 조처가 필요한지 검토하겠다”면서도 “외교부 장관의 유감 표명 외에 별도의 다른 조처는 현재로선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일 외교 당국의 ‘소극적 대응’에는 1973년 11월2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당시 김종필 총리와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 총리가 만나 이 사건을 공식 종료키로 한 ‘외교적 합의’가 밑에 깔려 있다. 외교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이미 끝난 사안’이라는 인식이다. 지난해 2월6일 비밀해제된 당시 면담록을 보면, 다나카 총리는 “미국 대통령의 보좌관들처럼 엉뚱한 자들이 나와서 ‘나는 대통령이 시켜서 한 것’이라고 하면 야단이다”라고 말했고, 김 총리는 “당신이 염려하는 것과 같은 엉뚱한 답은 있을 리가 없다”고 답했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외면한 ‘외교적 봉합’이다. 이 대목이 이 사건에 대한 양국 여론 향배 및 정부의 대응 기조에 영향을 끼칠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당장 김대중 전 대통령은 “수사를 포기한 일본 정부와 이를 은폐한 한국 정부 모두가 양국 국민과 세계 앞에 큰 과오를 저질렀다. 양국 정부에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국정원 과거사위도 일본 정부에 유감을 표명했다.
마치무라 장관은 30여년 전의 ‘정치적 타결’를 수정할 용의를 묻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는 “일본 정부로서는 김대중 사건의 수사라는 것은 국제법·국내법에 따라 최대한 노력을 해왔지만 유감스럽게도 초기에 진상이 밝혀지지 못했기 때문에 만약 일본 쪽에 책임이 있다고 한국 쪽에서 한다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제훈 기자, 도쿄/김도형 특파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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