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토요판팀 허재현입니다. 요즘은 ‘토요팟’이라는 이름의 한겨레 팟캐스트도 최성진 기자와 함께 다정하고 친절하게 진행하고 있어요. 계속 친절하게 살겠습니다.
오늘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 위조 논란’과 관련한 이야기를 드리려고 이렇게 인사를 드리게 됐습니다. 중국 화룡시 공안국에서 제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다들 궁금해하는 것 같아서요. 화룡시 공안국은 검찰이 이번 사건의 피의자 유우성(34)씨의 ‘중-북 출입국 기록’을 발급받았다고 주장하는 곳입니다.
이 사건에서 증거조작 의혹이 있다는 점은 지난해 말부터 한겨레가 수차례 보도해왔지만 국가기관이 증거를 조작한다는 게 워낙 믿기지 않는 사건이라 파장이 그리 크게 일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난주 중국에서 ‘검찰 제출 문서 3건은 모두 위조’라고 한국 재판부에 밝혀 파문이 일었습니다. 사실 중국에서 그런 공문이 올 거라고 저는 예상 못했습니다. 남의 나라 재판에 중국이 개입해 이런저런 의견을 밝히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입니다.
검찰은 화룡시 공안국에서 받은 출입국기록이라고 계속 얘기하는데 제가 그곳에서 정확히 어떤 말을 듣고 왔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지난해 12월 초 중국 화룡시 공안국을 방문했습니다. 법정에서 변호인단은 출입국기록이 위조라고 주장하고, 검찰은 진짜 기록이 맞다고 공방을 계속해 누구 말이 맞는지 검증해보고 싶었습니다.
화룡시 공안국을 들어서자마자 ‘출입국 관리과’부터 찾았습니다. 그런데 출입국 관리과가 없었습니다. 검찰이 발급받았다고 하는 출입국기록에는 분명 출입국관리과라고 쓰여 있었는데 말이죠. 정확히는 ‘출입국관리대대’가 있었습니다. 그곳의 진런펑 대대장을 만났습니다. 검찰 제출 기록을 보여줬습니다. 그는 무척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우리 부서 이름도 틀리고, 발급 문서에 찍힌 도장도 우리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검찰은 재판정에서 ‘외교경로를 통해 화룡시 공안국 고위급을 통해 발급받았다’고 설명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대장보다 더 높은 사람으로 보이는 분의 사무실을 기자 신분을 밝히고 들렀습니다. 그 역시 무척 황당해했습니다. 이분은 검찰의 기록을 제 앞에서 30분 이상 유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진런펑 대대장을 불러 ‘어떻게 된 건지 아느냐’고 묻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그는 역시 진런펑 대대장과 같이 ‘위조 같다’는 취지로 설명을 했습니다. 그는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밝혔고, 그 진상조사 결과가 이번에 한국 재판부에 전해진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더 높은 분’의 신원과 직책은 확인 못했습니다. 중국 공안은 외국 기자에게 친절하지 않아요. 계속 이름 물어보다 쫓겨날 뻔했어요.
이어 저는 문제의 삼합세관(국경 출입국관리소)을 찾아갔습니다. 유우성씨가 북한 보위부 요원이 된 뒤 이곳을 이용해서 2006년 6월10일 토요일 오후 3시17분 중국으로 나왔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었거든요. 그런데 삼합세관 소재지는 용정시이지 화룡시가 아니었습니다. 검찰 설명 중 또 하나 틀린 것을 확인했습니다.
저는 일부러 토요일 오후 3시17분에 삼합세관을 찾았습니다. 한데 문이 닫혀 있더군요. 문 앞을 서는 경비(군인)는 “토요일 오후에는 운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검찰 설명대로라면, 유우성씨가 어떻게 토요일 오후 삼합세관을 이용했다는 것일까요.
이쯤 되자, 검찰의 주장 여러 부분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고 유씨 변호인단의 주장이 신빙성이 있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습니다. 이외에도 이 사건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정황들을 더 취재했습니다. 저는 기사를 썼고, 변호인단은 저를 이 사건 재판부에 증인으로 신청했습니다.
검찰은 ‘유우성씨에게 이로운 기사를 쓴 사람이기 때문에 증인으로 채택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증인 채택 반대의견서를 제출했다고 들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검찰에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한겨레는 유우성씨의 말이 맞는지, 검찰의 말이 맞는지 검증하러 중국을 갔던 것뿐입니다. 그러나 검찰 공소장 내용과 부합하는 결과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어떤 기사를 써야 옳았을까요. 취재된 그대로 기사를 써야겠지요. 검찰은 객관적으로 언론이 취재해 온 내용이 재판정에 소개되는 것을 막으려 할 게 아니라, 공소사실과 부합하는 증거를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제가 중국 연길에서 유씨의 아버지에게 들은 말씀을 전합니다. “한국에는 법도 없습니까. 어떻게 국가기관이 증거를 조작해 억울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듭니까.”
허재현 토요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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