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사실 유포 유무죄 판단기준인
‘사실이라 믿을만 했는지’ 두고 판단
부산지법 유죄 “막연한 추측에 근거”
전주지법 무죄 “믿을만한 근거 제시”
중앙지법 무죄 “근거가 사실에 부합”
‘사실이라 믿을만 했는지’ 두고 판단
부산지법 유죄 “막연한 추측에 근거”
전주지법 무죄 “믿을만한 근거 제시”
중앙지법 무죄 “근거가 사실에 부합”
지난해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비방한 혐의로 기소돼 최근 국민참여재판을 받은 4건을 비교해보니 ‘비판이나 의혹 제기의 근거가 충분히 제시됐느냐’에 따라 배심원의 유·무죄 판단이 갈린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의 주장처럼 배심원들의 정치성향이나 감정에 따라 판단이 좌우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해 7월부터 국민참여재판 범위가 모든 형사합의부 사건으로 확대된 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돼 참여재판을 받은 경우는 최근 안도현(52) 시인까지 포함해 모두 14건이다. 이 가운데 박근혜 후보를 비방한 혐의로 기소된 것은 4건이다.
박근혜 후보를 비방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공직선거법의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된 전아무개(52)씨는 지난 8월 부산지법의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7명 만장일치로 유죄 평결을 받았다. 재판부인 형사6부(재판장 신종열)는 배심원 평결을 받아들여 전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전씨는 ‘칠푼이’ ‘수첩 할마시’ 등 박근혜 후보를 비하하는 표현을 썼고, 박 후보가 최태민 목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혼외자를 낳았다거나 5촌 조카 살인사건 은폐를 시도했다는 등의 내용으로 모두 23차례 글을 올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의혹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충분한 조사도 하지 않고 글을 게시한 점, 같은 취지의 글을 반복적으로 게시한 점 등을 고려하면, 전씨가 허위임을 알면서도 박 후보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공표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반면, 같은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된 주진우(40) <시사인> 기자와 김어준(45) <딴지일보> 총수, 안도현 시인의 경우에는 ‘의혹의 근거’가 제시된 점이 배심원들로 하여금 무죄로 기울게 하는 구실을 했다. 박근혜 후보 5촌 조카 살해사건에 동생 지만씨가 연루됐을 가능성을 보도한 주진우·김어준씨의 국민참여재판(서울중앙지법)에서 배심원들은 “의혹의 근거가 대체로 진실에 부합하거나 진실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고 지난 24일 6 대 3으로 무죄 평결했다. 지난 28일 안중근 의사의 유묵(붓글씨) 도난에 박근혜 후보가 관여했을 의혹을 제기한 안도현 시인의 참여재판(전주지법)에서도 배심원들은 7명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했는데, 안 시인은 재판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가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소장하고 있다는 문헌·도록, 문화재청 자료, 언론 기사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박근혜 후보를 비방할 목적에 대한 판단에서도 배심원들은 그 근거를 요구했다. 주진우 기자의 경우, 배심원들은 그가 쓴 기사가 5촌 조카 살해사건에 여러 의문점이 든다는 정도만 나타냈다는 점을 바탕으로 ‘박지만씨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박근혜 후보를 백설공주로 묘사한 벽보를 공공장소에 붙였다가 공직선거법 위반(탈법 방법에 의한 문서·도화의 배부·게시) 혐의로 기소된 팝아티스트 이하(45·본명 이병하)씨의 국민참여재판(서울중앙지법)에서도 배심원들은 8 대 1로 무죄 평결했다. 검찰은 이씨가 박 후보를 비방할 의도로 해당 그림을 그렸다고 기소했지만, 배심원들은 “박 후보의 대선 승리를 지지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어 후보에 대한 호감·비호감을 표현한 것인지 불분명하고 다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국민참여재판 과정을 보면, 배심원들은 재판에 앞서 해당 사건의 쟁점과 관련 법리가 정리된 설명서를 받는다. 해당 사건과 비슷한 사건에 대해서 판단한 대법원 판례들도 제시된다. 공직선거법에 관한 대법원 판례는 어려운 법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허위임을 알고도 발언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는 “언어의 통상적 의미와 용법, 문맥, 사회적 상황 등 전체적 정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선거에 영향을 끼칠 목적이 있었는지 판단하는 기준도 “피고인의 사회적 지위, 행위의 동기 및 방법, 행위 당시 사회상황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사회통념에 비춰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돼 있다.
법원 관계자는 “이런 사건은 법관 역시 일반인의 평균적인 관점에 대입해 판단한다. 법관과 배심원의 판단 과정은 동일하다. 현행 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은 판단하기 어렵거나 의견일치가 안 되면 재판부에 질의를 하면서 판단해나간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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